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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이야기

고영주 이사장 임기 병역 군대 정리

방송문화진흥회, 즉 방문진 이사장 고영주에 대하여 한번 짚어봅니다. MBC는 방문지에서 사장 등을 임명하기 때문에, 이사장 고영주의 임기가 아주 중요하죠.


(이전 글)  이진숙 기자 남편 신현규와 딸 가족 이야기


먼저, 고영주는 1949년 2월 21일 충청남도 보령에서 태어납니다. (고영주 고향 충남 보령).

올해 69살이죠. (고영주 이사장 나이).


(고영주 학력 학교) 경기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화학공학과 학사


(고영주 프로필 경력) 1976년 사법고시 합격

1978년 청주지방검찰청 검사

1981년 부림사건 참여

1995년 대검찰청 공안부 공안기획관

2003년 청주지방 검찰청 검사장

2004년 대검찰청 감찰부 부장

2005년 서울 남부지방검찰청 검사장

2006년 법무법인 케이씨엘 고문변호사

2010년 국가정상화 추진위원회 위원장

2012년 제 9대 방문진 감사

2015년 제 10대 방문진 이사장


먼저, 고영주의 집안 가족 사항입니다.

고영주 아버지는 회광산과 자동차정비공장을 운영하던 기업가 출신이었기에, 고영주는 어릴 때부터 유복하게 성장합니다.


그 다음에 고영주의 군대 병역 사항이 특이합니다.

고영주가 군대에서 사법시험을 쳐서 1차 시험을 합격했죠.



(스폰서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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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 유라준)

고영주: "군생활 중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을 접하고 법률가로 진로를 바꾸었다."


고영주: "군에 입대해 법 공부를 시작했다. 사법시험을 보면 휴가를 보내 준다고 하더라. 그래서 휴가를 가고 싶어서 사시 1차 시험을 장난스럽게 봤는데 합격했다."


고영주의 말에는 어느 정도 과장이 있는 것 같습니다.

1차 시험이 아무리 쉽다고 하더라도, 군 생활 도중에 시작해서 합격할 정도는 아니니까요.


아무튼 공대생이었던 고영주는 군 생활도중에 본인의 진로를 바꾸었고, 사법고시 1차 시험에 합격했고, 1976년에 최종 합격을 하게 됩니다.


이후 고영주는 검찰내에서도 엘리트 부서로 자부심이 강한 공안부에 배속이 됩니다.

그런데 공안부의 대부분의 검사들은 서울대 법대 출신인데, 그중 거의 유일한 공대 출신인 고영주로서는 자격지심도 어느 정도 느꼈을 것 같네요.



그리고 검사 생활 초반에 고영주는 부림사건 수사에 참여하게 됩니다. 바로 노무현이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된, 그 사건이었죠.


이 부림사건에 대하여 고영주는 아직도 이런 말을 합니다.

"부림사건은 민주화 운동이 아니라 공산주의 운동이었고, 그 사건에 문재인 후보도 변호사였다."


"나는 문재인 후보도 공산주의자이고 이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가 적화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과거 부림사건 당시의 변호사는 노무현이었고, 문재인은 훗날인 

2014년 재심 판결의 변호인으로 활동했음)


아무튼 이 부림사건은 대표적인 용공조작사건이었고, 우리나라의 사법부 역시 피해자 5명에게 무죄를 확정했죠.


하지만 고영주는 여전히 사법부의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고, 부림사건이 공공연히 '공산주의 운동'이라고 주장하고 있네요.


아무튼 고영주의 검사 생활 초임 시절의 실생활은 어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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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화 변호사: "(1985년 대학 4학년 때 시위를 주도하다가 구속되었을 때) 나를 담당한 검사가 바로 고영주 검사였다."


이재화 변호사: "그런데 평생 처음 본 그 공안검사 (고영주)는 너무도 신사적이었다. 손찌검도 없었고 말투도 정중했다. 하얀 얼굴에 검은 뿔테는 학구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이처럼 당시 사건을 처리할 때, 고영주는 고문과는 거리가 멀었던 젠틀한 이미지로 보여집니다.

그런데 동시에 또다른 증언도 있습니다.


김훤주 (1985년 당시 고영주로부터 심문을 받은 피의자): "1985년 7월 시골 고향집에서 경찰에 붙잡힌 후 서울의 모 경찰서에서 주먹과 구둣발로 좀 얻어맞았다. 그런 다음에 끌려간 곳이 바로 여관이었다."


김훤주: "잠을 잘 때 나는 옷을 팬티 한 조각도 남김없이 홀라당 벗어야 했고, 그렇게 벗겨진 옷가지는 경찰들이 자기네 깔고 자는 담요 밑에 집어 넣어졌다."


아마 피의자가 도망갈까봐 알몸으로 묶은 다음에 잠을 재운 것 같네요.

당시만해도 경찰들은 민주화 운동 피의자들을 경찰서로 직접 끌고 가기도 했지만, 이처럼 여관으로 끌고가서 고문을 하거나, 자백을 강요하기도 했죠.


그렇다면 과연 담당 검사인 고영주는 전혀 몰랐을까요?

아니면 알고도 모른 척을 했을까요?


실제로 김훤주가 이런 주장을 한 것도, 고영주가 '여관' 발언을 했기 때문입니다.


고영주: "부림사건 당시에는 임의동행제도가 있어서 유치장에 들어가지 않고 여관 같은 데에서 수사를 하고 그랬을 것이다."


고영주: "공안 사건 양이 많았기 때문에 조사하는데, 그런 편법들이 사용됐다. 당사자들의 동의하에 (여관에서 구금수사를 한 것)이다."


당사자의 동의라...

세상에 어느 누가 본인을 두들겨 패고, 여관으로 끌고 가서 알몸으로 잠을 재우는데, 동의를 할까요?


아마 고영주가 직접 고문을 하지는 않았지만, 당시 공공연했던 불법 탈범 고문이나 감금 조사 등을 고영주도 묵인을 했던 것 같네요.



(스폰서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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