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대우건설의 탄생과 성장을 보면, 대우의 경쟁력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대우그룹 부도 이후에 대우건설은 건설업체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해외 매각이 금지되었음. 그 이유는 바로 대우건설이 우리나라 건설 회사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원전 건설 경험을 온전히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음.)
(이처럼 일정 분야에서는 오히려 현대건설이나 다른 건설사보다도 경쟁력이 더 좋은 상황이었음)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박정희 지시(?) 때문에 건설회사가 없었던 김우중은 임직원 12명을 데리고 급하게 대우건설을 만들게 됩니다.
그리고 국내 시장에도 진출하지만, 돈이 되는 해외 시장 개척을 서두르게 됩니다.
하지만 중동 지역은 현대나 동아 건설등이 이미 선점을 한 상태였기 때문에, 김우중은 리비아 (북아프리카)로 눈을 돌리게 됩니다.
맨처음 난공사였던 리비아 의과 대학 건물을 대우 건설이 성공적으로 건설하자 리비아의 지도자 카다피는 김우중에게 비행장 건설까지 맡기게 됩니다.
당시 이탈리아의 유명한 건설회사도 하다가 중도에 포기했던 난공사였죠.
(물이 없고 워낙 무덥기 때문에, 공사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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