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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수(50대 이상) 결혼 생활

김수희 전남편,김수희 이혼사유 조폭같은 남편에게

가수 김수희 전남편 이용호에 대한 고백이 무척 흥미롭네요.

김수희 이혼사유(이혼이유)와 더불어, 김수희의 어린 시절, 그리고 무명 가수 생활이 어땠는지 한번 짚어볼 필요가 있네요.


(김수희 주현미)

주현미에 대한 포스팅 (새창보기)

주현미 남편 임동신- 화교와 이혼 루머에 대한 생각


(스폰서 링크)


# 목차

* 김수희 어린 시절에

* 김수희 노래모음

* 김수희 무명 가수시절에

* 김수희 전남편 이용호와 결혼

* 김수희 스캔들 루머 사건이 터진 이유

* 김수희 대마초 사건의 진실(김수희 마약)

* 김수희 이혼이유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음반사대표 겸 가수 김수희(본명 김희수)는 1953년 부산에서 태어납니다(김수희 고향 부산). 올해 63살이죠(가수 김수희 나이).

(김수희 키 몸무게 혈액형) 162cm, 50kg, O형

(김수희 종교) 불교에서 천주교로 개종(김수희 세례명 마리아)

(김수희 학력 학벌) 서울 숙명여자고등학교 중퇴

(김수희 프로필 및 경력) 1976년 노래 '너무합니다'로 데뷔


이후 대표곡으로 정거장, 멍에, 못잊겠어요, 남행열차, 애모, 서울여자, 아모르, 정열의 꽃, 화등, 잘 있나요 모모씨, 뒷자락 등이 있습니다.




* 김수희 어린 시절에


김수희는 어릴 적에 아버지를 잃고 무척 가난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김수희: "당시는 한국전쟁의 후유증으로 모두가 힘든 시기였어어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에 어머니가 부산 초량시장에서 포목가게를 하셨죠. 여섯살의 쪼끄마한 나는 엄마 장사터에서 '무정천리'나 '굳세어라 금순아' 등을 부르며 사람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어요."


김수희: "당시에 용돈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부산 극장으로 달려가서 영화를 봤어요. 여섯살때부터 나는 내 손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키웠고, 또한 영화를 만들기 위한 글쓰기 작업도 항상 했고요."


실제로 김수희는 책도 여러권 쓰고, 또 영화 시나리오 작업도 합니다.

문학적인 감성을 어릴 때부터 키웠는데, 생활고때문에 작가보다는 가수가 먼저 됩니다.

(김수희가 18살의 어린 나이로 미8군 무대에서 가수로 활동함)



가수 김수희 사진


* 김수희 노래모음

김수희 너무합니다


[트로트] 김수희 멍에(1982)

 


김수희 애모 (Kim Suhui - Aemo)


김수희 한오백년  


김수희 노래모음 18곡[KiM Su-Hee] (김수희 남행열차외 17곡)



* 김수희 무명 가수시절에


김수희: "솔직히 노래를 부른 것은 스타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나에게는 단순히 '빵'이었을 뿐이었다."


김수희: "오빠 부부가 이혼을 해서 갈곳이 없어진 조카들을 내가 돌봐야했다. 그때 큰조카의 중학교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했을 때는, 내가 대학에 못갔을 때보다 더 서럽고 가슴이 미어졌다."


당시 김수희는 차비를 아끼기 위하여 무대의상을 입은채로 무교동 맥주홀에서 청계천 맥주홀까지 뛰어다닌 일화는 아주 유명합니다. 그때 김수희 어머니는 포목점을 그만둔 상태였고, 김수희 조카 3명은 아직 어렸기에, 김수희가 말 그대로 '소녀 가장'으로 일했던 것이죠.


김수희: "무명가수 시절이 나를 절제하고 인내할 줄 아는 여자로 만들어준 것 같다."





* 김수희 전남편 이용호와 결혼


그렇게 무명생활을 하던 김수희는 1976년 데뷔곡 너무합니다를 발표하면서 가수로 정식 데뷔하는데, 처음에는 그대로 묻히고 맙니다.


김수희: "결국 가수를 포기하고 시나리오작가가 되려고 했다."


이 시기 전후에 김수희는 첫번째 남편 이용호(이름)와 결혼하게 됩니다(김수희 첫남편 이용호).


김수희: "양가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결혼을 했다. 당시에 (가수를 그만두고) 하숙집 아줌마, 파출부, 빵배달 아줌마 등 안해본 일이 없었다. 배가 남산만한 젊은 임산부가 힘들게 빵을 배달하자, 동네 아줌마들이 많이 도와주었다."(김수희 남편 이용호)



이때 김수희가 딸 이선민(본명)을 낳게 됩니다.

(김수희 자녀(자식))(김수희 가족관계)

(김수희 딸 이름은 이선민이지만, 후에 써니라는 예명으로 가수로 데뷔함. 또한 김수희 딸은 이지후와 이순정 등의 예명도 가지고 있음. 밑에서 추가 설명)



김수희 젊은시절 사진(김수희 과거 사진)


* 김수희 스캔들 루머 사건이 터진 이유


원래 김수희의 노래 너무합니다는 처음에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모 방송국 PD가 우연히 이 노래를 듣고는 김수희를 찾게 되면서 뒤늦게 인기를 얻게 됩니다.

오늘날의 말로 치면서 음원차트에서 뒤늦게 역주행을 하게 된 것이죠.



이후 김수희의 가능성을 인정하게 된 음반제작자들은 김수희에게 다음 음반(멍에) 제작을 제안하게 됩니다.


김수희: "음반 제작가들에게 이미 결혼해서 아기도 있다고 말했어요. 그러자 제작자들은 "처녀라고 속이면 된다"고 했어요. 제 매니저 역시 그랬고요."


이 일은 후일 김수희 스캔들로 터지게 됩니다. 미혼인줄 알았던 인기 절정의 여가수에게 남편과 아이가 있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었기 때문이죠.


김수희: "지금이야 아이를 낳고 활동하는 여자 가수도 많지만, 그때만 해도 아기 엄마가, 그것도 신인급이 노래만으로 대중 앞에 나선다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시절이었어요."





* 김수희 대마초 사건의 진실(김수희 마약)


그러다가 김수희는 대마초 사건에 휘말리게 됩니다(1983년).

처음에 검찰은 가수와 탤런트, 개그맨 등이 포함된 17명의 규모의 대규모 마약 조직을 검거했다고 밝힙니다. 하지만 김수희를 비롯한 주병진 등은 본인의 범행을 적극 부인하였고, 나중에 이들은 검찰에 의하여 장시간 구금된 상태에서 자술서에 서명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주병진: "검찰 수사를 받을 때 누님이 곧 결혼식을 올리게 되어 있어서, 당황한 나머지 얼떨결에 자인서를 썼어요. 대마초는 만져본 적도 없기 때문에,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죠."


곧 검찰은 이들을 기소유예 혹은 불구속 기소로 풀어줍니다.




연예계 관계자: "검찰 마약반에 장시간 구금된 상태에서 받은 (연예인들의) 자술서만으로는 공소유지가 어렵기 때문에 검찰이 이들을 풀어준 것이 아니냐."


오늘날처럼 신체 검사를 통하여 대마초의 양성 반응을 살피는 과학적인 수사가 아니라, 혐의자를 구금한 뒤에서 장시간 폭언과 협박을 하면서 죄를 추궁하던 것이 당시 검찰의 수사 관행이었고, 이 때문에 수많은 죄없는 사람들이 반강제적으로 '자술서'에 서명을 하던 시절이었죠.


김수희: "그 사건(대마초 사건)은 이혼 전에 일어났다. 친정 어머니가 '세상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고 내게 말씀해 주셨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어머니가 날 믿어주니까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수희 딸 이선민: "당시 어머니(김수희)가 방에 쪼그려 앉아 울고 계셨다. 마스카라가 다 번져 있었고, 주변에는 신문과 잡지가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다. 숨 죽여 울기 위해서 베개를 끌어안고 계셨다."


이 대마초 사건 역시 김수희 이혼의 한 원인이 되지만, 사실 김수희의 결혼 생활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 김수희 이혼이유


김수희: "가정생활은 화목하지 못했다. 그 남자(김수희 전남편 이용호)는 바람같은 사람이었다. 1년에 한두번씩 집에 들어오는 정도였다. 또한 남편의 좋지 않은 주변환경 때문에 나까지 자주 구설수에 올라갔다."


김수희: "대마초 사건 당시에 나의 결백을 주장하고 싶었지만, 남편 주변의 조직폭력배와 같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내 상황에서, 나 스스로 몇마디 변명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김수희 전남편 조직폭력배(조폭))(김수희 남편 직업)

(김수희 이혼사유)(김수희 이혼이유)



어쨌든 김수희의 무죄가 밝혀지고, 각 방송사들의 방송정지 처분과 한국연예인협회의 제명 처분이 철회가 됩니다(1983년).

하지만 여러 언론들이 김수희를 가지고 '장난'치는 것은 그만두지 않았죠.


김수희에 대한 이야기가 2편으로 이어집니다. (2편 새창보기)

김수희 남편 김태식,김수희 유방암 사건의 진실


(스폰서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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