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배우(50대 이상) 결혼 생활

엄앵란 젊은시절,엄앵란 어머니 아버지와 죽고 싶었던

영화배우 엄앵란 젊은시절 사진을 보면 굉장한 미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엄앵란 어머니가 여배우였고, 엄앵란 아버지는 음악 연주가였던 예술가 집안 출신이었죠.


엄앵란의 어린 시절 이야기들이 흥미롭네요.


신성일 엄앵란 대한 이야기가 1편에서 이어집니다. (1편 새창보기)

신성일 엄앵란 결혼년도-재벌 후처와 사귀다가


(스폰서 링크)


# 목차

* 엄앵란 아버지 집안 이야기

* 엄앵란 어머니 이야기

* 엄앵란 신성일의 다른 여자때문에

* 엄앵란 신성일 결혼 생활

* 엄앵란 시어머니와의 갈등으로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엄앵란 집안은 신성일과 달리 오래전부터 음악과 연기를 했던 집안이었습니다.


방송인 겸 영화배우 엄앵란(본명 엄인기)은 1936년 3월 20일 서울에서 태어납니다(엄앵란 고향 서울). 올해 80살이죠(엄앵란 나이, 신성일보다 1살 연상).

(엄앵란 종교) 불교

(엄앵란 학력 학벌) 서울 미동국민학교, 서울 중앙여자중학교, 서울 여자상업고등학교 졸업, 숙명여자대학교 가정학과 학사, 한양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 학사

(엄앵란 프로필 및 경력) 1956년 영화 단종애사로 데뷔


이후 영화 하녀, 김약국의 딸뜰, 맨발의 청춘, 태양은 다시 뜬다 등과 드라마 딸부잣집, 달팽이, 행진 등에 출연합니다.

한동안 연기자 생활을 하지 않다가 50살이 넘으면서 토크쇼 등의 예능 프로그램에 많이 출연하고 있습니다.


엄앵란 젊은시절 사진 (엄앵란 과거 사진)


* 엄앵란 아버지 집안 이야기


엄앵란 집안은 예술가들이 많습니다.

먼저 엄앵란 아버지가 유명한 클라리넷 연주가였죠.

(엄앵란 아버지 엄재근)



엄재근은 함경북도 어대진의 부잣집 맏이로 태어나 어렸을 때(일제 시대) 일본 도쿄 음악학교에서 클라리넷을 배우고 연주 활동을 합니다.


(참고로 엄앵란 삼촌이 바로 우리나라 클라리넷 연주자로 유명한 엄토미임.

엄토미가 나중에 '엄토미 악단'을 만들기도 했는데, 유명한 음악가들인 길옥윤과 이봉조가 바로 그 문하생들이었음)


엄앵란 젊었을때 사진


* 엄앵란 어머니 이야기


또한, 엄앵란 어머니가 바로 여배우 노재신입니다.

엄앵란 아버지가 연주 활동을 하다가 당시 '최승희 무용단의 무희'였던 노재신을 만나서 결혼한 뒤, 엄앵란을 낳게 된 것이죠(엄앵란 엄마 노재신).


하지만 엄앵란 아버지가 방랑벽이 있었기에, 엄앵란이 어렸을 때는 무척 가난하게 성장하게 됩니다(엄앵란은 1남 2녀중에서 장녀).


엄앵란: "아버지가 가정을 돌보지 않으셨다. 그래서 어머니가 살림을 꾸려나갔지만, 대개 판자촌에서 간신히 허기를 면할 정도로 어렵게 살았다."


엄앵란: "6.25때는 대구로 피난을 갔다. 대구의 방촌시장이라는 곳에서 어머니와 함께 길가에서 떡장수를 했다. 어린 마음이었지만,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을 정도였다."


엄앵란 리즈시절 사진(엄앵란 과거 사진)



엄앵란: "내가 19살 때 배우가 된 후에도 너무 힘든 일이 많았는데, 그때 도망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어릴 때 떡장수를 할 때 겪었던 경험 덕분이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무리 힘들 일이라도 정신이 번쩍 들었으니까."


그리고 6.25가 끝나고 사회가 안정을 되찾게 되자, 엄앵란 어머니 노재신은 다시 연기 활동을 재개하게 되고, 엄앵란은 대학(숙명여대 가정학과)에 입학하게 됩니다.

(후에 엄앵란은 첫 학사 배우라는 별칭을 받게 됨)



* 엄앵란 신성일의 다른 여자때문에


그리고 엄앵란은 촬영장에서 연기를 하는 어머니 노재신에게 도시락을 갖다 주다가 당시 정창근 감독의 눈에 띄어 19살에 단종의 어린 왕비 역할로 발탁됩니다.


엄앵란: "겹치기 출연을 하면서 숙대 가정학과 3학년 때 처음으로 내 집을 장만했다(어머니와 동생들과 함께 삶). 아마 그때를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이후 엄앵란은 신성일과 함께 출연한 '맨발의 청춘'(1964년)으로 큰 인기를 얻었고, 또한 신성일과 연인 관계가 됩니다.

그런데 당시 신성일은 만나는 다른 여자가 있었죠.


신성일: "어머니가 며느리감으로 점찍었던 여자는 엄앵란이 아니었다. 당시 영화 '현해탄은 말이 없다'로 인기를 모았던 재일교포 배우 공미도리와 선을 봤고, 양가 부모님의 동의까지 받았다. 하지만 당시 나와 연애중이었던 엄앵란과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신성일: "함께 영화에 출연하던 엄앵란가 같은 호텔 옆방에 묵었다. 그때 고층 홈통을 타고 남몰래 엄앵란의 방에 뛰어들어가기도 했다."


신성일 엄앵란 결혼 사진


결국 두 사람은 1964년 11월 14일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신성일 엄앵란 결혼년도)

(신성일 부인(아내) 엄앵란)(신성일 배우자 와이프 엄앵란)


신성일 엄앵란 부부가 바로 연예인 커플 1호라고 불리는데, 둘다 당시에 인기가 굉장히 많았기 때문에, 이들의 결혼을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죠.

(엄앵란 남편 배우자 신랑 신성일)



* 엄앵란 신성일 결혼 생활


연예계 관계자: "당시 최고의 청춘 스타였던 두 사람의 결혼이 대중들에게 엄청난 화제를 몰고 왔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사람이 과연 끝까지 잘 살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품었다." 


엄앵란: "그때만 해도 사람들의 눈초리가 대단했어요. '신성일과 엄앵란이 딴따라 커플에 연상연하 부부? 3개월이나 사나 보자, 길게 봐서 1년 살면 다행일걸?' 다들 이런 식이었어요."(신성일 엄앵란 이혼 루머)



엄앵란 신성일은 아들 1명, 딸 2명을 낳게 됩니다.

(이름은 강경아(장녀), 강석현(장남), 강수화(차녀))

(신성일 엄앵란 자녀(자식))(신성일 엄앵란 가족관계)


엄앵란 신성일 아들 사진


신성일 엄앵란 딸 사진


* 엄앵란 시어머니와의 갈등으로


사실 둘이 살면서 위기도 많았습니다.

첫번째는 고부 갈등이었고,

두번째는 신성일의 화려한 여성 편력때문이었죠.


신성일: "결혼한 지 1년도 안 돼 엄여사(엄앵란)과 별거를 했습니다. 원인은 고부 갈등이었어요. 그나마 (별거를 하면서도) 우리 부부의 문제가 커지지 않았던 것은 엄 여사나 저나 기자들 앞에서 입을 꽉 다물었기 때문이죠. 매스컴에서 한번 알게 되면,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도 이혼으로 치달은 커플들이 많거든요."



엄앵란: "결혼 후에 여배우로서의 인생을 포기하고 집안에 들어 앉았다. 하지만 그런 나를 두고 시어머니께서 많이 미워하셨다. 처음에는 왜 날 그렇게 미워하시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알고 보니 통장을 친정에 두고 시집와서 미워하셨던 거다."


또한, 결혼 전부터 여러 여자와 사귀던 신성일은 결혼 후에도 공식적(?)으로 불륜을 저지르기도 합니다.(신성일 바람 외도(불륜))


신성일 엄앵란에 대한 이야기가 3편으로 이어집니다. (3편 새창보기)

신성일 김영애 사진,신성일 노망 나온 이유


(스폰서 링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