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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 김영삼은 부정선거로 낙선하고

* 5.16군사정변 당시에

* 김영삼 부인 손명순 집안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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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삼은 부정선거로 낙선하고


사실 이 사건에서 김영삼의 성격이 잘 드러났습니다. 아무리 권력자라고 하더라도, 면전에서 '자기 할 말'을 다 하는 성격이었죠.


이후 김영삼은 민주당 구파인 조병옥, 유진산 등과 함께 정치 활동을 이어갑니다. (참고로 나중에 정치인이 된 김대중은 민주당 신파였음)


그리고 제 4대 총선에서 김영삼은 지역구를 부산 서구로 바꿔 출마했다가 낙선하게 됩니다.

원래 총 23개 투표함에서 16개 투표함에서는 그의 표가 많이 나왔지만, 나머지 7개 투표함에서는 달랑 7표만 나오는, '부정 선거'였죠.


김영삼: "개표 조작이 의심됩니다."

라고 김영삼은 법원에 제소를 했지만, 당시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죠.

(그 당시 자유당에 의해 시행된 부정선거는 굉장히 광범위했고, 이에 따라 김영삼 역시 그 피해자가 되었음)


하지만 김영삼은 제 5대 총선에서 다시 당선되면서 정치적인 재기를 했는데, 1960년 김영삼 어머니가 무장 간첩에게 사살당하는 비극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 사건은 김영삼 개인적으로나, 나중에 그의 정치 인생에서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침)

김영삼 연설 사진

* 5.16군사정변 당시에


이후 김영삼은 야당 정치인으로 계속 활동하였고,

1961년 5.16 군사 정변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 사건을 거제도에서 들은 김영삼은 당장 서울로 올라가서 사태가 돌아가는 추이를 살펴봅니다.

(당시 대다수의 정치인들은 쿠데타 소식에 은신처를 찾는 상황이었는데, 서울로 올라간 정치인은 김영삼과 김대중 2명뿐이었음. 참고로 김대중은 국회의원 당선증을 받으러 서울로 올라간 것임)


그리고 박정희 정권하에서 김영삼은 야당 정치 지도자로 거듭나게 됩니다. 박정희의 3선 개헌을 김영삼이 강력하게 비판하자, 박정희와 공화당 등은 김영삼을 '빨갱이'라고 공격합니다.


그러자 김영삼은

"만약 내가 빨갱이라면, 무장공비들이 왜 나의 어머니를 살해했겠느냐?" 라고 주장하면서, 가까스로 '빨갱이 혐의'를 벗어납니다.


사실 김영삼도 어머니가 무장공비에게 희생되지 않았다면, 수구 독재 세력의 '빨갱이 공격'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했을 겁니다.

실제로 김대중을 비롯한 수많은 민주 세력들이 이런 '빨갱이 공격'에 큰 타격을 받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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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삼 부인 손명순 집안 


김영삼 어머니 이야기가 나온 김에 김영삼 가족들에 대하여 잠깐 짚어야겠네요.


김영삼 부인 손명순 고향 역시 경남 김해군이었습니다.

김영삼과는 선을 봐서 결혼하게 되었죠.


1951년 6.25 당시 김영삼은 장택상 국무총리의 비서관으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한창 정치의 매력에 푹 빠진 김영삼은 집안의 압박에도 결혼하지 않고 있었죠.


그러자 김영삼 집안에서는 할아버지 위독이라는 전보를 보냈고, 그것을 받은 김영삼은 급히 고향으로 내려가게 됩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정정했고, 결국 김영삼은 3명의 여자와 선을 봤으며, 최종적으로 경향고무 사장 손상호의 딸 손명순과 결혼하게 되었죠.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김영삼 처가 집안 역시 경남의 재력가였음)

(김영삼 배우자 와이프 손명순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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