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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희 셰프 나이와 철학이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원래 김소희 셰프는 패션 디자이너였는데, 김소희 셰프가 오스트리아에 간 이유와 더불어 그녀가 진로를 바꾼 이유 역시 한번 짚어볼 필요가 있네요.


(김소희 강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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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 김소희 셰프 오스트리아 인지도 및 인기 이유

* 김소희 셰프 고향과 어린 시절

* 김소희 셰프 오스트리아 유학 간 이유는

* 김소희 셰프가 패션 디자이너를 그만둔 이유는

* 김소희 셰프의 실패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요리연구가 김소희(본명)는 1965년 2월 14일 부산에서 태어납니다(김소희 세프 고향 부산). 올해 52살이죠(김소희 셰프 나이).

(김소희 셰프 학력 학벌) 오스트리아 대학교 의상디자인학과 졸업

(김소희 셰프 경력 및 프로필) 오스트리아 빈에 위치한 '킴 코흐트' 오너 셰프


2006년 알 라 카르테 선정 외국 요리 부문 최고상

2007년 고어만드 월드쿡북어워드 세계 최고의 아시아 요리책 선정(김소희 셰프 책)

2008년 Tafelspitz 비유럽 요리부문 2등

2005~토크쇼 ‘Johannes B. Kerner’, “Kochberall(RTL), “Konkret”(ORF) 등 독일과 오스트리아 방송 다수 출연


2012년, 13년 한국의 마스터셰프 코리아 심사위원으로 활동


김소희 셰프 사진


* 김소희 셰프 오스트리아 인지도 및 인기 이유


김소희 셰프의 어린 시절과 성공 이유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김소희 셰프가 유럽에서 어떤 평가를 받는지부터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네요.



먼저 김소희 셰프가 운영하는 오스트리아 빈의 레스토랑는 오스트리아에서도 무척 유명합니다.

(이름 킴 코흐트 레스토랑, 뜻은 '킴이 요리하다')



킴 코흐트 레스토랑은 일주일에 4일만 문을 엽니다.

손님을 받는 시간도 6시와 8시로 정해져 있죠.


또한 예약은 1년에 단 4차례씩 한번에 3개월씩을 받는데, 예약이 시작된지 일주일이면 3개월분의 예약이 끝납니다.


오스트리아의 장관이든 수상이든 똑같이 예약을 하고, 자신의 차례가 되어서야 김소희의 요리를 먹을 수가 있죠.


김소희: "킴코흐트에는 몇가지 절대 원칙이 있어요. 철저한 예약제 역시 그 중의 하나죠. 간혹 예약을 위해 로비를 하거나 뒷돈을 주는 경우, 혹은 유력 인사의 이름을 대는 경우도 있지만, 아직까지 단 한번도 원칙을 어긴 적이 없어요."

(김소희 셰프 철학)



이런 성공을 발판으로 김소희는 오스트리아에 5개의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으며, 자신의 독자 와인 브랜드도 갖고 있습니다.

(킴코흐트 레스토랑에서 사용하는 '아시아'라는 와인과 비엔나 특산품 와인으로 생산하는 '비너 게미쉬터 자쯔(Wiener Gemischter Satz)'가 있음.)


또한, 김소희의 별명이 '비엔나의 요리여왕'이고,

오스트리아 방송국의 다수의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덕분에

오스트리아는 물론이고 독일에까지 얼굴이 잘 알려진 '스타 셰프'이기도 합니다.



이런 대단한 업적을 쌓은 김소희 셰프의 어린 시절은 어떤지,

또한 김소희 셰프의 남편과 아들 등, 가족 생활은 어떤지 무척 궁금하네요.



* 김소희 셰프 고향과 어린 시절


먼저 김소희는 부산에서 태어나서 자란 부산 토박이입니다.

다만 김소희 부모님이 이혼을 했기 때문에, 편모 슬하에서 자라게 되었죠.


김소희 쉐프: "어머니가 자갈치 시장 토박이셨다. 어머니가 아버지와 이혼한 후에 혼자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억척스럽게 일하시면서 나를 키우셨다."


김소희: "어머니의 요리솜씨는 정말 대단했다. 평상시에 장을 담그는 것은 물론이고 김치에 들어가는 젓갈 하나까지 전부 당신 손으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실 정도였다. 어머니와 나, 단 두 식구가 밥을 먹는데도, 다섯가지 김치를 만들어서 상에 올릴 정도였다. 나의 까다로운 입맛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 같다."


김소희: "(나중에 셰프로 성공한 다음에) 사람들이 나보고 음식 맛있다, 요리 잘한다 라고 칭찬을 많이 해주었지만, 사실 나는 어머니로부터 "우리 딸 손맛이 참 좋구나"라는 칭찬을 듣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로부터 인정을 못 받아서 정말 아쉬웠다."


확실히 김소희의 요리 솜씨는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 같습니다.



참고로 김소희는 방송에서도 진한 경상도 사투리를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김소희: "(요리는) 사랑이지예. 저와 요리의 관계는 파트너십이라예. 제가 요리를 사랑하고 존중하고 이해하다 보니 노력이 나와예."


김소희가 이처럼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김소희 쉐프: "젊은 시절 한때는 고급스러워 보이고 싶어서 표준어를 흉내 내기도 했었다. 그런데 주변의 교민들이 "평양 사투리 쓰는 여자"라고 수군거리더라. 결국 '마, 고마 생긴 대로 살자' 싶어서 서울말을 포기했다."

(김소희 셰프 인터뷰 역시 경상도 사투리로 유명한데, 아래는 전달을 돕기 위하여 표준어로 작성합니다.)



* 김소희 셰프 오스트리아 유학 간 이유는


1983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김소희는 돌연 오스트리아 빈으로 유학을 떠나게 됩니다.


김소희: "옛날에 롤러 부기라는 영화가 유명했다. 그걸 보고 롤러스케이트장에 한번 가고 싶었는데, 어머니는 절대 가지 못하게 하셨다. 우리 엄마가 굉장히 엄하셨다."


김소희: "어머니는 오직 내가 먹고, 자고, 공부하게만 하셨다. 그래서 내가 전교 1~2등을 했다. 그런데 엄마가 식당을 하셨는데, 그런 엄마에게 마늘 냄새, 양파 냄새가 나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생각하다 보니까, 디자인이나 패션쪽이 하고 싶어졌다. 


김소희: "또한 내 학창시절 꿈도 디자이너였다. 어릴 때 오드리 햅번의 영화 '티파니의 아침을' 보고, '바로 저게 여자들의 행복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김소희: "그래서 어머니에게 외국 유학을 가고 싶다고 했는데, 어머니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결국 전교 1등에서 전교 꼴등으로 떨어졌고, 어머니와 3개월 가량의 냉전기를 가졌다."


김소희: "또한 내 성격이 많이 극성맞다. 당시에 데모가 많았는데, 내가 대학교에 들어가면 데모대의 선두에 설 것이라고, 어머니가 걱정하셨다. 결국 어머니는 나를 지인이 있는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보내셨다."



이것이 바로 김소희 셰프가 오스트리아로 간 이유이죠.

이때 김소희는 디자인 학교에서 패션을 전공하게 됩니다(수석 졸업).

그리고 그녀는 패션 디자이너로 7년 동안 활동하게 돼죠.

(김소희 셰프 패션 디자이너)



김소희: "7년간 패션 디자이너로 활동하다가, 패션이 저와 맞지 않음을 깨닫고 일식 음식점을 운영하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김소희는 일식점을 운영하면서 본격적으로 요식업계에 뛰어들게 되는데,

그녀가 진로를 바꾼 이유에 대하여 조금 더 자세하게 알 필요가 있네요.



* 김소희 셰프가 패션 디자이너를 그만둔 이유는


김소희: "과거 비엔나에서 디자인 유학을 할 때였다. 나는 고개가 뒤로 젖혀질 정도로 거만했다. 담배도 다른 사람이 피는 것이 보기 좋았다. 또 영화에서 오드리 햅번이 담배 피는 모습도 예뻤다. 그래서 나도 담배를 피게 됐다."


김소희: "그러다가 문득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담배를 피는 모습을 보다가, '이건 아니다' 싶었다."


사실 담배는 기호식품입니다.

개인적인 기호로 피는 것이야 상관이 없지만, 단순히 다른 사람이 핀다고 따라 피우는 것은 무척 바보같은 일이죠.



김소희: "그리고 어느날 파티에 갔는데, 한 쪽에서는 대마초를 피더라. 한쪽의 책상을 열더니 마치 음식 나누어 주듯이 대마초를 나누어서 다 같이 피우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김소희: "그들이 나에게도 대마초를 권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대마초를 거절하고 나니까, 결국 모든 (디자인과 패션) 정보를 주지 않더라. 파티 정보, 패션쇼 일정 등 정보를 전혀 못 받게 되었다."


김소희: "내가 이런 생활을 이겨내서 디자이너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엄마 얼굴을 보기가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이 길(패션 디자이너)이 아니구나 싶었다."


유럽 및 오스트리아에도 이너 서클이 존재하고, 그 안에 들어온 사람들만 자신의 동료로 대우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김소희는 패션 디자이너의 길을 포기하고 요식업계로 뛰어들게 되었죠.


그런데 이 요식업계에서도 김소희는 처음에 실패하게 됩니다.



* 김소희 셰프의 실패


김소희: "서른살때 동업자와 일식집을 열었다. 내가 음식점에 대한 경험도 없다보니 요리사를 따로 뒀는데, 그 요리사가 요리를 대충대충했다."


김소희: "추운 겨울날 국수를 많이 해서 고명으로 김을 좀 얹고 국물을 붓는데, 국수가 차가웠다. (국물이) 식은 걸 알면서도 손님한테 그 요리를 내놨고, 그 요리에 대한 돈을 받았던 죄책감에 시달렸다."


결국 김소희는 요리사를 내보내고, 직접 칼을 잡기 시작합니다.


김소희 셰프에 대한 이야기가 2편으로 이어집니다. (2편 새창보기)

김소희 셰프 남편 윌리발트 발란육- 첫만남과 김소희 셰프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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