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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세지마 류조를 비롯한 일본 극우들이 한국에 도움을 준 것이죠.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이병철이 세지마 류조를 이용하여 어떻게 박정희게게 영향력을 행사했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전두환에 대한 영향력은 위에서 설명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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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세지마 류조가 한국 전경련의 특별고문으로 위촉되었던 점이나, 이병철이 사망한 다음에 세지마 류조가 해외 우인 대표로 조사를 했던 것을 보면, 둘의 막역한 사이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병철의 중앙일보 역시 일본 극우 인사인 세지마 류조에 대하여 찬양하는 칼럼 및 기사들을 연달아 보도하기도 합니다.


오늘날 한국에 일본 극우인사 세지마 류조에 대한 '호감어린 이미지'가 형성된 것은, 이런 중앙일보의 과거 활동이 큰 역할을 했죠.

이병철의 사업의 가장 큰 특징은 2가지입니다.

첫번째, 바로 삼성 무노조 경영의 시작점입니다.


이병철이 언제부터 '무노조 경영'을 했는지는 정확하게 나와 있지 않습니다. 삼성그룹에서도 '무노조경영'에 대해서는 되도록 언급을 피하려고 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사업 초기 이병철의 근거지는 대구였고, 1945년 10월 대구 사변 (좌익 폭동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때 일부 좌익 운동가들의 사주에 따라 당시 노동자들은 과격한 노동 쟁의를 했고, 결국 삼성의 공장마저도 폐쇄되게 되었죠.


아마 이런 사건을 직접 경험한 이병철이, '노조란 대화할 수 없는 상대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훗날 '무노조 경영' 원칙을 세운 것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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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병철의 성격을 보면, 부하 직원들에게 상당히 고압적이고, 냉혹한 면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맹희: "아버지는 늘 어떤 이유로 부른다는 말도 없었고, 아무런 부연 설명도 없었다. 오로지 (아버지의) 명령이 떨어지면 우리는 그대로 시행할 수밖에 없었다."


이병철은 가족들에게나 부하 직원들에게 '제왕적 통치자'로 군림한 것이 아닌가 하네요.


사실 근래까지 문제가 된 삼성반도체 공장 노동자 백혈병 사건 역시 이런 이병철의 '무노조 경영' 정신이 잘 드러난 사건이 아닌가 합니다.


삼성전자 노동자 여러명이 반도체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백혈병으로 사망을 했는데도, 삼성에서는 절대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심지어 유가족들과 대화마저도 거부합니다.


어쩌면 삼성그룹에서는 노동자들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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