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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안철수 부인(아내)김미경과의 러브스토리는 너무나 유명합니다. 현재도 서울대 의대 학생들 사이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죠.


이와 관련하여 안철수의 사람됨됨이를 한번 살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과연 안철수는 국민들에게 필요한 존재일까요?



또한, 소위 말하는 안철수 관련주 테마주가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데, 이 부분도 같이 살펴봅니다.

황교안 국무총리 지명자에 대한 중요한 증언 포스팅 (새창보기) 

황교안 부인 최지영 직업과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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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 안철수 아버지와 어린 시절

* 안철수의 어린 시절

* 안철수가 바이러스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 안철수 의사를 포기하고

* 안철수의 가치관

* 1000만 달러 제안을 거절한 이유

* 안철수 대선출마 선언

* 안철수 테마주

* 안철수 부인 김미경 사진

* 안철수 아내 김미경에 대한 이야기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국회의원 안철수는 1962년 2월 26일 부산에서 태어납니다(안철수 고향). 올해 54살이죠(안철수 나이).

(안철수 종교) 무교


(안철수 학력 학벌) 동성초등학교, 부산 중앙중학교, 부산 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의학 학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원 석사 박사,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대학원 공학 석사,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스쿨 경영학과 석사


(안철수 프로필 및 경력) 1990년 당시 최연소(만 27세)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학과장을 역임

1995년 2월 안철수 연구소를 설립

2011년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차세대융합기술원장 역임


2012년 9월 19일 제 18대 대선 출마 선인 후, 11월 23일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후보 단일화

2013년 3월 3일 성루 노원구 병 재보궐선거에 무소속 출마한 후 당선

(현재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국회의원)


안철수 부인 사진


* 안철수 아버지


안철수의 아버지는 안영모입니다.

직업이 의사인데, 부산 변두리인 범천동에서 48년 동안 서민들을 위한 의사로 살아왔죠.

(안철수 아버지 프로필 - 서울대 의대 졸업, 군의관으로 일하다가 1963년 당시 빈민촌이었던 부산 범천동에 병원을 개원함)


안영모: "(아들 안철수가) 어려서 병원 3층에 계속 살았거든. (그래서 안철수가) 내가 병원에서 오는 환자를 대하는 걸 보고 자라니까, (어릴 때부터) 아무래도 어려운 사람들을 많이 봤겠지. 사실 지금 대한민국이 이렇게 발전했다고 하지만, 서울이나 부산 등의 상위 몇 프로만 잘 살지 (다른 사람들은) 다 형편없잖아. 중간층이 좀 있다고 해도 사회의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어려우니까."


서울대 의대를 나왔으면, 1960년대에 얼마든지 출세를 위한 선택을 할 수도 있었을텐데, 당시 빈민촌에 병원을 개원했다니, 좀 놀랍네요.

아마 안철수의 가치관에 안철수 아버지가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합니다.


안철수 아내 사진


* 안철수의 어린 시절


이후 안철수는 평범한 학생으로 자라게 됩니다.


안철수(이하 안): "어린 시절은 남다를 것 없는 학생이었다. 사실 내가 초등학교 시절 공부도 못하고 운동도 못했다. 그래서 반에서 성적은 중간이었다. 60명중 30등 정도했다. 그런데 책은 정말 좋아했다."


안: "책을 약간 병적으로 좋아했던 것 같다. 종이가 바닥에 떨어져 있으면 꼭 주워서 글자를 읽어야 직성이 풀릴 정도였다. 아마 약간 활자 중독증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당시 나는 과학책이나 소설책을 좋아했고, 학교 교과서는 별로 안 좋아했다."


안: "초등학교 때 작은 도서관에 있는 거의 모든 책을 다 봤다. 매일 책을 빌리고 다음날 새로운 책을 빌리다보니까, 도서관 사서분이 내가 장난을 치는 줄 알았다. 즉, 대출카드에 이름 적는 장난인줄 알고 나중에는 책도 안 빌려주려고 했다."


안철수 부인 사진


안철수는 훗날 자녀교육에 대하여 충고를 하기도 합니다.


안: "아이의 독서습관이 정말 중요한데, 여기에 부모가 솔선수범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아이에게 책을 읽으라고 말만 하면서 부모님들이 책 읽는 모습을 한번도 안 보여주면, 아이들이 정말 제대로 책을 읽을까? 그냥 책상에 앉아서 책 읽는 흉내만 낼뿐이다."


확실히 아이들은 부모를 따라하기 마련입니다.

사실 안철수의 말은 무척 오래전부터 내려온 말이고, 사람들 역시 이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본인들이 귀찮기에 실천을 하지 않고, 그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라. 책읽기가 정말 중요하다."라고 말만 할뿐이죠.


안철수 사진


* 안철수가 바이러스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이후 안철수는 의대에서 공부하면서, 컴퓨터 바이러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됩니다.


안: "내가 박사 과정 학생 때였다. 심장 부정맥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컴퓨터 기계어를 공부했다. 내 전공과 관련된 실험을 더 잘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어느 날, 처음 컴퓨터 바이러스를 접했고, 내 디스켓 3장 역시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안: "이 바이러스가 파키스탄에서 만들어진 것인데, 아마 3년에 걸쳐 파키스탄에서 미국, 그리고 한국으로 침투 한 것 같더라. 하룻밤을 새며 바이러스를 살펴보니 생각보다 원리가 간단하더라."



안: "그런데 어느 날 대학후배가 찾아와 바이러스에 감염됐다고 도와달라고 하더라. 결국 1988년 6월 10일 날 밤부터 V3의 최초 버전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세계 최초의 백신중 하나였다. 그리고 1년 정도 후에 미국의 대기업이 만드는 백신도 나왔다."


안: "당시 새벽 3시부터 6시까지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만들고, 하루 4~5시간씩 수면을 취했다. 군대 갈 당시에도 미켈란젤로 바이러스 백신을 만들었다. 백신에 집중하다보니 아내에게 군대간다는 말도 안하고 입대하게 되었다."


안철수 부인 김미경: "남편이 군대 가는 날 아침까지 백신 프로그램을 업데이트하더니, 아침에 허둥지둥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으로 달려가더라. 당시 무지 섭섭했다."


(참고로 안철수 부인 김미경에 대해서는 밑에서 추가 설명)



* 안철수 의사를 포기하고


이렇게 안철수는 의사와 컴퓨터 백신 전문가 2가지 생활을 동시에 하다가 결국 의사를 포기하고 백신 전문가의 길을 걷게 됩니다.


안: "7년 정도 의사와 백신개발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했었는데, 컴퓨터 바이러스는 매 년 두 배씩 증가를 하면서, 나 혼자 하루 세 시간으로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더라. 또한 의대쪽으로 지도 학생을 받아야 하는데, 컴퓨터 백신개발로 인해 지도학생에게 소홀할 것 같아 두 가지중에 한가지만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다가왔다."


결국 안철수는 약 반년을 고민하다가 의사라는 직업을 버리고, 컴퓨터 백신 전문가를 선택하게 됩니다.

여기서 안철수 성격 2가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첫번째, 남에게 피해를 주기를 굉장히 싫어합니다.

의사라는 직업을 완전히 포기한 것도, 지도학생에게 집중하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때문이었죠.


두번째, 안철수는 공익에 대한 신념이 확고했습니다.

백신을 개발해서 이것을 공공에게 무료로 제공한다는 사명감이 확실했기에, 그가 의대에 재학하는 시절 개발한 백신을 무료로 배포합니다.

젊은 시절부터 이런 마인드를 갖기가 쉽지 않을텐데, 안철수는 좀 달랐던 것 같네요.

아마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안철수의 공공에 대한 확고한 의식은 이후의 행보에서도 확실히 드러납니다. 

의사를 그만둔 안철수의 첫 행보는 '비영리 공익 법인'을 만들려고 했기 때문이죠.



* 안철수의 가치관


사실 1990년대 중반은 컴퓨터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형편없을 때였습니다.

디스크를 가지고 지하철을 타면 디스크가 깨진다거나, 혹은 컴퓨터 바이러스에 사람들이 감염될 수도 있다는 허무맹랑한 괴담들이 나돌던 시절이었죠.


그런 상황이었고, 사람들은 백신과 같은 소프트웨어를 자기 돈을 주고 구입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상황이었죠.

(이 부분은 지금도 거의 비슷한 상황임)


그런 상황에서 안철수는 컴퓨터 백신 개발에 뛰어드네요.

역시 그의 인생에서 '돈'보다 '공익'이 더 중요했던 것일까요?



안: "(의사를 그만두고) 처음에는 '비영리 공익 법인'을 만들려고 했다. 그래서 정부의 여러 부처를 돌아다니면서, 7년 동안 모은 모든 바이러스 샘플들과 백신 프로그램들을 무상기증 할 테니, 공익 법인을 만들자고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안: "그러던 중에 어떤 소프트 회사에서 찾아와 기업을 만들자고 제안을 했다. 당시 내 조건은 기업을 만들더라도 일반인에게는 무료배포하고, 정부기관과 기업들에게만 유료로 하자는 조건을 내걸었다. 결국 그 조건이 받아들여져서 안철수 연구소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확실히 안철수의 '공공의 이익'에 대한 사명감이 젊은 시절부터 뚜렷했던 것 같네요.



* 1000만 달러 제안을 거절한 이유


그런데 안철수의 처음 예상처럼 이것은 돈벌이가 별로 되지 않습니다.

시장이 태동하던 초창기였던데다가, 사람들이 소프트웨어를 돈주고 사야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안: "초창기에 무척 힘들었다. 4년동안 매달 직원들에게 월급 주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당시 내 소원이 직원들 월급 걱정 안하는 것이었다."


안: "그러던 중에 당시 백신분야의 세계 최대의 회사에서 1000만불에 인수 제의가 들어왔다."


참고로 이때가 바로 1997년, 안철수가 회사창립을 한지 2년째 되었고, 당시 안철수연국소가 적지이던 상황이었죠.

그런 상황에서 미국의 거대 백신업체인 맥아피로부터 천만달러의 인수 제안은 얼마나 달콤했을까요?



안: "하지만 그쪽의 의도는 분명했다. 그들은 V3라는 국내 브랜드를 없애고 그들의 제품을 한국 시장에 더 많이 팔려고 했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받을 건 돈뿐이고, (인수된 다음에) 직원들 모두가 정리해고되고, V3 역시 폐기될 것이기에, 고민할 필요도 없이 (인수 제안을) 거절했다."



안철수의 이 결단 덕분에 한국이 맥피아의 시장이 되지 않을 수 있었고, 또 개인들은 백신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사실 1990년대 벤처기업가들은 대부분이 벤처를 키워 돈을 번다든가, 혹은 벤처를 팔아서 돈을 번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는데, 안철수는 그런 절호의 기회를 스스로 걷어찼네요.



그리고 1999년 전세계적으로 CIH(체르노빌)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백신의 수요가 크게 늘었고, 안철수연구소 역시 흑자로 전환하게 됩니다.



이후 안철수는 2000년에 자신의 지분에서 안철수연구소 전 직원 125명에게 각각 650주를 나눠준바가 있습니다(안철수 지분에서 약 8만주가 나감).


안: "전체가 잘될 수 있다면 개인적 이해타산과 상관없이 어떤 선택도 할 수 있는 마음 자세를 갖고 있다."



안철수를 살펴볼수록, 그의 공익에 대한 사명감이 어릴 때부터 남달랐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안철수 대선출마 선언

안철수가 2012년에 이어서 2017년에도 대선 출마 선언을 하면서 주목을 받게 됩니다(안철수 대선출마 선언).


안: "(2017년 대선에 출마해서) 뚜벅뚜벅 걸어가면서 결과를 보여주겠다."


아마 2012년에는 아쉬웠던 점이 많았던 것 같네요.


* 안철수 테마주

이상과 같이 안철수가 대선에 출마를 선언하면서, 안철수 관련주 테마주가 급등하기도 합니다.

참고로 전통적으로 안철수 테마주로 묶이는 기업들은 안랩(구 안철수연구소), 써니전자, 다믈멀티미디어 등이 있습니다.


이들 중에 안랩은 안철수 본인이 창업을 했고, 안철수가 현재에도 이 회사의 최대주주로 지분을 보유하고 있습니다(18.6%). 써니전자는 송태종 전 대표가 과거 안랩에서 일했고, 다믈멀티미디어는 정연홍 대표이사가 예전에 안철수와 융합기술연구소에서 함께 활동했기에, '안철수 테마주'로 묶이고 있는 것이죠.


그외에도 대성엘텍 자동차멀티미디어(카오디오 등), 미래산업, 시큐브, 쏠리드, 아남전자, 아남정보기술, 잘만테크 등이 있는데, 각 대표들의 과거 안철수와의 인연이나, 혹은 약간의 안면 정도로도 안철수 관련주에 끼인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안철수의 과거 행적을 살펴보면, 안철수가 대권을 잡는다고 하더라도 특정 기업에 특혜를 줄 것 같지는 않네요.


* 안철수 부인 김미경 사진


안철수 아내 김미경(이름) 역시 의사출신입니다.

1963년생으로, 안철수보다 1살 연하이고, 서울대 1년 후배이죠.

(안철수 아내 김미경 나이 및 직업)

(안철수 부인 김미경 고향 전라도 순천)



안: "아내가 서울대 의대 1년 후배인데, 봉사진료를 갔다가 우연히 만난 후 서로 도서관 자리를 잡아주고 커피마시는 사이로 발전하게 되었다. 사실 아내(당시 여자친구)와 생각도 비슷하고 가치관도 비슷하고, 또 같은 동아리에서 봉사활동도 하다 보니 많은 것을 알게 됐다."


안: "결국 캠퍼스 커플이 되었는데,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학교에서 유명한 커플이 되어 있더라. 당시 돈이 없는 학생이라 단순히 '같이 살자'라고 아내에게 프러포즈를 했다."


안철수 아내 김미경 역시 안철수의 프러포즈를 흔쾌히 받아들이게 됩니다.

(안철수 배우자 와이프 김미경 교수)


김미경 안철수에게 딸 안설희(이름)가 있습니다.

(안철수 자녀 자식)(안철수 가족관계)

(참고로 안철수 아들은 없음)


안철수 과거 신혼 사진

* 안철수 아내 김미경에 대한 이야기


사실 김미경 역시 대단히 뛰어난 학자입니다.

(김미경 프로필)

서울대 의대 졸업 이후에, 성균관대와 삼성서울병원에서 15년간 병리학 교수이자 전문의로 명성을 쌓습니다.

그리고 나이 마흔에 미국 유학을 떠나서(남편 안철수와 딸 역시 동행), 2002년 워싱턴주립대 법대에 입학했고, 2005년에는 스탠퍼드 법대 특별 연구원으로 뽑혀 '생명과학과 법센터'에서 일하게 됩니다.


그리고 캘리포니아주와 뉴욕주 변호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고,

한국으로 귀국한 다음인 2008년 카이스트에서 의학과 법학을 접목한 융합 모델을 구축했고, 서울대 의대에서 강의를 하기도 하죠.


안: "아내가 학자로서 뛰어난 사람인데, 나 때문에 피해보는 일이 많다."

안철수의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안: "아내와 부부싸움도 존댓말로 한다."


한때 안철수 이혼이라는 루머가 돌기도 하는데, 확실히 부부싸움을 존댓말로 하게 되면, 큰 싸움으로 번지지 않게 됩니다.

안철수 김미경 부부가 좋은 부부생활의 지혜를 가지고 있네요.


안철수 이야기가 2편으로 계속됩니다. (새창보기)

안철수 딸 안설희 나이와 직업- 논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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