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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패티 김(Patti kim)은 우리나라 최고의 여가수중의 한명입니다.

패티김 전남편 길옥윤, 그리고 패티김 이혼사유 등이 흥미롭네요.


(패티김 이미자)

불륜으로 큰 질타를 받았던 이미자에 대한 포스팅 (새창보기)

이미자 남편 김창수와 딸 정재은- 전략적 행동


(스폰서 링크)


# 목차

* 패티김 어린 시절

* 패티김 가수 데뷔 계기

* 패티김 길옥윤 첫만남과 러브스토리

* 패티김 결혼 이유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가수 패티김(본명 김혜자)은 1938년 2월 28일 서울에서 태어납니다(패티김 고향 서울). 올해 78살이죠(패티김 나이).

(패티김 종교) 기독교(개신교)

(패티김 키) 168cm

(패티김 학력 학벌) 중앙여자고등학교 졸업

(패티김 프로필 및 경력) 1959년 미8군 무대 가수로 데뷔(패티김 데뷔 연도)


이후 대표곡 서울의 찬가, 이별, 초우,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람, 못잊어, 서울의 모정, 그대없이는 못살아, 살짜기 옵서예 등을 남깁니다.




* 패티김 어린 시절


패티김은 엘리트 집안에서 태어나서 좋은 교육을 받으며 성장합니다.


패티김: "어머니는 그 옛날 시절에 숙명여전을 3년 다니신 엘리트셨어요. 어머니를 떠올릴때면 아침마다 곱게 빗은 머리에 깨끗한 모시 저고리 입고 신문을 보시던 모습이 제일 먼저 떠올라요."


패티김: "아버지는 일본 유학을 하셨지만 제가 가수가 된다는 것을 심하게 반대하셨지요. 어머니가 주로 저를 감싸 주셨죠."


패티김 전남편 사진(패티김 가족사진)


패티김: "어렸을 때는 꿈이 자꾸 바뀌었어요. 열세 살 때는 선생님이 되고 싶고, 또 한때는 간호사가 되고 싶기도 했어요. 당시 조혼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고등학교 들어가서는 '결혼 얘기'가 나오면, "난 외교관과 결혼할 거야"라는 말도 했고요. 아무래도 외교관과 결혼하면 외국을 많이 다니게 되니까... 그게 제 꿈이었죠."


이후 패티김은 국악을 배우게 됩니다(중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패티김: "2년 동안 국악을 정식으로 배웠다. 그 당시 국악을 배우면서 내 음악 기초 지식을 단단히 쌓았다. 그때 목청이 트였다. 특히 고음처리하는 법을 그때 터득했다. 그러면서 전국 국악 콩쿨 대회에서 1등도 해봤다. "


패티김: "하지만 아버지께서 많이 반대하셨다. "거기에 빠지면 나중에 기생이 된다."라고 하셔서, 결국 고등학교 1학년때 국악을 포기하게 되었다."


결국 패티김은 국악과 (훗날 배우) 성악의 발성을 기초로 자신만의 창법을 만들어내게 이것이 훗날 그녀를 최고 가수로 만들게 됩니다.


패티김 사진


* 패티김 가수 데뷔 계기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한 패티김은 처음에는 가수가 될 생각이 없었습니다.


패티김: "고등학교 졸업 후에 스튜어디스나 아나운서가 되고 싶어서 명동에 취직 자리를 알아보러 다녔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음악을 좋아하던 오빠 친구를 만나게 되었죠. "저, 취직 자리 구하고 있어요."라고 했더니, "너 노래하지 않을래?"라고 묻더라고요. 그 순간 제 귀가 뭔가 뻥 뚫리는 것 같았어요."


패티김: "결국 오빠 친구 소개로 미8군 클럽에서 노래를 시작했어요. 처음 6개월간은 견습생활 기간을 거쳤고, 1959년 3월부터 정식 가수로 활동하게 되었죠. 그때는 상대가 모두 미국인이었는데, (본명인) '김혜자'로는 안 되겠더라구요."


패티김: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영화배우인 '리타 헤이워즈'를 따라서 '리타김'이라고도 만들어 봤고, '수잔 헤이워드'를 따라서 '수잔김'이라고도 해보고, '린다김'이라고도 해봤어요. 그러다가 마침내 패티 패이지의 이름을 따서 '패티 김'이라고 했더니, 어감이 참 좋더라구요."


패티김 과거사진(패티김 리즈시절 사진)



패티김: "1960년까지는 주로 주한미군 클럽을 다녔고, 그리고 61년부터 62년 중반까지는 동남아시아 해외 공연을 하고 다녔어요. 그러다가 한국 대중들에게 처음으로 '패티김 리사이틀'을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당시 저를 외국에서 살다 온 여자로 착각하셨어요."


패티김; "사실 제 키인 168cm가 지금은 아담한 사이즈인데, 당시에는 굉장히 큰 키였어요. 그런 큰 체격의 여자가 갑자기 나타나서는 리사이틀이라고 이름붙이고 굉장히 화려하고 대담한 무대의상을 입고 외국 노래(팝송)를 주로 하니까, 그런 착각을 했던 것 같아요. 어떤 사람들은 분장실로 찾아와서는 "한국말 하세요?"라고 묻기도 했어요."


패티김 젊은시절 사진(패티김 젊었을때 사진)



* 패티김 길옥윤 첫만남과 러브스토리


이 시기에 패티김은 주로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한국에서 가끔씩 리사이트 형식의 무대를 갖습니다.

그러다가 작곡가 길옥윤과 만나서 점점 가깝께 됩니다.


패티김: "원래 나는 국제결혼을 꿈꿨어요. 저는 더 넓은 세상으로 가보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당연히 외국남자와 결혼할 걸로 여겼어요. 또한 미국 영화에 나오는 가정 생활에 대한 환상도 있었고요."


패티김: "하지만 미국에서 직접 살아보니 언어나 습관, 사고방식 차이를 실감했고, 나중에는 된장과 김치찌개를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는 사람(한국인)과 결혼하고 싶다는 쪽으로 마음이 바뀌었어요."



패티김: "당시 모친이 위독해서 (미국에서) 일시 귀국했는데, 거의 비슷한 시기에 길옥윤씨도 (일본에서) 귀국한 거예요. 그 시절만 해도 국외에서 활동을 하는 가수나 작곡가가 무척 적어서 많이 화제가 되었죠."

(당시 길옥윤은 일본에서 재즈연주자 겸 작곡가로 이름이 높았음)



패티김: "당시 매스컴에서 인터뷰를 할 때면 늘 우리 둘을 같이 불렀어요. 또한 가요계에서는 우리를 질시하는 눈도 있어서, 둘이서 외톨이가 됐고, 또 공연도 같이하니 더 끌렸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패티김과 길옥윤은 연인 관계가 됩니다.


패티김 남편 길옥윤 사진


* 패티김 결혼 이유


패티김: "내성적인 길 선생(음악가 길옥윤)이 새로 쓴 노래라며 전화로 들려줬어요. 그 노래가 바로 '4월이 가면'이었다.  눈을 감으면 보이는 얼굴/ 잠이 들면은 꿈속의 사랑/ 날이 갈수록 깊이 정들고/ 헤어보면은 애절도 해라' 이건 100% 러브레터였어요."


패티김: "이 노랫말이 청혼처럼 들려 먼저 결혼 이야기를 꺼냈어요. (길옥윤이 내성적인 성격이어서) 내가 먼저 결혼얘기를 꺼냈죠."


패티김 길옥윤은 1966년 결혼식을 올리게 되죠.

(패키김 전 배우자 신랑 길옥윤)(패티김 남편 길옥윤 직업 작곡가 겸 연주자)

(나이는 패티김보다 11살 연상)

(패티김 이혼사유)(패티김 이혼이유)


패티김에 대한 이야기가 2편으로 이어집니다. (2편 새창보기, 2/3)

길옥윤 재혼 부인,길옥윤 혜은이 패티김 과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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