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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 연예인

하일(로버트할리)아내(부인)명현숙-하숙집 옆집 처녀

하일은 우리나라의 국제 변호사 겸 외국인 학교의 이사장이면서 방송인입니다. 직업이 여러 개네요. 사실 샘해밍턴이 뜨기 전에는 하일과 이참, 이다도시 등이 유명한 외국인 방송인들이었죠.

(물론 국제 변호사란 면허증이나 자격증은 없습니다. 다만 외국 법, 특히 이민법에 대하여 능통한 전문가들을 보통 이렇게 부르죠.)

   

1961122일 미국 유타주에서 태어난 하일(고향)의 원래 이름은 로버트 할리입니다. 다만 1997년 대한민국으로 귀화하면서 정식으로 한국인이 되죠. 이때 영도 하씨라고 스스로 본관과 성을 만들어서 새로운 이름을 짓습니다.

  

하일의 종교는 모르몬교(몰몬교, 공식명칭: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인데, 1979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음에 모르몬 교에서 필수적으로 해야하는 해외 선교를 계기로 한국으로 오게 됩니다.

 

하일 명현숙 부부 사진

 

당시 하일은 한국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기에 18개월 선교 활동 동안 아무런 감흥도 없이 지냅니다. 그런데 정작 미국으로 돌아간 다음에는 계속 부산의 자갈치 시장과 친구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미국 대학교도 합격해서 1년을 다니지만, 한국에 대한 향수병(?)은 사라지지 않았고, 결국 하일은 다시 한국의 연세대학교 교환 학생으로 1년동안 공부합니다.

(그 후에 브리검영 대학교 정치외교학 졸업,

웨스트버지니아주립대학대학원 법학 박사, 하일 학력)

 

그러다가 1987년 초에 박사 학위를 받은 후에 계속 거주할 목적으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같은해 10월에 아내 명현숙과 결혼식을 올립니다.

(명현숙의 나이는 하일보다 6살 연하, 올해 48

하일 나이는 54)

 

 

이와중에 복잡한 사연이 있는데, 원래 부인 명현숙은 하일이 있던 하숙집의 옆집 아가씨였습니다. 두 사람이 같이 교회를 다니면서 친하게 지내는데, 처음 하일이 미국으로 돌아갈 때만 해도 두 사람은 연인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명현숙이 이런 부탁을 했을 정도였죠.

"가서 멋진 한국인 있으면 소개해도(부산 사투리)."

 

하일: "몇 명 연결해주기도 했어예."

하일이 직접 소개해준 남자들과는 잘 안된 모양입니다.

 

그러다가 1985년에 하일은 서울 신촌에서 아내를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됩니다. 명현숙이 자동차 판매사원으로 일하고 있었고(직업), 하일은 로펌에서 일하기 위하여 중간중간 한국으로 들어왔을 때였죠.

 

하일 젊었을 때 사진

 

두 사람 모두 서울에는 친구가 없었기에 자주 만나서 데이트를 시작합니다. 물론 서로 연인관계가 아니라, 그냥 안면이 있는 친구 관계였죠.

당시에는 국제 결혼이 굉장히 드물었기 때문에 상상을 할 수도 없었죠.

 

그러다가 옆에 있던 친구가 잘해보라며 부추겼고, "말도 안된다!"라고 딱잡아 떼던 두 사람 역시 점차 상대에게 호감을 갖기 시작합니다. 아니, 원래 호감이 있었기에, 자신의 마음을 깨닫게 된 거죠.

결국 하일이 명현숙에게 프러포즈를 하는데, 문제가 생깁니다. 양쪽 집안 모두에서 반대를 한 것이죠.

 

하일: "부산 가서 장인 장모님한테 허락받으려고 했는데 잘 안됐어요. 끈질기게 설득해서 허락을 받기는 했는데 우리 부모님이 문제였어예."

 

하일 유행어: 한 뚝배기 하실래예

 

하일의 미국 부모님 역시 아들이 외국인 여자와 결혼한다는 것을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하일은 9남매의 장남이었기에, 더더욱 충격은 컸고, 심지어 그의 누아와 일곱 동생들까지 찬성과 반대로 반씩 나뉘어져 격론을 벌였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고집이 센 하일은 먼저 동생들을 한명씩 설득해서 도움을 요청하고, 마지막에 부모님을 설득해서 결혼 허락을 받게 됩니다.

물론 부모님이 허락을 해서 한국의 결혼식에 참석도 하지만, 별로 내켜하지는 않는 상태였죠.

 

하일: "우리 와이프가 성격이 참 좋아요. 아버지가 평소에 유머러스한데 그런 것도 잘 맞춰드리고, 어머니한테도 공손하게 잘하고 하니까 점점 좋아하시더라고예. 3년 전인가, 아버지가 전화해서 현숙! 내가 너희 결혼할 때 반대한 거 알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저지른 제일 큰 실수였어. 우리 자식들보다 더 널 사랑해라고 캤대요. 그때 좀 눈물이 나더라고예."

 

 

결국 하일이 고집을 부려서 결혼을 했고, 또 명현숙이 현명하게 잘 처신했기에, 부모님의 진정한 축복을 받게 되었네요.

 

1987년이면 한국이나 미국이나 많이 보수적이었던 시절인데, 그런 용기를 내고, 또 끝내는 성공한 하일과 명현숙 부부가 정말 대단한 거 같습니다.

 

그런데 하일은 1987년에 결혼을 한 뒤에, 1997년에 아예 한국으로 귀화를 하게 됩니다(현재 국적이 한국). 

당시까지만 해도 미국인이 한국 국적을 취득한 경우는 해방 이후 단 7건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이례적이었습니다.

 

게다가 미국인이 한국으로 올 때는 무비자로 입국이 가능하지만, 한국인이 미국으로 갈 때는 비자 심사가 무척 까다로울 때죠.

미국 대사관의 영사가 직접 하일을 만류하기도 합니다.

 

 

하일: "미국 대사관에 인터뷰 받으러 갔더니 영사가 미국 국적을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했어요. 국적을 버리면 미국 비자를 안 줄 수도 있다고요."

 

하지만 이미 오랫동안 한국땅에서 살았고, 또 자신을 한국인이라고 생각한 하일은 끝내 귀화(미국 국적 포기)를 하게 됩니다(하일 귀화 이유).

 

사실 하일에게는 미국에 부모님과 형제자매가 있기 때문에 미국 비자가 안나오면 큰일날 일인데도, 반드시 잘 되리라는 믿음 하나만으로 이렇게 행동을 한거죠.

물론 미국 영사의 말은 그냥 허풍이었습니다. 나중에 하일이 미국 비자를 신청하자 별탈없이 잘 나왔거든요.

 

 

물론 비자 신청을 비롯해서 미국 공항에서의 입출국 수속들은 불편합니다. 아무래도 외국인보다는 미국인들이 좀 더 빨리 수속을 할 수 있죠.

이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하일이 한국 여권을 내밀자, 미국 공항 심사관(?)이 놀란 얼굴로 하일을 쳐다봅니다. 왜냐하면 전형적인 한국인 얼굴이 아닌데다가, 영어도 네이티브 스피커이거든요.

그래서 미국으로 몰래 밀입국하는 테러리스트(?)가 아닌가 의심하게 된 거죠.

 

이렇게 미국 출입국 심사에서 여러번 곤란을 겪었던 하일은 나중에 요령이 생기게 됩니다. 미국 공항에서 한국인 직원을 부르면, 그 사람이 하일이 귀화한 유명한 방송인이라는 사실을 설명하고, 그 다음부터는 출입국 심사가 좀 빨라졌다는 사실입니다.

 

 

   

하일 명현숙 부부가 1987년 결혼한 이래 벌써 28년이 지났네요. 문화적인 충돌때문에 쉽지 않았을 텐데, 이혼하지 않고 잉꼬 부부로 잘 살고 있은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하일 명현숙 부부 사이에는 큰 아들 하재선(나이 26살, 2014년 기준), 둘째 아들 하재욱(나이 23살), 막내 아들 하재익(나이 19살)이 있습니다. 혼혈의 장점을 받았는지, 세 아들 모두 훈남들이네요. 게다가 둘째 아들 하재욱의 경우에는 군대도 갔다왔고, 두 아들은 아버지가 다녔던 미국의 브리검영 대학교와 하와이 대학교를 다니는데, 셋째 아들인 하재익도 아마 여기 대학에 들어간 거 같네요. 아버지로써 셋째 아들의 성적이 별로 좋지 않아서 하일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그래도 역시 미국 대학으로 유학을 갔네요.

하일이 영도 하씨의 시조이고, 영도 하씨는 이렇게 총 4명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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