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남자 가수(50대 이상) 결혼 생활

이문세 이영훈 루머 비하인드 스토리- 이문세 가식일까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전편에 이어서 계속 됩니다.

(새창보기) 

2015/03/30 - 이문세 노래모음 12곡- 이문세 데뷔와 갑상선암 뒷이야기



# 목차

* 이문세 이영훈 루머 이야기

* 과거의 이야기들

* 이문세 가식은 사실일까?

* 이문세 인간성에 대한 여러가지 증언들


작곡가 이영훈 사진(마지막 무렵의 모습)(이문세 이영훈 병문안 당시)


* 이문세 이영훈 루머 이야기


그런데 이문세의 콤비였던 이영훈 역시 대장암으로 투병하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2006년 대장암 판정, 2008년 사망)


사실 생전의 인터뷰들을 살펴봐도 이문세와 이영훈은 인간적으로 그리 가까운 사이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영훈의 인터뷰 역시 마찬가지임)(이문세 이영훈 일화, 비화)


또한 '이문세 이영훈 루머'가 돌기도 하는데, 이문세가 이영훈을 인간적으로 배신하고, 나중에 이영훈의 죽음 직전에야 찾아갔다는 내용입니다.


이에 대하여 이문세가 고백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문세: "이영훈은 나에겐 나무 같은 존재였다. 나만을 위해 노래를 썼던 큰 나무같은 사람이다."



사실 고 이영훈은 고 유재하와 더불어 한국 가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한국 가요는 팝보다 질적으로 떨어지는 음악이라는 평가와 함께, 젊은이들은 거의 듣지 않는 음악이었죠.


이문세: "팬레터 중에 '난 팝만 들었거든요. 가요는 사본 적이 없었어요'하는 내용이 많았어요. 사람들이 국산품 애용을 주장해도, 막상 제품이 불량이면 잘 안쓰잖아요. 당시 청춘들이 국산품(가요)도 좋더라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죠."


이영훈은 유재하와 더불어 한국 가요계를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사람입니다.

다만, 유재하와는 스타일이 조금 다른데, 유재하가 갖가지 악기를 다룰 수 있고, 혼자 작곡과 편곡을 할 수 있는 천재형의 뮤지션이었다면, 이영훈은 명상으로 밤을 지새면서 음악을 '쥐어짜듯이' 만들었던 노력형의 뮤지션이었죠.



(유재하 새창보기)

2014/10/29 - 유재하 여자친구 김애란/유재하 일본에서도 인정 못받던


* 과거의 이야기들


지인의 증언: "이영훈은 하루 종일 피아노 앞에만 앉아서 작곡을 했다. 하루에 담배 4갑, 커피 40잔을 마시며 밤을 지새우는 일이 많았다."


이영훈의 고백



이영훈은 이런 행동이 자신의 생명력을 갉아먹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예술을 위하여 이것을 감내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어렵게 만든 작품들을 거의 대부분 이문세에게 주었죠.


어쩌면 후일의 대장암으로 비교적 젊은 나이에 요절한 것 역시

이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당시 이문세와 이영훈의 관계는 다른 가수와 프로듀서와는 좀 달랐습니다.


이문세: "우리(이문세와 이영훈)가 예전에 땐 작업실에서 같이 싸우기도 참 많이 싸웠어요. 치고 박고 싸웠다는 게 아니라 음악적으로 서로의 의견이 달랐죠. 그렇게 티격태격 많이 다투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때가 가장 기억에 남네요."


사실 신인 가수들은 프로듀서에게 맞으면서 노래를 배웠던 시절입니다.

2000년대 이후에도 30센티 자로 손바닥을 맞으면서 녹음을 했다는 유명 가수의 고백도 있었을 정도로 프로듀서들은 가수들의 위에서 '선생'으로 군림을 했죠.


다만, 이문세는 1, 2집을 망한 다음에 신인 작곡가였던 이영훈을 만났고, 또 나이 역시 이영훈보다 3살이 더 많았기에, 이런 '일반적인 사제 관계'가 형성되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이영훈은 이런 '생을 갉아 먹는 노력'을 하면서 만든 음악의 대부분을 이문세에게 줍니다.

이문세가 오늘날 수많은 히트곡들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오롯이 이영훈 덕분입니다.

실로 이문세의 '은인'이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이문세가 이영훈과 그리 가깝지 않았다는 세간의 평은 사실이었습니다.



* 이문세 가식은 사실일까?


이문세: "이영훈은 몸이 그토록 아플 때(대장암으로 투병할 때)도 내색 한번 하지 않고 그냥 '좋은 병원 하나만 소개시켜달라'고만 이야기했다. 난 이영훈의 병이 그렇게 심각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문세: "이영훈이 투병하던 1년 동안 그 사실을 잘 알지 못했다. 내가 너무 이기적으로 살았던게 너무 미안했다. 그의 암투병 사실을 안 후 병원을 달려가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즉, 이영훈의 말년에 이문세와 거의 왕래가 없었다는 것이 사실이었고,

또, 이영훈이 이문세에게 마지막으로 '도움'을 요청했지만, 이문세가 이 진의대로 도움을 주지 못했던(혹은 않았던) 것 역시 사실이었죠.

(이문세가 이영훈의 진의를 알고도 이랬는지, 혹은 정말 진의를 몰랐는지는 오직 그만이 알고 있습니다.)



비록 이문세가 뒤늦은 후회를 하지만, 언제나 후회는 늦기 마련입니다.

(참고로 과거 히트곡들을 이문세가 부르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노래들의 작곡과 작사는 이영훈이 했기에, 저작권료는 이영훈이 받음(사후에는 유가족들이 수령)

따라서 단순히 저작권료만 따지면 이영훈이 이문세보다 더 많이 받지만, 이문세는 그 외에도 방송 활동 및 공연, 라디오 진행 등으로 수입과 재산 등이 이영훈보다 훨씬 더 많음)



이문세: "결국 이영훈이 먼저 떠났다. 그 사실이 가장 가슴 아프다. 생전에 더 친절하게 대할 걸... 하는 후회가 들더라."



* 이문세 인간성에 대한 여러가지 증언들


그렇다면 이문세의 인간성은 어떨까요?


사실 연예계 평판에 의하면 이문세는 '그리 따뜻한 사람'은 못 됩니다.

과거에 동료 뮤지션들과 몇 차례 잡음을 낸 적도 있죠.



(새창보기)

2013/08/11 - 김석원에 대한 무통보 해고는 가요계의 흔한 관행일까?



다만, 이문세가 범죄 행위(법을 어긴 행위)는 없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최저 임금 이하를 주던가, 오늘날 유행하는 '열정 페이'로 청춘들을 갉아먹던가, 혹은 사기, 도둑질 등을 한 적은 없습니다.


또한 80년대 음악가들 사이에 크게 유행했던 대마초나 마약을 한 적도 없었고요.


본인 역시 군대를 갔다오고, 이문세의 외아들 역시 미국 대학 1년을 마치고 공군으로 복무합니다.(밑에서 추가 설명)



또한 별밤 작가였던 구자형은 이런 증언을 하기도 합니다.


구자형: "별밤이 한창 인기를 끌 때, 이문세가 아무도 없는 스튜디오에서 이런 말을 하더라. “형이 날 만들어주었어”라고. 이문세가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구자형: "이문세가 나에게 신세를 갚기도 했다. 그가 신혼여행을 다녀올 무렵에 방송국 측에서 낙하산 작가를 내려보냈는데, 그 작가가 내 일의 절반을 가져갔다. 결국 내가 그만 두겠다고 강경하게 항의했고, 내 사정을 알게 된 이문세 역시 방송사 간부에게 같이 그만두겠다고 항의해서, 내 자리가 보존되기도 했다."

이문세 사진


이문세가 본인의 이익을 위하여 노력하는 것은 맞지만,

일반적인 상식을 크게 어긋난 경우는 없었던 것 같네요.


짧게 그의 인생을 평가하면, '약삭빠르게 혹은 영리하게 인생을 살았다'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이영훈 부인(미망인)이 이문세에 대하여 서운하게 생각한다는 일설도 유가족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이영훈의 마지막 부탁을 이문세가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으니까요.

물론, 이영훈 부인이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던 '어떤 사실'을 알고 있고, 또 이를 공개한다면

전혀 다른 얘기가 되겠지만, 현재까지는 그런 일이 없을 것 같네요.


'이문세 이영훈 루머'로 일각에서는 그의 노래에 거부감을 나타내는 사람들도 있는데, 어쨌든 이문세가 부르는 이영훈의 노래들은 우리 가요계의 큰 자랑인 점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이영훈은 비록 먼저 갔고, 또 그의 노래 대부분을 이문세가 부르고 있지만, 현재에도 그의 예술성은 높이 평가 받아 마땅한 것 같습니다.


(다음편에 이어집니다.)

이문세 아내 이지현 교수 결혼 비하인드


(스폰서 링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