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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일제시대 이병철은 친일파였을까요?

아니면 독립운동을 몰래 도운 재벌이었을까요?


가끔씩 이병철과 이완용 집안의 관계, 이완용 손자 이병철이라는 말들도 있는데, 사실 이병철과 이완용은 직접적인 관계가 없습니다.


이완용의 후손중에 이병철이라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삼성 이병철과는 동명이인일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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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이병철은 반일 의식(?)을 가지기도 합니다.

원래 일본 유학을 떠날 때 배에서 이병철은 안호상 박사 (같은 동향 출신)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배멀미에 심하게 시달린 두 사람은 돈을 더 주고 2등 선실에 1등 선실로 옮기려고 했는데, 일본인 순사가 이를 막습니다.


"1등 선실은 너희 조선인들이 이용할 데가 아니야!"


이 사건으로 이병철은 조선인과 일본인의 차이를 뼈저리게 느꼈고 엄청난 굴욕감에 시달린다, 라고 이병철 전기 등에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이병철이 반일을 직접 행동으로 실천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이병철이 친일파와 비슷한 행동(?)을 했다는 것으로 강하게 추정이 되죠. (아래에서 설명)


삼성 이병철 회장 사진


아무튼 건강 악화로 집으로 돌아온 이병철은 한동안 백수로 지내게 됩니다.

당시 톨스토이로부터 깊은 감명을 받았던 이병철은 톨스토이처럼 집안의 머슴들을 해방시키기도 했는데, 나중에 기업가가 된 다음의 철두철미한 모습과는 많이 다른 '젊은 시절'의 모습이었죠.


그리고 이병철은 한동안 술과 노름에 빠져 살다가, 뜻을 세우게 됩니다.

이병철: "노름을 하다 밤늦게 집으로 돌아와 평화롭게 잠들어 있는 3명의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큰 충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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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그동안 정말 허송세월이었다. 어서 빨리 뜻을 세워야 한다."

이후 이병철은 아버지로부터 돈을 받아서 사업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병철 아버지 이찬우: "마침 네 몫으로 연수 300석의 재산을 나누어 주려던 참이었다. 스스로 납득이 가는 일이라면 결단을 내려보는 것도 좋다."


이렇게 손쉽게 사업 자금을 확보한 이병철은 마산에서 도정공장을 차리고, 또한 땅 투기를 하게 됩니다.


이병철: "이렇게 손쉬운 돈벌이는 흔하지 않을 것이다. 토지 투자 사업은 순조로웠다. 식산은행의 금고가 마치 나의 금고로 착각될 정도가 되었다. 1년이 지나자 나는 연수 1만석거리, 2백만 평의 대지주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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