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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50대 이상) 결혼 생활

이숙 남편 남현식 연청 부회장이었지만

(이전 글 참조)  탤런트 이숙 나이와 프로필 과거 태권도 사건


그렇다면 이숙 남편 남현식과 김대중은 과연 어떤 관계였을까요?


그 외에도 이숙은 판소리 명창 고 김소희 선생을 사사했고, 스포츠 댄스, 검도 등을 다양하게 배웁니다.


이숙: "비록 6개월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김소희 선생님으로부터) 기초부터 제대로 배웠어요."


이숙이 판소리를 제대로 배웠는 덕분인지, 앨범도 4장이나 내는 가수로도 활동하게 됩니다.


1982년 첫 번째 앨범 '기도'를 발표했고, 동년 2집 앨범 '애수', 그리고 1985년에는 3집 '고독한 여자'를 발표했으며, 2007년에는 4집 앨범 '연가'을 냈죠.

(2007년 앨범은 드라마 '하늘이시여'에서 춤의 달인 소피아 역할로 출연해서 '사랑의 도둑'이 큰 히트를 치자 4집 앨범도 내게 됨) (게다가 올해 2017년에 민감한 여자란 신곡도 발표함)



(스폰서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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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탤런트 이숙의 남편 남현식은 누구이고, 이숙의 결혼 생활은 어땠을까요?


먼저, 이숙은 정치인 남편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합니다.

"15년 전 사별한 남편은 정치인이었다. 1988년에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나갔다가 낙선했다." (2012년 이숙 인터뷰에서)


이숙: "남편은 극심한 선거 스트레스로 인한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탤런트 이숙 남편 사망 이유)


이렇게 이숙은 남편의 이름은 한번도 언급하지 않는데, 사실 이숙 남편은 남현식입니다.


이숙 사별 남편 남현식 프로필

1947년 1월 9일 출생 (탤런트 이숙보다 9살 연상)

경희대학교 행정대학원 수료

경희대학원총동창회부회장

(주) 경희산업 대표이사



원래 남현식은 (주) 경희산업의 대표이사로, 기업인으로 활동을 합니다.

그러다자 나중에 평민당 (김대중이 창당한 평화민주당)으로 입당해서 제 13대 총선에 출마하기도 했었죠.


이숙: "남편을 중매 반, 연애 반으로 만났는데, 나중에 정치를 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이숙: "사실 제 어릴 때 꿈이 여류 작가나 여성 정치인이 되는 거였거든요. 그런데 마침 저와 꿈이 같은 남자를 만났으니 일종의 대리 만족 같은 걸 느꼈나 봐요."


이렇게 이숙은 1987년 남현식과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영화배우 탤런트 이숙 배우자 신랑 남현식 직업 사업가)


이후 이숙은 아들 1명, 딸 1명을 낳게 되었죠.

(탤런트 이숙 자녀 자식) (이숙 가족관계)


참고로 이숙 손녀가 바로 남지우입니다.

이숙 아들이 일찍 결혼을 해서 얻은 딸인데, 올해 17살이죠.


탤런트 이숙 손녀 사진


2016년에는 연기자가 꿈이라고 TV에 나오고, 2017년에는 걸그룹 데뷔를 꿈꾸다고 나오는데, 아직 어려서 그런지 꿈이 종종 바뀌네요.

아무튼 할머니 덕분에 다른 일반인들보다는 쉽게 TV에 등장하게 되었는데, 할머니같은 끼가 있는지는 두고 볼 일이죠.


사실 이숙 전남편 남현식은 연청 부회장 출신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연청이란, '새시대 새정치 연합청년회'의 준말로, 원래 1980년 김홍일 의원 (김대중 큰아들)의 후원으로 '민주연합청년 동지회'란 이름으로 설립이 되었고, 나중에 이름이 바뀌게 되었죠. (결과적으로 김대중의 옹호 세력이라고 할 수 있음)


이후 연청은 전국 284개 지부에 회원수가 30만명에 달하는 큰 규모로 성장하게 되는데, 역대 회장으로 문희상, 김영환, 김덕배 등이 있습니다.


아무튼 이숙 남편 남현식은 이런 큰 정치적 결사체의 부회장 출신인데, 아마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문희상같은 거물 정치인이 되지 않았을까 하네요.


아무튼 지난 1989년 1월, 13대 총선에서는 출마했다가 떨어졌고,

1992년 총선에서는 '여야 공천 파동'에 휘말려 공천조차 받지 못했던 사건이 발생합니다.


당시 정치적인 상황이 좀 복잡한데, 여야 가릴 것없이 밀실공천 후유증으로, 큰 내홍을 겪었고, 남현식 역시 원래 지역구인 서울 송파 갑에 출마조차 못해보게 되었죠.

(아마 이때의 실의때문에, 그의 생명이 더 빨리 단축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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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서울 송파구에 살았던 사람이라면, 당시 총선에서 남편을 위하여 열심히 뛴 이숙의 모습을 기억할 수 있을 겁니다.

이숙만큼 정치인 남편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내조한 여자 탤런트도 거의 없는 편이었죠.


이숙: "결혼하자마자 남편은 본격적으로 선거 운동에 들어갔어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로지 정치만 생각하고, 항상 자신보다 는 남을 먼저 챙기는 남편을 보고 있자면 자연스럽게 존경심이 생겼어요."


이숙: "(친정)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내내 저희 집에서 함께 살면서 살림을 도맡아 해주셨어요. 제가 밖에서 일을 하니까 아이들 뒷바라지도 당신이 다 해주셨죠."


이숙: "또한, (어머니는) 정치하는 사위를 위하여 뒷바라지도 엄청 하셨어요. 남편 당원들이 야유회를 가게 되면, 농산물 시장에 가서 한 차 가득 장을 봐 오셔서는, 300~400명 분의 도시락을 후다닥 만들어 내시기도 했고요."


아무튼 위에서 언급한 공천 파동 이후로 남현식은 기력을 잃었고, 대략 1994, 5년경에 사망하게 됩니다.


이숙: "남편이 죽었을 때 최불암씨가 문상을 왔었어요. 당시 최불암씨는 국회의원이었는데, 제가 염치없게도 국회의원 배지를 한번만 빌려달라고 했어요." (저작권자 유라준)


이숙: "남편이 너무나도 달고 싶어 하던 금배지라서, 그 금배지를 제사상에 올려 놓고 ‘죽어서라도 원을 풀었으니 편히 저승으로 가시라고’ 통곡했어요."


이숙: "(최불암씨가 그 배지를 다시 받지 않으셔서) 대신 남편 관 속에 넣었어요."


남편과의 사별 후 이숙은 재혼하지 않고, 남편에 대한 의리를 지킵니다.

과연 이숙의 근황, 현재 삶은 어떨까요?


(스폰서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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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 참조) 탤런트 이숙 재혼 거부와 건강 관리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