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미 임동신 러브스토리 및 인생 이야기
주현미는 보기 드문 화교 출신 가수입니다.
하지만 아무나 성공하기 어렵다는 한국 가요계에서 일찍 성공해서 오랫동안 정상의 자리를 지켰죠.
또한 결혼해서 가정에도 성공한, 일과 사랑을 동시에 쟁취한 여자이기도 합니다.
주현미의 인생사와, 주현미가 남편 임동신과 행복한 이유가 궁금해지네요.
주현미 남편 사진
트롯트 가수 주현미는 1961년 9월 27일 광주에서 태어납니다(주현미 고향). 올해 54살이죠(주현미 나이).
(주현미 종교) 로마 가톨릭
(주현미 학력 학벌) 한성화교초등학교, 한성화교중학교, 한성화교고등학교, 중앙대학교 약학과
(주현미 프로필 및 경력) 1981년 MBC 강변가요제로 데뷔
사실 주현미는 이미 1975년 중학교 2학년의 나이로 기념음반 '고향의 품에'를 취입했고, 1981년 중앙대 재학 시절 약대 음악 그룹 '진생라딕스'의 메인 보컬로 MBC 강변가요제에 출전하여 입상하게 됩니다.
이후 히트곡 비내리는 영동교, 울면서 후회하네, 신사동 그사람, 잠깐만, 짜라짜라, 여백, 대지의 항구 등을 남깁니다.
주현미 젊은 시절 과거 사진
주현미는 대만인(중국인)아버지 주금부(이름)와 한국인 어머니 정옥선(이름)의 사이에서 태어납니다.
주현미: "초등학교 입학할 때 대만 국적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화교 학교에 진학했었다. 학교에 가니 책을 보니 중국어로 된 교과서를 마주하고 혼란스러웠다. 많이 헤맸다."
주현미: "아이들과 배우는 것도 배우는 문화도 달라지다 보니 친구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내 동생들은 여전히 대만 국적이라 한국인 어머니의 호적에 올라있지 않다."(주현미는 남편 임동신과 결혼후 한국으로 귀화함)
주현미는 1984년 약대를 졸업한 후 약사면허증을 취득하고, 약국을 개업합니다.
하지만 주현미의 어린 시절은 그리 풍족하지 못합니다.
아버지(이름 주현부)가 한의사 출신으로 우리나라와 중국, 대만, 일본 등을 오가며 한약재 사업을 했는데, 이 사업이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주현미는 아버지와 불화를 겪습니다.
주현미: "아버지는 중국 산동 출신인데 국적은 타이완이다. 당시 모든 화교 출신들이 타이완 국적을 갖고 있었다."
즉 주현미 아버지는 중국 산둥(산동성)에서 태어나 4살때 부모님을 따라 한국으로 이주를 한 화교 2세였던 것이죠.(주현미 아버지 화교 2세, 주현미는 화교 3세)
주현미: "화교 출신 한의사였던 아버지가 힘들게 사업을 시작했다가 경험이 없어 망했다. 부모님이 돈을 벌어 해외로 나간 뒤 나는 소녀가장이 됐고 동생들을 챙기며 힘겨운 삶을 살아야 했다."
주현미: "아버지를 향해 원망한 마음이 커졌고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원망했다. 결국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손주를 보여주지 않았다. 내 자신이 용서가 안된다. 아버지께서 그렇게 빨리 돌아가실 줄은 몰랐다."
만시지탄이죠.
이것이 주현미 가슴에 큰 못이 된 것 같습니다.
어쨌든 주현미는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처음부터 안정적인 직업인 약사를 선택하게 됩니다.
주현미: "어머니가 "여자도 직업이 있어야 한다"고 하셔서, 약대에 진학해서 졸업하고, 한동안 약국을 운영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결국은 그 약국을 접었죠. 아마 우리나라에서 약국 운영해서 망한 사람은 저밖에 없을 거예요."
주현미: "사실 저는 대학 졸업 후 제약회사 연구부에 들어가고 싶었어요. 하지만 어머니가 동생들 뒷바라지를 해야 한다며 반강제로 약국을 차리게 했는데, 사업 경험 한 번 없고 내성적인 제가 어떻게 약국을 운영할 수 있었겠어요."
주현미: "당시는 의약분업이 돼 있지 않을 때라 손님들 가운데는 무조건 항생제를 처방해서 달라거나, 증상과는 상관없는 약을 막무가내로 달라고 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럴 때마다 원리원칙대로 ‘이러시면 안 된다’‘약은 되도록이면 안 드시는 게 좋다’고 말씀드렸죠. 그랬더니 동네에서‘깐깐한 약사’라고 소문 나 손님이 점점 줄더라고요."
주현미: "지금 생각해보면 순진했죠. 그때는 의약 분업 전이라서 마음만 먹으면 그런 약을 팔 수 있었거든요. 누가 어디 아프다고 찾아오면 영양제 처방하고 수입 올리고.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이 그런 걸 못했죠. 학교에서 배운 그대로 했으니까요. 그래서 동네 어르신들 사이에서도 제가 화제였어요."
주현미의 약국 사업이 점점 안 좋아지던 상황에 작곡가 정종택이 주현미의 약국을 찾아옵니다. 예전 중학교 2학년때 주현미 첫번째 앨범을 같이 녹음했던 작곡가였죠.
하지만 이번에는 주현미 어머니가 주현미의 가수 데뷔를 반대합니다.
주현미: "가수로 나설 때 친정어머니의 반대가 심했어요. 데뷔 20여 년이 지날 때까지 안정된 약사의 길을 마다하고 험난한 가수의 길을 선택한 저를 못마땅해 하셨죠."
주현미 어머니는 나중에 "우리 딸이 노래 하나는 잘한다."며 마음의 문을 열었지만, 주현미 데뷔 초기에는 완강하게 딸의 가수 직업을 반대합니다.
결국 주현미는 가수와 약사 활동을 병행하면서 가능성을 엿보게 되죠.
이때 녹음한게 히트 메들리 음반 「쌍쌍파티」(1984년)였고, 이것이 크게 히트하게 됩니다. 이후 1985년 비내리는 영동교 등의 히트곡으로 인기 가수의 반열에 오르게 되죠.
주현미는 화교 출신으로 차별을 받기도 합니다.
주현미: "화교 출신이 데뷔 당시는 이슈화로 도움도 됐지만 신인상을 받았을 당시 한 기자가 외국인에게 어떻게 상을 줄 수 있냐는 기사를 써서 속이 상했었다."
또한 인순이와도 친하게 지냅니다.
주현미: "결혼 전 언니(인순이)와 40일 동안 같이 공연을 다닌 적이 있는데 저는 화교 출신이고 언니는 혼혈이니까, 그런 데서 자연스럽게 공감대가 형성됐던 것 같아요.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 정서로는 약간 이방인 쪽에 가까웠다고 할까요? 아무튼 그게 계기가 됐는데 이후로 언니가 저를 많이 챙겨줬어요."
그러다가 주현미는 1986년 가수 임동신을 만나게 됩니다.
40일간의 미주 공연이 계기가 되어서 연애를 하게 되었죠.
주현미: "40일 장기간의 미주공연이 있었는데 그때 남편과 정이 들어 결혼하게 됐어요."
주현미 남편 임동신은 1957년생으로 주현미보다 4살 연상입니다.
(일부 포털에서의 1960년생은 잘못된 것)
(임동신 프로필) 록그룹 엑시트(EXIT)의 보컬리스트 출신
조용필의 밴드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
록그룹 ‘비상구’ 메인보컬로 활동
임동신 과거 사진
현재는 음반 제작자로 활동(주현미 남편 임동신 직업 뮤지션 출신 사업가)
이렇게 주현미 임동신이 연애를 시작했지만, 주현미 어머니는 둘의 사이를 탐탁치 않게 여깁니다. 주현미가 좀더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과 사귀기를 바랬기 때문이죠.
또한 주현미는 1986년 한창 인기가 있을 때 자신의 열애 사실을 공개합니다.
보통 팬들이 떨어져 나갈 것을 우려해서 이런 사실을 숨기는 주현미는 그런 욕심이 없었던 것 같네요.
그리고 주현미 임동신은 1988년 결혼식을 올리게 되고, 아들(임준혁)과 딸(임수연)을 낳습니다(주현미 자녀 자식)(주현미 가족 관계).
주현미 아들 사진(임준혁은 현재 버클리 음대에 재학중)
이때 주현미에 대해서 에이즈 루머가 돌기도 합니다.
주현미: "나는 활발하게 왕성하게 활동할 때 스캔들이 없었어요. 하지만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루머가 많았죠. 아이들이 어려서 7년 가량 신곡을 발표하지 않고 아이들을 키웠던 시기가 있었는데 에이즈 감염설로 죽었다는 소문이 퍼지더라구요. 터무니 없는 얘기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주현미: "그때가 마침 미국 유명배우 록 허드슨이 에이즈로 사망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에이즈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았을 때인데 한 잡지에 이니셜로 한 가수가 에이즈에 걸렸다는 기사가 났어요. 처음엔 저도 그 가수가 누군지 몰랐는데 어느 날 저라는 소문이 파다하더라고요. TV 틀면 매일 나오다시피 하던 가수가 갑자기 보이지 않았던 탓에 그런 소문이 돌았던 것 같아요."
주현미는 결혼한지 거의 30년(올해로 27년째)인데, 처음이나 지금이나 남편과의 애정에 변함이 없습니다.
1988년 MBC 가요대상 수상소감으로 “여보”외치며 울먹였고, 현재도 좋은 금슬을 자랑합니다. 주현미 부부는 어떻게 변함없이 서로에 대한 사랑을 유지하고 있을까요?
주현미: "남편이 결혼하면서 자기 일을 접고 제 매니지먼트와 음반 프로듀싱 작업을 도와주고 되었어요. 같이 음악을 하던 사람인데 저 혼자 무대 위 영광을 누리게 돼 미안하더라고요. (시상식때 '여보'를 외친 것도) 마음속으로 ‘이 상을 받을 사람은 내가 아니라 남편인데’라는 생각을 했어요."
주현미: "남편이 그 후에도 음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식구들 모두 자는 밤에 혼자 헤드셋 끼고 기타 연주를 하곤 했는데 요즘에는 안 하는 것 같더라고요."
주현미: "남편에게 항상 안타깝고, 미안해요. 안 좋은 소리도 들었겠죠. (자신의 가수 활동을 포기하고 저를 돌봐준 것이) 어려운 선택이었을 거예요."
확실히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남편이 부인뒤에서 뒷바라지를 하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주변에서 많이 쑥덕거리죠.
주현미 남편과 한때(임동신 사진)
임동신은 자기 아내의 음악적 재능을 잘 알고 자신의 직업을 포기하고 아내를 돕습니다. 그런 희생이 있었고, 주현미 역시 남편의 그런 희생을 잘 알고 있기에, 둘은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또한 주현미는 욕심이 별로 없습니다.
주현미: "당시 제가 결혼을 스물여덟에 했으니까(데뷔 3년차), 연예인치고는 좀 이르긴 했어요. 하지만 후회하지 않아요. 당시로서는 인기, 가수로서의 삶, 그런 거 다 포기하고 결혼하고 싶었으니까요. 제가 우리 남편을 굉장히 좋아했거든요. 물론 노래가 천직이다 싶고 중요하지만 저한테는 가족이 더 소중해요. 제 삶을 정리하면서 돌아보면 ‘우리 남편이 제 반쪽이 맞다’는 생각이 들어요."
주현미: "아이들 키우며 살다 보면 의견 대립이 없을 수 없어요. 그런데 결혼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그 순간을 지혜롭게 넘기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더라고요. 일단 어떤 문제로 다툼이 생기면 그 문제만 가지고 이야기하지, 다른 일에까지 확대시키지 않는 거죠. 다툴 때 제가 이길 확률은 반 정도 돼요. 남편은 결국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한다고 불평할 때가 많지만 저는 그런 것 같지도 않아요."
이것이 주현미 부부의 행복 비결인 것 같네요.
주현미 가족사진(주현미 딸과 아들, 남편)
주현미는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도 공공연히 남편과의 사이를 자랑합니다.
주현미: "남편은 20여 년간 기쁘거나 힘든 순간을 모두 함께 해온 사람이라는 믿음이 있어요. 남편을 만난 건 내 인생의 행운이죠."
주현미: "처음 연애할 때처럼 격정적인 사랑은 아니지만 20년 가까이 살면서 기쁜 순간, 힘든 순간을 항상 함께해온 사람이라는 믿음이 있어요. 저도 남편한테 그런 존재일 거라는 걸 믿고요. 제가 마음 놓고 음악에만 전념할 수 있는 것도 남편이 외조를 잘 해주는 덕분이에요. 사람들이 저를 보고 ‘남편이 얼마나 잘해주기에 그렇게 아무 생각없이 사느냐’고 하는데 틀린 말이 아니에요."
보통 쇼윈도우 부부는 대중들 앞에서는 행복한 척을 하다가 어느날 갑작스럽게 이혼 소식을 전하며 대중들을 충격에 빠뜨리곤 합니다.
하지만 주현미 임동신 부부는 그런 쇼윈도우 부부와는 완전히 다른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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