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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이 재평가를 받아야 하는 이유, 김영삼의 공과에 대하여 제대로 짚어봅니다.


# 목차

* 김영삼 집안의 재력

* 김영삼의 어린 시절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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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통령 김영삼은 1927년 12월 20일 태어나 2015년 11월 22일 사망하게 됩니다. (김영삼 나이 사망 당시 향년 89살)

(김영삼 고향은 경남 거제도)


(김영삼 학력 학벌) 장목소학교, 경남중학교 졸업 (당시에는 경남 중고등학교가 함께 있었음)

서울대학교 철학과 졸업 (김영삼 서울대 청강생 논란은 아래 참고)


(김영삼 프로필 경력) 1951년 장택상 국무총리 비서

1954년 민의원 당선 (당시 국회의원, 김영삼은 자유당 소속이었고, 지역구는 거제군)


1987년 제1대 통일민주당 총재로 선출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1990년 제1대 민자당 3인공동대표

1993년 제14대 대한민국 대통령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 전두환 이후만 말하면,

전두환 - 노태우 - 김영삼 - 김대중 - 노무현 - 이명박 - 박근혜 순 (현재는 황교안 권한대행 체제))

김영삼 사진

* 김영삼 집안의 재력


원래 김영삼 집안은 대단한 부자였습니다.

김영삼 할아버지도 재력가였고, 김영삼 아버지 김홍조는 어선을 10여척 이상 보유했고 멸치 어장을 가진 거제도의 유지였죠.


참고로 나중에 정치인이 된 다음에, 김영삼은 아버지의 멸치를 주변 지인과 정계 인맥들에게 주기적으로 나눠줬는데, 이 멸치를 YS멸치 혹은 민주멸치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일제감정기 무렵, 김영삼은 창씨개명을 하게 됩니다.

당시 김영삼 나이는 13살로, 가네무라 고유란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죠.


강요에 의하여 창씨개명을 하는 와중에도, 김영삼의 반일의식은 상당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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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삼의 어린 시절


- 중학교 교장이 이사를 가게 되자 김영삼을 포함한 중학교 2학년들이 교장 가족의 이삿짐을 나르게 되었다.


- 이때 김영삼은 당시 상당히 비싼 설탕 포대를 나르면서 이빨로 포대자락을 뜯어서 일부러 설탕을 흘리게 했다.


- 나중에 그 사실을 안 교장이 노발대발하여 범인에게 처벌을 하라고 했지만, 한국인 (당시 조선인)에게 우호적이었던 교감 덕분에 김영삼은 무사히 넘어가게 되었다.


이 사건외에도 김영삼은 일본인 학생들과의 싸움으로 무기정학을 당하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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