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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정수라 정주영 루머가 굉장한 파급력을 가졌죠. 덕분에 정수라 아들 이야기까지 신빙성있게 받아들여집니다.

그런데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에 대한 3가지 간접적인 증거가 있죠.

이런 증거를 바탕으로, 이들의 행동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네요.


그외에 정수라 환희, 정수라 노래모음 7곡입니다.


정수라와 비슷한 연배에 스캔들로 문제가 되었던 허윤정 포스팅 (새창보기)

허윤정 마약 스캔들 사건의 결과- 결백을 호소했지만


(스폰서 링크)


# 목차

* 정수라 정주영 루머가 나온 배경

* 실질적인 사진 증거도 없이

* 정수라와 정주영의 서로 다른 행보

* 정수라 김완선이 정말 동서지간일까?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가수 정수라(본명 정은숙)은 1963년 10월 28일 서울에서 태어납니다(정수라 고향). 올해 53살이죠(정수라 나이).

(정수라 종교) 불교

(정수라 키 몸무게) 165cm, 52kg

(정수라 학력 학벌) 서울 한양여자중학교, 서울 진선여자고등학교 졸업

(정수라 프로필 및 경력) 1974년 12살(초등학교 5학년)의 나이로 CM송 '종소리'를 부르며 가수로 데뷔합니다.


이때의 활동을 기반으로 제 1회 한국가요제에서 인기상과 금상을 수상했지만, 대중들에게 얼굴이 잘 알려진 것은 성인이 된 다음입니다.


정수라는 1982년 '그런 사람이 나는 좋아'로 본격적인 가수 활동을 시작했고, 1983년 건전가요 '아 대한민국'으로 큰 인기를 끌게 됩니다.

(당시 전두환 정권 당시 가수들의 음반에는 무조건 건전가요가 포함되어야 했음)


이후 정수라는 대표곡, 풀잎이슬, 도시의 거리, 눈물의 의미, 난 너에게, 환희, 우리 둘이 등으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게 됩니다.


정수라 사진


* 정수라 정주영 루머가 나온 배경


1980년대를 주름잡던 정수라는 1990년 미국 진출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1991년 저메인 잭슨(마이클 잭슨의 형)과 함께 듀엣으로 4곡의 노래를 발표하게 되었죠.


저메인 잭슨: "정수라는 신이 내린 목소리같다. 특히 동양이면서도, 흑인의 독특한 분위기가 섞여 있다. 그래서 내가 정수라에게 듀엣을 제안했다."



이렇게 정수라는 1991년 미국 활동을 하면서, 한국에는 얼굴을 비추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때 정수라에게 루머가 퍼지게 되었죠.

바로, '정수라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에 대한 루머였습니다.


정수라: "재벌의 아들을 몰래 낳아 500억 원을 받고 쫓겨났다는 소문이 돌았다. 당시에 미국에서 음반 작업을 하고 있을 때였다."(정수라 아들 루머의 진실)


정수라 과거 사진


정수라 리즈시절 사진


정수라: "대기업 회장의 아들을 낳으면 재산을 주려고 했는데, 딸을 낳아서 양쪽 집안이 재산 싸움을 한다는 루머가 돌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그 루머가 '내가 쌍둥이를 낳았다'라는 이야기로 바뀌더라."(정수라 딸 루머)


정수라: "김완선과 동서지간으로 (재벌 회장이) 양말공장을 줬다는 소문도 돌았다. 또한 대기업 회장의 장례식장에 검은 선글라스로 변장하고 조문했다는 루머도 있었다."


정수라: "루머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너무도 뜬금이 없어서 해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악성 루머가 오히려 늘어나게 되더라. 그래서 이에 대한 입장을 밝힌다."


정수라: "그런 루머는 전혀 사실무근이다. 사람들이 내 진실을 알아줬으면 한다."



이렇게 정수라는 정주영과의 루머에 대하여 정면으로 반박으로 합니다.

그렇다면 정수라의 말이 맞을까요? 아니면 세간의 루머가 사실일까요?



여기에 대하여 3가지를 살펴봅니다.


정수라 젊은시절 사진


정수라 노래모음 7곡 

 정수라 환희 MBC가요베스트 20130721  


 정수라 아! 대한민국 MBC가요베스트 20130721  


 정수라 우리둘이


정수라 아버지의 의자 - 정수라 (1985年)  


 정수라 바람이었나  


 정수라 내 사랑을 본적이 있나요 - 정수라 (클래식 동영상 카페)  


 정수라 풀잎이슬 - 정수라 (1984)


* 실질적인 사진 증거도 없이


먼저 정주영 회장은 2001년 사망합니다.

당시 현대그룹과 정주영 집안은 그의 장례식을 '가족장'으로 치루지만,

엄청난 조문객과 기자들로 인하여 국장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총 33만명의 조문객이 다녀감)


그런데 정수라가 몰래 변장을 하고 정주영의 장례식장에 다녀갔다는 이야기도 웃기지만, 그런 정수라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 하나도 없었다는 점도 무척 이상합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수많은 사진기자들과 더불어 일반인들은 왜 그런 정수라의 사진을 찍지 않았을까요?


정주영 회장 장례식장


* 정수라와 정주영의 서로 다른 행보


두번째, 정주영은 1992년 한국의 대통령 선거에 출마합니다.

당시 국민당 대통령 후보였죠.


그런데 이때 정수라도 공교롭게 미국활동 직후 대통령 선거 지원유세에 나섭니다. 바로 민자당의 김영삼을 지원했죠.


정수라: "(유세장에서 아 대한민국의 노래를 부른 후에) 김영삼 후보가 우리나라 지도자가 돼야 한다. 김영삼 후보가 꼭 당선되길 바란다."


이에 대한 왕회장(정주영)의 반응은 어떨까요?

본인 역시 유세장 지원이 가능한 연예인들을 더 모으려고 했습니다.

만약, 정수라와 정주영의 관계가 실제로 친밀했다면,

아마 왕회장의 성격상 '배신자!'라고 노발대발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았을까 하네요.



* 정수라 김완선이 정말 동서지간일까?


마지막 세번째 증거는, 정수라가 2006년 결혼할 때 나타납니다.

이때 정수라는 결혼식에 자신의 절친 김완선을 초대합니다.

그리고 신부였던 정수라가 던진 부케를 바로 '김완선'이 받게 되었죠.


만약에 정말로 루머처럼 '정수라와 김완선이 동서지간이었다'면, 자신의 결혼식에 초대하고, 또 부케를 던지는 일이 있었을까요?


상당히 가능성이 낮은 이야기죠.


그런데 정수라의 성격이 보통 사람과 많이 다르다면, 이게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김완선 측면에서 생각하면 또 어떨까요?



정말로 '김완선과 정수라가 동서지간'이면, 김완선이 그런 정수라의 결혼 초대에 응해 직접 축하하러 가고, 또 본인이 부케를 받을 수 있을까요?


김완선과 정수라의 성격이 둘다 무척 이상해야지만 발생할 수 있는, 아주 가능성이 희박한 사건입니다.



이처럼 정수라 정주영 관계는 세간의 루머와 당사자들의 관계가 많이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이후 정수라는 남편 장대식을 만나 결혼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상당히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죠.


정수라 이야기가 2편으로 이어집니다. (2편 새창보기)

정수라 남편 장대식 구속- 정수라 이혼사유의 2가지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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