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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숙 김성옥 러브스토리 및 인생 이야기

연극배우 손숙은 어릴 적 아버지와 이혼하지 않은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자신 역시 똑같은 결정을 내리게 되었죠.

물론 부부간의 문제 원인이 다르기는 했지만, 그녀 역시 이혼하지 않기 위하여 엄청난 인내와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이런 손숙 집안 내력과 더불어 손숙이 제6대 환경부 장관을 맡았다가 40일만에 경질된 사건(정확하게는 32일만)의 내용은 무척 흥미롭습니다.


손숙 남편 사진


연극배우 겸 전 장관 손숙은 1944년 5월 13일 경상남도 밀양에서 태어납니다(손숙 고향). 올해 71살이죠(손숙 나이).

(손숙 종교) 천주교

(손숙 학력 학벌) 풍문여자중학교, 풍문여자고등학교,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 중퇴

(손숙 프로필 및 경력) 연극 《상복을 입은 엘레크라》로 데뷔


오랫동안 밤으로의 긴 여로, 손숙의 어머니, 아가씨와 건달들 등의 연극 무대에 섭니다. 드라마 짝, 현장아 사랑해 등과 영화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개같은 날의 오후 등의 영화에도 출연하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주업은 연극이었습니다.


그리고 후에 여성시대를 진행하면서, 뛰어난 진행자로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손숙 젊은 시절 과거 사진


손숙: "우리 집은 경남 밀양의 몰락한 지주 집안이었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체면치레를 할만큼의 땅은 남아 있었고, 안채 사랑채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는 부리는 하인들이 몇 사람씩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저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는 작은 아씨로, 별 어려움을 모르고 자랐다."


손숙: "할아버지는 밀양 고을에 소문이 짜한 한량이셨다고 한다. 인물 좋고 놀기 좋아하셨던, 친구들과 어울려 기생들을 거느리고 남천강에 배 띄워 놓고 기생들과 장구치고 노시던 할아버지, 나의 끼의 정체는 할아버지로부터 물려 받은 것인지도 모른다."



손숙: "아버지가 배다른 자식 10명을 두고 아내를 넷이나 두었다. 우리 어머니 포함해서..."(손숙 가정사 고백)


손숙: "아버지는 일찍 동경 유학 시절 만난 신여성이랑 살림을 차려 부산에서 살고 계셨고, 집에는 가슴에 한이 서리 맺힌 구식 여자인 우리 어머니가 언제나 단아하게 쪽을 찌으시고 우리 3남매한테 모든 당신의 희망을 걸고 계셨다."


손숙은 자라면서 자신의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손숙: "제가 머리가 커지면서는 어머니께 ‘왜 이혼하지 않느냐’며 대들기도 했지만, 그 시절 여자들에게 이혼은 ‘무조건’ 안 되는 것이었죠."



이런 문제외에 손숙은 무척 조용한 아이(?)로 알려집니다.


손숙: "나는 어릴 때는 낯가림이 무척 심한 아이였다. 초등학교 다닐 때 담임선생님이 나와서 노래 부르라고 하면 울기부터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혼자 있을 때는 온갖 여우짓을 다 했다. 온종일 거울을 보면서 놀았다. 식구들 몰래 어머니 화장품을 모두 찍어 바르고 혼자 거울을 보면서 연극을 하다가도 어른들 앞에서는 새침을 떨었기 때문에 학교 선생님이나 집안 식구들은 그저 나를 말 잘 듣고 착한 아이로만 알고 있었다."


그리고 손숙이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사건이 터집니다.

손숙: "언니가 대학에 입학을 해서 서울로 올라간 다음해 어느날, 어머니는 미장원에 가서 쪽 머리를 자르고 우리들을 데리고 서울로 가시겠다고 선언을 하셔서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손숙: "어머니의 일념은 우리 3남매가 부산에서 살고 있는 아버지의 그 신식 여자가 낳은 아이들보다 나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를 좋은 학교에서 공부시켜야 한다는 것이고, 그 어머니의 결심은 너무나 확고해서 할아버지까지도 속수무책이었다."


손숙: "종가집 종부이고 층층시하에서 숨 한번 제대로 못쉬고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던 어머니의 가슴속 어디에 그 같은 모진 마음이 숨어 있었는지 불가사의가 아닐 수 없다."


평소에 기도 제대로 펴지 못했던 손숙 어머니가 시아버지나 시어머니 앞에서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았던 것은 여자의 한때문이 아닐까 하네요.



이런 어른들의 복잡한 사정과는 별개로, 어린 손숙은 서울로 올라가는 것에 마냥 가슴이 두근거렸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손숙은 중,고등학교를 서울에서 다니다가 연극을 접하게 됩니다.


손숙: "풍문여고 시절 어느 날 우연히 서울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미국 유명 희곡작가인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를 본 뒤 연극의 매력에 빠져들었어요. 그리고 전국고교연극경연대회에 참가하는 교내 연극팀의 스태프로 참여하면서 조금씩 연극과 가까워지기 시작했죠."


손숙: "어머니가 ‘딴따라는 용납할 수 없다’며 말리셨지만 그때는 이미 푹 빠져버린 뒤였어요. 연극은 제게 가슴 깊숙이 자리한 응어리를 쏟아낼 분출구였기에 그만둘 수 없었던 것 같아요. 완고한 경상도 종갓집에서 자라면서 짓눌렸던 자유를 분출하는 방법이었고, ‘여자는 조신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가르침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수단이었거든요."


그러다가 손숙은 고대 대학교 1학년이던 1963년, 개교기념 합동공연에서 여주인공으로 발탁되어서 두각을 나타냅니다. 하지만 손숙의 본격적인 연기 인생이 펼쳐지기도 전에, 손숙은 대학교 3학년을 자퇴하고 결혼을 선택합니다.

상대는 바로 선배 연극배우 김성옥이었죠(손숙 남편 직업).



(김성옥 프로필) 김성옥은 1935년생으로 손숙보다 9살 연상입니다(손숙 남편 나이차이)

극단 신협 대표 역임, 우석레파토리 대표, 우석대학교 연극학과 겸임교수


원래 연극배우로 활약하다가, 무역업 등 여러가지 사업에 손을 대다가 크게 망합니다(밑에서 추가 언급).

손숙과 김성옥 사이에는 딸만 3명이 있습니다(손숙 자녀 자식)(손숙 가족 관계).


결혼후 손숙은 연극 활동보다는 가정일에 충실합니다.


손숙: "저는 첫사랑과 결혼해서 마흔 살까지 가정이 인생의 전부인 줄 알고 살았어요. 저의 과거를 아는 조영남씨가 ‘당신은 정말 불가사의한 사람’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죠."


물론 매년 1~2 작품을 꾸준히 하기는 했지만, 손숙 역시 연극에 대해 별다른 열정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손숙의 가정에 큰 위기가 닥칩니다.


손숙: "남편이 사업 실패로 전 재산을 날리고 해외로 도피했다. 눈을 뜨고 보니 딸 셋에 산더미 같은 빚밖에 없었다. 수십억에 달하는 빚에서 도망가기 위해 자살을 하려고 했었다."


손숙: "매일 저녁 아파트 8층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며 자살을 하려고 했지만 딸들 때문에 자살을 선택할 수 없었다."



이런 손숙에게 구원의 끈이 된 것이 바로 그녀가 여성 명MC로 이름을 날리게 한 '여성시대'였습니다.


손숙: "금전적으로도 큰 도움이 되었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을 얻었다. 청취자들의 사연을 읽으며 매일 울었다. 4-5년을 같이 울고 웃으며 방송을 했고 라디오를 통해 매일 치유받았다. 나만 불행한 줄 알았는데 라디오를 통해 나보다 불행한 사람들이 용기를 갖고 살고 있다는 생각에 용기를 얻었다."


이렇게 손숙은 다른 불행한 사람이 있다는 것에 위안(?)을 받으며 삶의 용기를 얻습니다. 물론 자신의 사연 역시 조금씩 진실되게 이야기해서, 많은 청취자들이 그로부터 위안을 받게 되죠.


실제로 자살을 결심했던 사람도 손숙의 사연을 듣고는 다시 삶의 의욕을 되찾기도 합니다. 

확실히 불행은 나누면 반으로 줄어든다는 옛말이 진리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손숙은 라디오진행과 연극 등으로 남편의 엄청난 빚을 해결합니다.

하지만 남편과의 앙금은 깨끗이 해결하지 못하죠.


손숙: "애초부터 이혼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어요. 당분간 떨어져 있자는 생각에 20년 전 남편과 아이들의 양해를 얻어 트렁크 하나 들고 집을 나온 것이 지금에 이르렀죠. 이제 다시 집으로 들어갈 수도, 이혼을 할 수도 있겠죠."


이제 손숙과 김성옥의 별거는 20년이 넘었습니다.


손숙: "사실 이혼이 아닌 별거를 택했던 이유는 당시 결혼을 안한 막내딸을 두고 이혼하는 것이 미안했기 때문이었어요."


손숙 역시 자신의 어머니처럼 이혼을 선택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이유가 달랐고, 또 무조건 참고 살지만은 않았죠.


손숙: "별거 후 진짜 배우가 되었어요. 별거를 하면서 그때까지 취미로만 생각하던 배우라는 직업이 진지하게 다가왔어요. 일단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게 절실했거든요. 그런 과정이 오늘의 저를 있게 했으니 인생에는 정답이 없는 것 같아요."


손숙은 별거를 굉장히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손숙의 경우에 여러 가지로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죠.



손숙: "만약에 좋은 사람이 생겨서 재혼을 하게 된다면, 이혼을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지금은 별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현재도 손숙은 김성옥과 혼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손숙 전남편 등은 루머임)


굴곡 많은 인생을 보낸 손숙이 인생 후배들에게 자신의 깨달음을 나눠주려고 하네요.


손숙: "요즘 사람들은 자식 낳고 살면서 너무 쉽게 이혼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저희 어머니처럼 아주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한 번 더 생각하고 대화해 보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 특히 남편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 자식을 내팽개치고 앞뒤 생각 없이 이혼을 하거나 가출하는 여자들이 많다고 하는데 그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제가 너무 구세대인가요?"


손숙: "남자들의 경우 자신의 경제력이 무너지는 것을 자존심 때문에 솔직하게 인정하거나 말하지 못하고 혼자 자포자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부부가 같이 리어카라도 끌면서 일할 수 있게 솔직하게 현실을 털어놓는 것이 좋고, 또 남자가 여자에게 의존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확실히 손숙의 말처럼 무조건 남자가 돈을 벌고 여자는 집안일을 하는 시대는 끝이 났습니다. 남자가 경제적으로 무능력하면, 여자가 대신 돈을 벌면 되죠.

어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걸 실제로 했던 손숙이기에, 그녀의 말에 설득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연극배우 및 라디오 진행자로 이름을 날리던 손숙은 후에 환경 운동에도 뛰어듭니다. (환경운동연합의 공동대표 등을 역임)

그러다가 김대중 정부의 환경부 장관으로 취임하게 되는데, 사실 그 이전부터 러브콜을 받기도 합니다.


손숙: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시절 비례대표직을 제의받았지만 빚 때문에 거절했다. 순번이 8번이었는데 거의 당선권이었다."


손숙: "김대중 대통령을 만나서 ‘저는 못한다. 빚을 갚아야 하는데 빚이 너무 많아서 못한다’라고 했더니 정말 황당해 하시더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손숙에게 다시 환경부 장관 자리를 제의했고, 손숙은 여러 고민끝에 결국 승낙하게 됩니다. 그리고 장관 취임 후에, 원래 일정이 잡혀 있던 러시아 공연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사표를 제출하게 됩니다.



손숙: "러시아에 ‘어머니’공연 후 모든 러시아 관객들이 기립박수를 치니까 대통령을 수행했던 경제계 인사들이 격앙됐다."


손숙: "그래서 스무 명이 돈을 모아 금일봉을 줬고 그 돈을 무대 위에서 받아 관객들에게도 언급했다. 받은 돈은 공연 관계자에게 전달했다."


이 사건에 대해 당시 야당과 일부 보수 언론들은 포괄적 뇌물 수수라고 여론전을 펼쳤고, 결국 그 부담감에 손숙은 사표를 내게 됩니다.


손숙: "장관직 사퇴 후 10여일간은 밤에 잠도 못 자고 벽을 치며 울었습니다. 너무 억울했죠. 러시아 공연 1주일 전에 장관 제의를 받았는데 국가 간 약속인 공연을 도저히 취소할 수 없었어요. 러시아 공연에서 평생 무대에서 경험하지 못한 박수를 받았습니다. 관객들이 ‘마마’라고 외치며 15분간 기립박수를 쳤죠. 그런 환호 속에서 무대로 올라온 기업인들로부터 극단을 대표해 액수도 모른 채 격려금을 받았는데 그게 뇌물이라뇨. 그 돈도 극단 단원들에게 나눠 줬어요."


당시 손숙이 뇌물(?)을 받는 사진(1999년 5월 29일)

맨 왼쪽은 김재철 무역협회장


물론 손숙에게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공직자가 되었다면 좀 더 행동을 조심했어야 했는데, 기존 문화계에 있었던 관행 그대로 행동한 것은 문제였으니까요(사실 공직자로서 그런 무대에 오르는 것부터 자제를 했어야 옳았겠죠).


다만 관객들이 뻔히 지켜보는 과정에서 주고 받은 격려금을 뇌물이라고 주장한 당시 야당과 일부 보수 언론들의 '발목잡기'는 정도가 지나치네요.

차라리 손숙의 부적절한 태도를 비판했다면, 어느 정도 수긍을 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손숙은 자살까지 생각했던 인생의 큰 불행을 딸들과 다른 사람의 불행으로 극복합니다. 남의 불행을 보고 웃고 즐거워한 것이 아니라, 같이 공감하고 상처를 나누었기 때문이죠.


사실 이것은 너무나 평범한 진리입니다.

다만 자신의 불행에 너무 함몰되어 있는 사람은, 이런 평범한 진리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인생에 큰 불행이 닥쳤을 때, 손숙의 방법을 사용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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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프로필사진 아침 글 잘봤습니다^^ 뇌물과 선물의 차이 x누리당니들알만하다 2014.08.05 07:29
  • 프로필사진 M 아아~~누리당의 짓이었군요!
    정말 우리나라 누리당이 저런 짓을 못하게 할려면 계속 싸워 이겨야 합니다. 국민들이 아무 소리 안하고 있으면 계속 짓밟거든요. 그게 권력을 가진 자들이 하는 짓입니다. 그걸 견제해야죠. 투표로!! 휴... 답답해... 언제나 바뀔려나... 사람들 인식이, 정치인들 인식이...
    2014.08.15 07:42
  • 프로필사진 시헌 글쎄ᆢᆢ그것만으로 하차? 그렇다면 너죽고나죽자지 2017.01.22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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