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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 탤런트 겸 영화배우 김혜자처럼 이미지와 실제 성격의 간극이 큰 배우도 드물 겁니다.

 

김혜자는 최장수 드라마 전원일기에 출연해서 정 많고 포근한 서민적인 어머니 캐릭터로 많은 사랑을 받았고, 또 영화에도 진출하여 신들린 연기력을 보여 주기도 했습니다.

배우로서는 남부러울 것이 없는 경력이지만, 개인적인 생활에 있어서는 김혜자 본인은 후회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김혜자는 19411025일 서울에서 태어납니다(고향). 올해 나이가 73살이죠.(그런데 1025일은 호적상의 생일이며, 실제 생일은 914(음력 723)입니다.)

 

 

학력

경기여자고등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생활미술학 (중퇴)

데뷔KBS 1기 공채 탤런트

종교 개신교

 

김혜자 집안은 굉장한 부자였습니다.

김혜자: "지금 퇴계로와 서울역이 통하는 길이 우리 집이었어요. 거실이 한 200평쯤 됐어요. 부자여서가 아니라 아버지가 미 군정 시절 재무부 장관에 해당되는 일을 하셔서 살게 된 사택이었어요. 만날 손님들이 와서 파티를 했고, 공원인 줄 알고 놀러들어오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어요. 영화 촬영은 아마 식구들이 배우 구경하려고 빌려줬을걸요? 서양 사람들이 만날 모임에 와서 닥터 김!”하고 아버지를 부르던 소리, 부부동반 댄스 파티의 음악소리, 그 음향들만 기억이 나요."

 

거실이 200평이라니, 정말 운동장만했던 집이네요.

김혜자: "어머니는 열아홉살에, 열일곱 아버지에게 시집왔어요. 딸 둘 낳고 아버지가 훌쩍 유학을 떠나 17년 만에야 돌아오셨고 그 다음에 제가 태어났죠. 유학 떠나던 날 냉수 한잔 주시오해서 남편과 흘깃 마주친 눈길 하나의 기억으로 그 시간을 견디셨대요. 어머니는 무척 미인이셨어요. 친가가 전북 군산의 거상이었는데 사랑방에 하도 손님이 들락날락하니까 아침마다 상을 열여덟번 차렸대요."

 

 

 

김혜자 아버지가 유학 생활을 17년 동안 할 정도로 엄청난 부자였네요.

다만 김혜자가 언니들과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났습니다.

게다가 김혜자의 어머니가 굉장한 미인이었죠.

 

김혜자: "어머니는 딸 둘 키우랴 살림하랴 외로울 새가 없어 버티셨겠죠. 그렇게 힘들게 지내다 폐결핵에 걸려 선교사들이 세운 대전의 병원에 입원하셨는데 의사인 총각 선교사가 우리 엄마에게 반한 거예요. 정식으로 어른들께 말씀드리고 결혼하고 싶다는 말까지 나왔대요. 어머니는 말을 모르니 그저 그가 들어오면 돌아눕기만 했대요. 집에서 그 일을 알고 부랴부랴 퇴원시켰죠."

 

당시에 서양 선교사가 한눈에 반할 정도의 미모였던 모양이네요.

어쨌든 김혜자의 어머니는 자주 병치레를 했고, 김혜자는 17살 터울나는 언니의 손에서 거의 자라게 됩니다.

 

 

김혜자 영화 마더 

 

김혜자 역시 어머니의 미모를 물려받아서, 어릴 적부터 미인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리고 대학 2학년때인 21살에 데뷔해서 KBS 공채 1기 탤런트로 뽑히는데, 드라마 한편을 하고는 은퇴를 해버립니다.

자신의 연기력에 좌절을 했기 때문입니다.

 

김혜자: "부족함을 많이 느꼈다. 열정만 많았지 준비가 안 된 것 같더라. 그래서 바로 시집갔다. 마침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고 도망가고 싶었다.

결혼해서 아이들만 봤다. 4년 정도. 아이가 크니까 놀자할 때 나가더라. 그러니까 이게 내가 바라던 삶인가. 어릴 때 꿈은 배우였는데싶었다."

 

(김혜자 젊은시절 과거 사진 리즈 시절)

(왼쪽부터 김윤경, 남정임, 나문희, 윤여정, 김혜자)

 

 

 

(김혜자가 확실히 젊었을때도 미인이기는 했는데 나이는 좀 들어보이네요. 그래서 나이가 어릴 적부터 엄마 역을 많이 맡았던 거겠죠.)

 

그런 김혜자에게 구원의 손길이 닿습니다.

김혜자: "그 때 고등학교 선배를 만났고 연극을 해보지 않겠느냐 해서 연극을 시작했다. 차근차근 연기 공부를 했고 MBC에 스카웃 됐다."

 

, 연기력에 좌절을 겪은 김혜자가 다시 연극을 하면서 연기력을 쌓았고, 지금의 김혜자가 완성된 것입니다. 김혜자는 요즘도 가끔 연극하면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혜자의 남편의 이름은 임종찬이고, 원래 직업이 섬유업 사업가였습니다. 그리고 김혜자의 연기 생활에 많은 도움을 줍니다.

 

 

임종찬: "당신은 혼자 살아야 하는 사람인데 결혼을 해서 이렇게 부대끼는 거요. 음식 안 주면 고대로 앉아 굶을 사람이오."

(여자가 이 정도로 살림을 하지 않으면 이혼할 수도 있는데, 임종찬은 그러지 않았네요.)

 

임종찬은 실제로 저녁 7시만 되면 어김없이 귀가해 초인종을 눌렀던 가정적인 사람이었고, 김혜자에게만큼은 "무조건 잘했다."라고 지지해 주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김혜자가 연기를 하는데 남편의 외조가 1등 공신이었던 셈이죠.

 

하지만 임종찬은 1998년 췌장암으로 사망합니다. 남편이 사별한 뒤에도 김혜자는 작고한 남편을 그리며 아직 재혼하지 않고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김혜자는 자신의 삶을 어느 정도 후회합니다.

김혜자: "엄마 노릇을 거의 못 했어요. 지금은 세상에 없지만 남편의 역할이 컸어요. 아이들 학교 일도 신경 쓰지 못했고요. 작품에 몰입하면 예민해지는 스타일이라서 가족이 많이 고생했어요. 그들의 희생이 없었으면 배우 김혜자라는 이름으로 살아올 수 있었을까 싶어요."

 

 

게다가 김혜자는 한때 담배를 너무 많이 피웠던 골초였습니다.

김혜자: "담배는 3년 전에 끊었어요.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맛이 없어졌어요. 커피를 마시면서 담배를 태우는데, 갑자기 맛이 없더라고요. 그 길로 바로 끊었어요."

 

아직 사회가 보수적이었던 80년대나 90년대에 김혜자가 담배를 피운다는 소문이 났으면, 오늘과 같은 국민 엄마의 이미지는 얻지 못했을 겁니다.

 

김혜자: "딸이 기도를 해서 끊을 수 있었어요. 담배 맛이 이상하다고 느껴지던 그날, 미국에 있는 딸이랑 통화를 했어요. 제가 담배 맛이 이상하다, 끊어야겠다고 말했더니 딸이 울면서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매일 새벽 기도를 했다고요."

그래도 지금이라도 김혜자가 금연에 성공했다니, 건강을 위해서라도 다행이네요.

 

 

참고로 김혜자의 남편이 최불암이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종종 있습니다. 이것은 아마 김혜자와 최불암이 전원일기에 보여주었던 부부 모습이 워낙 인상적이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또한 최불암의 아내는 김민자인데, 한때 김혜자와 김민자가 자매지간이고, 김혜자와 최불암은 처제 형부 사이라는 루머가 돌기도 했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모두 헛소문이죠.

 

김혜자와 임종찬 부부 사이에는 11녀가 있으며, 아들의 이름은 임현식입니다. 아버지가 물려준 섬유 사업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이미지를 이용한 요식업에도 진출해서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정성에프에스의 대표(직업)로 일하고 있으며, 김혜자의 이름을 딴 김치와 떡 등을 판매하고 있고, 김혜자의 딸은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김혜자와 아들 임종찬 사진

 

임종찬이 어머니의 살림 솜씨를 폭로한 적이 있습니다.

임종찬: "사실은 어머니가 드라마에서 보여줬던 모습과 달리 살림솜씨가 없다. 특히 요리를 못한다."

 

비록 김혜자의 원래 모습이 살림이나 요리에 헛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오늘날 김혜자가 이렇게 성공적인 연기 인생을 가지게 된 것은 가족(남편과 아들, )들의 든든한 성원 덕분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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