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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선 전남편 박병호

탤런트 겸 영화배우 정혜선의 인생을 보면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남편 박병호가 막대한 빚을 남긴채 이혼을 했는데도, 묵묵히 그 빚을 다 갚습니다.


그러면서도 홀로 3남매를 잘 키우죠.

전형적인 외유내강의 어머니같네요.


원로배우 정혜선(본명 정영자)는 1942년 2월 21일 서울에서 태어납니다(고향). 올해 나이가 73살이죠.

(정혜선 학력 학벌) 수도여자고등학교(수도여고)

(정혜선 프로필 및 경력) 1961년 KBS 공채 1기 탤런트로 연예계에 데뷔(당시 여자 동기들로 김혜자, 태현실, 박주아 등이 있었음)


어린 나이에도 좀 쎈 캐릭터들을 주로 맡습니다. 1960년대의 액션영화에서는 암흑가의 여두목으로 대중들에게 주목을 받았고, 젊은 나이에도 노인역을 많이 맡았죠.

(연기의 폭이 상당히 넓은 배우중의 한명)


그날이 오면(데뷔작), 청춘의 덫, 못잊어, 조선왕조 오백년 설중매, 사랑과 야망, 배반의 장미, 산너머 저쪽, 까레이스키, 왕꽃 선녀님, 영웅시대, 하늘이시여, 황금신부, 제빵왕 김탁구, 신들의 만찬, 백년의 유산, 금나와라 뚝딱, 신의 선물 14일 등의 수많은 드라마를 비롯하여, 연산군, 깜동,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고스트 맘마, 애자 등의 영화에도 출연하게 됩니다.


정혜선의 대표작으로 주목할 만한 작품은 2개 정도입니다. 1983년 드라마 간난이에서 겨우 42살의 젊은 나이에 80대 할머니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하면서 그 해 MBC 연기대상의 대상을 수상합니다.

그리고 1992년 드라마 아들과 딸에서 최수종(아들)만 편애하고 김희애(딸)은 박대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줍니다.


아들과 딸 한장면 김희애와 채시라


이때의 악역 연기로 정혜선은 대중들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았기에, 한동안 악역 연기를 일부러 피하기도 합니다.

(연기력이 너무 좋아도 이런 비난이 있네요. 드라마는 그냥 드라마로 봐야 하는데...)

그런데 정혜선의 실제 생활도 그런 나쁜 어머니였을까요?



정혜선은 1963년, 22살의 어린 나이에 배우 박병호와 결혼식을 올립니다. 박병호 역시 당시 KBS 1기 공채 탤런트로, 정혜선과 동기였고, 데뷔이후 1년동안 연애를 하게 되다가 결혼하게 됩니다.(나이는 박병호가 4살 연상)



그런데 정혜선의 엄마가 조금 일(?)을 벌이기도 합니다.

정혜선: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데다 내가 무남독녀라 어머니가 저를 많이 의지하셨어요. 내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는 그 충격으로 약을 드시기도 했으니까."


정혜선: "그 당시 왜 엄마는 나를 행복하게 두지 않는지, 왜 이렇게 비참하게 만드는지 원망했는데 지금은 그 마음이 이해가 돼요. 이 세상 전부라고 믿었던 자식과 연결된 끈이 끊어졌다고 생각한 거지. 결혼을 천천히 했어야 했는데 뭐가 그리 좋다고 일찍 했나 싶은 후회도 들고…."


어쨌든 이런 자살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정혜선 박병호는 행복하게 잘 삽니다. 둘 사이의 자녀도 3남매를 둘 정도로 금슬도 좋았죠.(정혜선 박병호 자식)



그러다가 박병호가 영화 제작에 손을 대기 시작합니다.

베테랑 연기자가 되고 나니까 제작에도 자신이 생겼던 모양입니다.


사실 영화인의 영화 제작은 그리 드문일이 아닙니다. 멀리는 심형래와 이경규가 있었고, 근래에는 박중훈과 하정우도 있었죠.


성공한 사람보다 실패한 사람이 많는데, 박병호 역시 실패하고 엄청난 빚을 지게 되니다.

결국 박병호와 정혜선 부부는 1975년 이혼을 하게 되고, 정혜선 역시 박병호의 빚을 일부 떠안게 됩니다.(정혜선 이혼사유, 이혼이유)


(참고로 박병호는 2년 후인 1977년 12살 연하의 디자이너와 재혼하게 되는데, 당시 남자 동료들은 많이 참석하지만, 여자 연예인들은 거의 참석하지 않습니다. 당시에도 말이 좀 많았죠.


어쨌든 그 후 박병호는 2003년 드라마 무인시대와 2014년 정도전의 무학대사로 나오기도 하고, 2010년에는 고향 경남 남해군으로 귀농해서 살고 있습니다.)


박병호 근황 사진


반면에 정혜선은 재혼하지 않고, 자신에게 남겨진 빚을 갚고 3남매를 키우는데 온 힘을 기울입니다.

정혜선: "남편 빚 때문에 집은 경매로 넘어가고 월세방을 전전긍긍하면서 세 자녀들을 어렵게 키워야 했다."


정혜선: "아이들이 어렸을 땐 잠은 오지, 대본은 외워야지, 아이는 보채지, 하는 수 없이 의자에 나와 아이를 함께 묶어 놓고 대본을 외운 적도 있어요. 녹화를 하다가도 아이들 학교에 갈 일이 있으면 스태프에게 양해를 얻어 분장한 채로 다녀오기도 했고요."


정혜선: "아이들 소풍 가서 찍은 사진을 보면 내가 다 사극 차림이에요. 한복 입고 쪽을 진, 그래도 아이들은 ‘우리 엄마 왔다’고 좋아했어요."


정혜선: "전남편의 빚을 갚느라 시간을 다 보냈지만 그러나 결국 일어설 수 있었다. 당시에 힘든 줄을 몰랐다. 그저 남편 잘못 만난 내 탓이라는 생각으로 살았다."

결국 정혜선은 십년만에 빚을 다 갚게 됩니다.



가정에 대한 책임감은 두말 할 것도 없지만, 이렇게 사업이나 영화 제작을 할 경우에도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책임을 제대로 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요즘 집도 부부공동명의로 하고, 재산 역시 부부가 같이 책임지는 모습이 많습니다.

재산은 부부가 공동으로 형성했다는 사회적인 생각이 반영된 것이죠.


그런데 이렇게 되다 보니까, 빚 역시 부부가 공동 책임을 지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 한쪽이 무작정 사업을 벌였다가 실패했을 경우에도 배우자는 어쩔 수 없이 절반의 책임을 지게 되죠.

수많은 장점과 더불어, 이런 면에서는 문제가 좀 있는 것 같네요.


어쨌든 부부였다는 이유로 오랜 세월 빚을 갚고, 아이들을 위해서 헌신한 정혜선이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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