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없고 워낙 무덥기 때문에, 공사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음)
이 난공사에 뛰어든 김우중과 대우건설은 근처에서 우물을 파는데 성공했고, 결국 이 난공사를 성공시켰으며, 이 덕분에 리비아를 비롯한 제3세계에서 대우건설의 능력을 인정받게 됩니다.
결국 이후 리비아의 거의 대부분의 공사와 아프리카, 나아가 중동까지 진출하게 된 발판이 된 것이죠.
(이란 고속도로 역시 이때의 실적이 발판이 되어서 수주와 건설에 성공하게 됨)
참고로 김우중의 가계도를 보면, 굉장히 단촐하기 그지 없습니다.
보통 재벌 일가들은 다른 재벌이나 정치권과 굉장히 복잡한 혼맥을 형성하기 마련인데, 김우중의 형제자매들은 보통 교육자 혹은 일반인(?) 집안과 결혼하게 됩니다.
우선 김우중 부인 정희자 역시 경주 출신으로, 김우중과는 친구 소개로 만나게 됩니다. (1964년 김우중이 회사원 시절에) 친구 덕분에 연애를 하다가 결혼하게 된 것이죠.
참고로 김우중 아내 정희자 학력
한양대학교 건축학 학사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 석사 수료
그리고 아트선재센터 관장과 대우개발 회장 등을 역임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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