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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용녀 김세명 러브스토리

탤런트 선우용녀와 남편 김세명과의 결혼이야기는 아주 유명합니다. 결혼식날 빚쟁이들이 몰려왔고, 신랑이 될 김세명은 식장에 나타나지 않았죠.

 

결국 결혼식이 연기되었는데, 당시에는 굉장한 난리가 났던 사건이었습니다. 인기 탤런트였던 선우용녀가 관련된 사건이기도 했고, 당시 신랑은 맹장염이라고 변명을 하다가 말을 몇번 바꾸면서 사건을 더 키웠던 점도 있었죠.

 

 

탤런트 겸 영화배우 선우용녀(본명은 정용례)는 1945년 8월 15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태어납니다(선우용녀 고향). 올해 70살이죠(선우용녀 나이).
첫 예명이 선우용녀이지만, 후에 두음법칙에 따라서 선우용여로 개명을 합니다. (여기서는 그냥 익숙한 선우용녀란 이름을 쓰겠습니다.)

(선우용녀 종교) 불교

(선우용녀 학력 학벌) 이태원 초등학교, 선명여자상업고등학교(선명여고), 서라벌예술대학교
(선우용녀 프로필 및 경력) 1965년 TBC 1기 무용수로 연예계에 데뷔

 

드라마 해뜰날, 개성시대, 순풍 산부인과, 포도밭 그 사나이, 너는 내 운명, 사랑을 믿어요, 골든 타임, 닥치고 패밀리, 더 이상은 못 참아 등과 영화 병사는 죽어서 말한다, 태백산맥, 세종대왕, 대통령의 딸,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등에 출연합니다.

선우용녀의 친정은 유복한 편입니다. 친정 아버지가 신문기자였고, 선우용녀는 어릴 적부터 발레를 하면서 적성을 찾아갔죠.

 

선우용녀: "중·고등학교 때 발레를 했는데 그때는 제가 최고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 때 대한극장에서 외국 무용수들이 와서 하는 ‘백조의 호수’ 공연을 보고 나서 마음이 바뀌었죠. 저는 발끝을 세우려면 말도 못하게 고생했는데 외국 무용수들은 식은 죽 먹기처럼 잘하더라고요. 그들의 다리를 보고나니 제 다리는 무같아 보이고… 고3 때 무용을 포기하고 외교관으로 진로를 정했는데 대학에 떨어지면서 연기와 인연을 맺게 됐죠."

 

선우용녀 젊었을때 과거 사진


선우용녀 남편 이름은 김세명인데, 원래 사업가이자 아남그룹의 친인척입니다. 김세명의 사촌누나가 아남그룹 김향수 회장의 조카며느리이고, 같이 사업을 했던 사이이죠.
(당시 김세명이 아남산업이사 겸 한국주력개발주식회사 사장이었는데, 후에 둘은 결별하게 됨)(선우용녀남편은누구)

 

선우용녀와 김세명의 나이차이는 10살이고, 8남매의 맏아들이었습니다.
(김세명 고향은 전남(全南) 해남(海南)태생)(선우용녀 배우자 김세명)

처음에 김세명이 선우용녀의 팬이었고, 선우용녀 이모와의 친분을 이용해서 접근합니다.


선우용녀: "몇차례 전화통화를 했어요. “그릉께 한 번 봅시다~”라고 구수한 사투리를 쓰는 남편에게 호기심이 생겨 데이트 신청을 받아들였죠."

 

선우용녀: "명함을 내밀었는데 현주소 서울, 본적 전라도 해남이라고 써 있는 게 너무 박력있고 멋있게 보였어요.
게다가 운동만 해서 식스팩도 있었고, 술, 담배도 안했어요. 그게 너무 좋았던 것 같아요."

 

선우용녀: "게다가 남편은 솔직했어요.여자친구가 있지만 나를 만나면 여자친구랑 끝내겠다고 했죠. 그런 솔직한 부분에 반한 것 같아요."

사실 당시 김세환은 잘 나가는 사업가였고, 전화시설이 된 자가용 차를 가지고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이런 차로 선우용녀의 출퇴근을 도왔고, 이런 부분 역시 선우용녀에게 크게 어필했겠죠.

 

선우용녀 남편 김세명 사진


그리고 여자에 대해서는, 김명세는 당시 결혼을 하지는 않았지만 여자와 사실혼 관계에 있었습니다. 다만 어떤 사건으로 여자와 이혼을 하고 선우용녀와 재혼을 하게 된 것이죠.(김세명에게는 이혼을 할 모종의 사연이 있었죠.)


그런데 선우용녀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위를 탐탁치 않게 여겨서 둘의 결혼을 반대합니다.
선우용녀: "결혼을 하려고 했는데 부모님이 반대했어요. 남편과 내가 10살 차이인데다, 8남매의 맏아들이었고, 고향도 마음에 들어하시지 않았다."

 

선우용녀: "남편이 안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나를 한 호텔에 데리고 가고 보내지 않았죠. 한달간 나를 잘 모시는 바람에 우리집에서 허락했어요. 생각해보면 그때 큰 애가 생겼어요."

 

즉, 속도위반(혼전임신)으로 결혼을 하게 된 것이죠.
그렇게 1969년 11월 12일 결혼식을 올리려고 하는데, 결국은 실패합니다.(선우용여 남편 김세명)

 

선우용녀 예전 사진 어렸을 때(선우은숙 젊은시절)

 

선우용녀: "결혼식 날, 예식장소가 반도호텔이었는데 시간이 됐는데도 신랑이 나타나지 않더라고요. 무슨 영화에 나오는 얘기도 아니고, 속이 얼마나 바짝바짝 타들어가던지…. 시간이 얼마 지나고 신랑이 나타나긴 했는데 다른 사람 빚을 대신 떠안고 채권자들한테 몰려 때 맞춰 식에 나타날 수 없는 처지였다고 하더군요."

 

선우용녀: "결국 빚쟁이들이 남편을 보고 싶으면 도장을 찍으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아무것도 모르고 도장을 찍었어요. 그 도장 때문에 빚더미에 앉아 그 빚을 7년 동안이나 갚았죠."


만약 이때 선우용녀가 도장을 찍어주지 않았다면, 김세명은 아마 사기꾼으로 낙인찍혔거나 선우용녀의 전남편이 되었겠죠. 선우용녀의 결단이 사람을 구한 것 같습니다.

 

참고로 김세명은 나중에 아남과 결별하게 되고 독자적인 사업을 추진하지만 여의치 않습니다. 선우용녀가 거의 돈을 다 벌어오게 되죠.

 

또한 아남그룹은 우리나라 반도체 패키징(조립) 회사로 출발해서 비메모리 분야의 선구적인 기업으로 성장합니다. 다만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로 아남반도체 등을 매각하면서 그룹의 덩치가 축소됩니다.

 


어쨌든 선우용녀의 뱃속에 아기가 자라고 있었기 때문에 3개월 뒤에 다시 급하게 결혼식을 올립니다.
선우용녀: "당시는 속도위반이라면 난리가 나는 시대라 무조건 감출 수 밖에 없었어요. 결혼식도 부랴부랴 할 수 밖에 없었죠."

 

선우용녀: "결혼과 동시에 불거진 빚보증 사건에 남편은 좋아하던 운동을 모두 끊고 딱 골프 하나만 하기 시작했어요. 결혼 전에는 나도 즐겨 했지만 남편의 골프 집착에 오만정이 뚝 떨어지고 질려 버렸죠."

 

선우용녀: "연습할 때는 꼭 날 데려가요. 나는 날라가는 공들을 보며 ‘돈 날라간다. 돈 날라간다’만 머리에 떠올렸어요.
남편이 적당히 골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연습을 할 때도 될 때까지 공을 쳐요. 당시 남편의 룰은 연습을 하러 갈 때마다 프로선수와 동행하는 것이었죠."
아마 남편 김세명은 잘나가던 때의 버릇을 버리지 못한 것 같네요.

 


아무튼 남편의 빚보증을 대신 갚아야 하는 선우용녀는 그때부터 적극적으로 일하기 시작합니다.

선우용녀: "남편 빚 갚느라 한번에 영화를 13편이나 출연한적도 있었어요. 잠을 못 잘 만큼 여러 작품에 출연하는 바람에 촬영장에서도 꾸벅꾸벅 졸기 일쑤였고 제 대사 외우기 바빠 상대방 대사는 볼 시간도 없었죠."

 

선우용녀: "딸 아들을 연년생으로 낳았는데 계속 일을 하느라 산후조리도 못했어요. 큰 딸 연제를 낳고 나서는 바로 ‘아씨’라는 드라마에 출연했는데 아이 낳고 사흘 만에 강릉 경포대에 빠지는 장면을 촬영했고 아들을 가졌을 때는 영양실조로 쓰러지기도 했죠. 한복을 입어서 임신하고 출산한 게 화면상으로는 표시가 나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어요."

 

몸을 풀고 산후 조리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 같네요.
(참고로 선우용녀 가족관계로는 딸 최연제(본명 김연제), 아들 김종욱이 있습니다. 선우용녀 자녀 자식)

 

게다가 맏 며느리로 시댁식구들까지 챙겨야 했습니다.
선우용녀: "결혼하니까 아래로 시동생 둘만 결혼하고 다른 동생들은 다 우리가 보살펴야 하는 처지였는데 맏며느리니 어쩔 수가 없었죠. 부모님이 억지로 떼밀어 결혼한 게 아니니 수중에 십원 한 장 없어도 친정에 힘들다는 말을 못하겠더라고요."

 

 

결국 선우용녀는 결혼 십여년만에 빚을 모두 청산하고는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 미국으로 이민을 갑니다.

선우용녀: "초등학생이던 연제가 하루는 집에 돌아오더니 ‘엄마, 다른 집 엄마들은 왜 집에 있어?’라고 묻는데 정신이 번쩍 났어요. 그동안 시어머니가 아이들을 키워주셨는데 제가 아이들한테 너무 소홀했다는 생각이 든 거죠. 그때부터 이민을 준비하게 됐죠. 제가 한국에 계속 있다보면 아무래도 일을 거절하지 못할 것 같아 이민을 결심했어요."


아마 빚을 갚기 위해서 일을 해야 했던 선우용녀의 입장에서는 아이들이 더 안쓰러웠을 것 같네요.
미국에서 선우용녀 김세명 부부는 식당을 하지만 사기를 당해서 전재산을 날리게 됩니다.

그렇게 6년간 미국 생활을 하던 선우용녀는 1989년 드라마 '역사는 흐른다'로 국내 복귀를 하게 됩니다.

잘 모르는 식당을 하면서 사기를 당하는 것보다 잘 하는 연기를 계속하자는 생각이었죠.


결국 선우용녀는 계속 일을 해야만 하는 가장이 됩니다.

선우용녀: "(결혼 초에) 남편한테 2년동안 돈받아 보고 평생 내가 돈벌어 먹고 살았어요."

 

선우용녀: "친정어머니는 제가 일하는 걸 누구보다 안타까워하셨지만 제가 경제적으로 능력이 있다고 해서 남편이나 시집식구를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그러면 그동안 고생한 것마저 빛을 못 보고 도로아미타불이 된다고 하셨어요. 이를테면 ‘참는 게 이기는 것’이라는 말인데 요즘 사람들이 들으면 ‘바보 같다’ 생각할지 몰라도 인생살이에는 그만한 진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선우용여 남편 김세명 사진


결국 남편의 무능력으로 선우용녀는 평생 일을 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남편과 부부싸움도 하게 되지만, 끝내는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선우용녀: "맨처음엔 약올랐죠. 한10년 동안이나... 맨날 약올라서 막 싸움하고 그 이튿날 일어나보니 내 얼굴이 죽을 상이 됐더군요."

 

선우용녀: "남을 미워하는건 내가 괴로운거구나! 우리 남편은 받을복이 있는 사람이었구나, 난 일할복이 있고...
그러면 저사람 때문에 내가 일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니까 이제 용서가 되더군요.
게다가 나는 집에 있는 것보다 일하는게 더 낫더고 생각해요."

 


선우용녀의 깨달음은 곱씹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선우용녀의 시대는 이혼이 크게 흠이 되는 시대이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배우자라면 그냥 깔끔하게 정리하고 새출발을 하는 것이 더 나은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선우용녀의 그런 수많은 괴로움과 경제적인 문제를 겪지 않았을 테니까요.

 

혹은 선우용녀처럼 남자 대신에 실질적인 가장이 되어서 돈을 버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재혼을 해서 더 나쁜 사기꾼같은 사람을 만날 수 있고, 또 결과적으로 선우용녀 부부는 백년해로를 했으며, 자녀들 역시 이혼 가정의 아이들이 되는 것을 막았으니까요.


어느 방법을 선택하든, 선우용녀의 깨달음, '남을 미워하면 내가 괴로워진다, 내 얼굴이 오히려 죽을 상이 된다.'는 것은 주의 깊게 생각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남편(이나 부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본인을 위해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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