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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 김영삼과 김대중의 분열

* 직선제 도입으로

* 김영삼과 김대중의 재분열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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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삼과 김대중의 분열


하지만 87년 대선을 아니라, 1980년 상황부터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죠.


12.12사태로 신군부가 정면에 등장했을 당시에도, 김영삼과 김대중은 각자의 대권 행보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김영삼은 '김대중이 신민당에 입당해야 한다', 라고 주장했고, 김대중은 김영삼의 이런 주장을 거부했죠.


결국 김영삼은 1980년 4월 28일 신민당 당직자들을 거느리고 현충사를 참배했고(거의 대선 출마와 비슷한 효과), 김대중도 같은날 동교동계 의원들과 함께 현충사 부근 윤봉길 생가를 방문하면서 맞불을 놓습니다.


당시 두 사람을 화합시키기 위하여 노력했던 윤보선도, 이 사건 이후에는 그냥 단념하고 정계 은퇴를 해버렸죠.


이처럼 신군부가 정권을 장악한 상황, 당시 군부 독재 정권이 다시 들어설 것이 뻔한 상황에서도 김영삼과 김대중은 본인들의 권력욕에 취해서, 대의를 외면했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1987년 대선에서 양김의 분열에 대하여 많은 비판을 하고 또 아쉬워 하는데, 사실 87년 이전인 80년부터 이미 분열의 씨앗은 자라고 있었고, 두 사람의 권력욕은 절제할 수가 없었죠.

김영삼 김대중 사진

* 직선제 도입으로


결국 김영삼은 전두환의 신군부에 의하여 가택 연금을 당하여 정치적인 활동을 할 수가 없게 됩니다.

이 와중에 장기간의 단식 투쟁을 통하여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고, 신군부는 계속 김영삼을 회유하려고 했죠.


신군부의 해외 망명 제안에 대하여 김영삼은

"나를 해외로 보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나를 시체로 만든 뒤에 해외로 부치면 된다."

라고 강경하게 대응합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민주화 열망에 결국 전두환은 1987년 개헌과 직선제 도입을 천명합니다.


참고로 이런 직선제 도입은 김대중과 김영삼이 일궈낸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김대중은 조건부 대선 불출마 선언을 했고, 김영삼도 이를 받아서 직선제 개헌만 된다면 김대중을 지지할 의사가 있다, 라고 밝힙니다. 지난 1980년의 실수가 뼈아팠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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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삼과 김대중의 재분열


하지만 1987년 대선이 본격화되면서, 김영삼과 김대중은 다시 분열을 하게 됩니다.

수많은 재야 인사들이 이를 두고 '적전분열'이라고 비판을 했지만, 두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았죠.


사실 많은 사람들이 '김영삼과 김대중이 분열했기 때문에, 노태우가 어부지리로 당선되었다'라고 주장을 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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