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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교 이소영 러브스토리 및 인생 이야기

탤런트 김민교는 어릴 적부터 굉장히 다양한 경험을 합니다.

이런 경험들이 현재 배우 생활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는 않았네요.


김민교 어릴 적 모습과, 아버지의 과거, 아내에 대한 이야기 등이 흥미롭습니다.


김민교 사진


영화배우 김민교는 1974년 4월 15일 태어납니다. 올해 41살이죠(배우 김민교 나이).

(김민교 학력 학벌) 서울 현대고등학교 졸업, 서우례술대학교 연극과 졸업(

(93학번, 동기동창으로 김수로, 이종혁, 임형준 등)


(김민교 프로필 및 경력) 1998년 영화 성철로 데뷔, 하지만 개봉은 되지 못함(그 이유는 밑에서 설명)


이후 2001년 킬러들의 수다에 단역으로, 2002년 동승에서 주연을 맡습니다.


주로 영화 라이터를 켤라, 대한이 민국씨, 시크릿 등에서 단역으로 출연했고, 영화 방자전, 점쟁이들, 우리는 형제입니다 등과 드라마 싸인, 연애조작단 ㅣ라노, 제왕의 딸 수백향, 끝없는 사랑, 잉여공주 등에서 차츰 큰 배역을 맡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영화보다 광수생각, 발칙한 로맨스, 서툰 사람들 등의 연극 작품에 주로 출연을 많이했는데, 여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밑에서 설명).


그외 광수생각, 달콤한 원나잇, 발칙한 로맨스 등에서 작가 및 연출가의 역량을 보이기도 합니다.


사실 김민교의 이름을 가장 크게 알릴 수 있었던 것은 뭐니뭐니해도 SNL코리아였죠(김민교 동공연기의 대가).


# 목차

* 김민교 어린 시절 수영장 딸린 집

* 김민교 아버지의 과거

* 김민교 아버지의 국회의원 출마

* 병원장에서 스님으로

* 김민교 친구들의 도움

* 김민교- 오디션 볼 때의 충격적인 말

* 김민교 고등학교 동창들의 유혹

* 김민교를 알아보지 못한 장진 감독

* 김민교 아내 이소영 러브스토리

* 김민교 처가의 결혼 반대

* 김민교의 깨달음



* 김민교 어린 시절 수영장 딸린 집


잘 알려진 것처럼 김민교 아버지는 이비인후과 전문의 출신의 종합 병원 원장이었고, 후에 출가하여 스님(법명 청봉)이 됩니다.

그런데 김민교 아버지에 대해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도 많네요.



김민교: "아버지가 이비인후과로 시작하셔서 종합병원을 운영하셨다. MBC 방송국의 지정병원이어서 드라마 촬영도 거기서 다 하고 그랬다."


김민교: "경기도 광주에 살았다. 집에 수영장이 있었고, 개 키우는 걸 좋아해서 30마리를 길렀다. 개 키우는 분이 따로 있었고, 정원사, 집사가 있었다. 짜장면이 500원이었던 시절에 하루 용돈이 1만 원이었다."


그런데 김민교 아버지 김용원(이름)은 선행으로 유명하면서, 동시에 무술인으로 자기 몸을 철저하게 관리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김민교: "제 어릴 적 꿈은 손오공이 되는 거였어요. 아니면 홍길동이나. 어렸을 때 운동을 굉장히 열심히 했었거든요. 단이 합쳐서 10단이었죠. 초인이 되고 싶었어요. 휙휙 이리저리 날아다니면서."


김민교: "젊을 때 합기도 사범, 군대에서도 태권도 선수 등을 해서 체력적으로는 자신이 있었어요."



김민교: "원래 내가 처음에 예대로 진학하려고 하자 처음에는 아버지가 반대를 심하게 하셨어요. 그래서 체대를 갈까 생각을 했어요. 제가 운동하는 모습에 아버지께서도 적극 지지해주시고 호의적이셨거든요."


김민교: "그런데 막상 제가 체대를 간다고 하니 화를 내시더라고요. 아버지께서는 합쳐서 단이 15단이셨거든요.때 계단 내려오는 손잡이에 봉이 달려 있었는데, 체대를 간다고 하니 그 봉을 바로 부서뜨리셨죠. (웃음) 그리고 며칠 뒤 연극영화과로 갈래? 라고 물어보셨어요. 사실 제 끼를 알고 계셨거든요. 



* 김민교 아버지의 과거


김민교 아버지 역시 완력이 대단했던 것 같네요.

그런데 단이 15단인 것보다 불교계에서는 오히려 선행으로 더 유명합니다.


사실 김민교 아버지는 종합병원이었던 동아병원장 시절부터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많이 무상치료를 해줍니다(김민교 동아병원).


유성철(김용원으로부터 도움받은 사람):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뺑소니 사고를 당했는데, 가정형편이 어려워 병원비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어렵게 찾아낸 뺑소니범은 전과범으로 우리 가족에게 어떠한 보상도 해주지 않았다."


유성철: "이런 사정을 알게 된 병원 원장 김용원 선생님이 그 당시(대략 1970년대, 80년대) 300만원이라는 치료비를 받지 않고 아무 조건 없이 퇴원을 시켜주셨다."


서수남(예전에 유명 가수로, 김용원과 함께 봉사활동을 했던 연예인)

"예전에 김용원 선생님과 전국으로 의료봉사를 다니며, 특별한 친분을 쌓았다. 내 기억 속의 김용원 원장 선생님은 병원 원장님이시자, 많은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푸는 의인이셨다."


사실 김민교 아버지 김용원은 수많은 불자 연예인들과 함께 전국각지로 의료봉사, 재소자를 위한 강연회, 무의촌 진료 등을 많이 다녔고, 김민교 역시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도왔기에 자연스럽게 연예인들을 접하게 됩니다.


김민교 아버지 사진


* 김민교 아버지의 국회의원 출마


김민교: "어린 시절 아버님이 무료진료 봉사활동 하는 곳에 저를 자주 데리고 다니셨죠. 특히 연예인들과 함께 하는 봉사활동이 많다 보니, 그분들을 뵐 기회가 많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배우라는 직업을 동경하게 되고 연기가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어요."


김민교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좋은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네요.

그런데 김용원은 1988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하게 됩니다.

이후 세속에 뜻을 잃고 출가하게 되죠.

(법명 청봉스님- 덕숭총림 수덕사 초대 방장 혜암스님으로부터 전법계를 받고 후에 삼보선원 선원장을 역임함)

(참고로 김용원이 출가한 후 동아병원은 3년뒤에 문을 닫게 됨)


김민교: "고3에 올라가면서 아버지가 사기를 당해 쫓기는 신세가 되면서 가세가 기울었고, 대학 1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갔다. 첫 휴가를  나와 어머니와 절에 아버지를 만나러 갔는데, 아버지는 이미 머리를 깎은 상태였다. 스님이 되겠다고 하시더라."


김민교: "그리고 아버지가 '이제 더 이상 나를 아버지라 부르지 말고 스님이라 불러라'고 하셨는데,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 병원장에서 스님으로


청봉 스님: "의사로 시비 없이 살았으나 정치는 다르더군요. 거짓말하는 게 당연한 분위기였죠. 선거 직후 측근들이 등 돌리는 모습을 보면서 여긴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청봉 스님: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지만, 많은 사람의 죽음을 지켜보며 인생의 덧없음을 느끼고 89년 속세를 떠나게 되었어요."


청봉 스님: "속세에서는 가진 것을 지키고 늘리려는 욕심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채울 게 없으니 불만도 사라졌습니다. 속세에선 육신의 병을, 탈속해서는 마음의 병을 치유하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이후 청봉은 충북 단양 인근 한 야산의 바위굴에서 5년간 수행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삼보선원 선원장을 역임하고, 여생동안 팔만대장경에서 부처의 어록을 추려 기독교의 성경처럼 알기 쉽게 정리하는 작업에 매달리다가, 2011년 5월 21일 법랍 21년 세수 71세를 일기로 입적하게 됩니다.


김민교: "고등학교 때, 아버지께서 사기를 당해 빚쟁이에 쫓기다 스님이 되셨다. 아버지는 도망다니셨고, 어머니와 나는 판자촌 단칸방에서 생활했다. 아버지는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셨고, 췌장암으로 2년 전(2011년)에 돌아가셨다. 최근에 내가 잘되는 것을 못보고 가셔서 안타깝다."

(당시 김민교 형은 미국에서 유학 생활중이었음)


다만 김민교는 아들된 도리로 안타까웠겠지만, 이미 스님이 된 청봉은 세속의 덧없음을 이미 깨달았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고등학교때부터 김민교 집안의 가세가 급격하게 기울었지만, 대학 신입생때는 어느 정도 그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 김민교 친구들의 도움


임형준(영화배우, 김민교 동기): "김민교는 우리랑 급이 달랐다. 정말 부자였다. 김민교 집에 가면 유명한 사람이 많았다. 중견 탤런트 선배들이 많이 왔다 갔다 했다. 김민교 덕분에 강남과 패스트푸드점에 처음 가봤다."


김수로(영화배우, 김민교 동기): "김민교 아버님 병원이 워낙 유명했다. 교통사고 당하신 분들은 아마 김민교 아버지 병원에 한 번쯤은 다 가보셨을 거다."


다만 아버지가 불교의 스님이지만, 김민교 종교는 무교입니다.

김민교: "(종교는) 무교예요. 저는 민교입니다."



하지만 결국 아버지의 출가로 김민교는 극심한 생활고를 겪게 됩니다.


김수로: "민교가 몇 백 만원만 꿔달라고 했을 때 꿔 준 사람은 나였다."


김민교: "내가 유시어터라는 극단에 들어갔을 때다. 성진이 형(강성진)은 영화를 많이 하던 시절이었다. 내가 너무 어려웠다. 훈련 기간 몇 개월 동안 돈을 내야했다. 연극해서 겨우 먹고 사는데 몇 십 만원을 내야했다. 너무 부담스러운 순간이 있었는데 성진 형이 나 몰래 몇 달 치를 넣어놨더라."


김민교: "나중에 너무 놀라서 물으니 '내가 돈이 많아 남아돌아서 넣어준 게 아니다. 김민교라는 배우의 가능성을 봤으니 투자한 거다. 나중에 갚아라'고 말하더라."



김민교: "내 생일날 돈이 없는데 동료들이 파티하자며 선물을 들고 찾아왔다. 선물을 들고와서 더 부담이 되었다. 성진이 형도 와서 선물로 상자를 하나 줬는데 케이스를 열어보니 또 케이스가 있었다. 마지막 케이스를 보니 돈 10만원을 꼬깃꼬깃 계산하라고 넣어놨다. 진짜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정말 만원, 십만원이 절실할 때 준 도움은 평생 잊지 못하죠.

아마 김민교는 고달픈 배우 생활을 이런 주위의 좋은 사람들 덕분에 견딜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 김민교- 오디션 볼 때의 충격적인 말


사실 김민교는 배우 생활 초반에 영화 '성철'과 '동승'에서 중요한 배역을 맡습니다. 하지만 성철은 끝내 개봉되지 못했죠.


김민교: "성철 스님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였어요. 원래 여덟 명으로 역할이 분배되어있었는데, 그 역을 제가 맡은 배역으로 압축하게 되었죠. 하지만 성철 스님 가족분들이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하셔서, 영화는 개봉하지 못했어요."


그리고 동승에 출연한 김민교는 자만에 빠지게 됩니다.


김민교: "동승이란 영화를 찍고 주변에서 저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졌었어요. 이후에 꾸준히 활동했지만, 제가 머리를 기르니 다들 못 알아보시더군요. 물론 배우니까 역할과 비중에 대한 아쉬움이 어쩔 수 없이 있지만, 그냥 부딪혀서 치고 올라갈 수 있다고 자신했어요. 열심히 기회 되는대로 했죠."



이후 김민교는 한동안 오디션을 기웃거리기도 하지만, 주로 연극무대에서 자신의 역량을 발전시켜 나갑니다.


김민교: "제가 충격을 받았던 때가 있었어요. 영화 ‘바람난 가족’ 오디션을 보러 갔을 때, 임상수 감독님께서 “자신이 어느 순간에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느냐?” 라는 질문을 하셨어요."


김민교: "그때 저는 연극무대를 베이스로 둔 사람이라 “무대에 섰을 때요.”라고 대답을 했죠. 그 대답에 감독님께서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당신 같은 사람이 왜 이렇게 오디션을 찾아다니느냐, 연극무대에서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면, 당신의 진가를 알아보고 먼저 찾아 줄 텐데,”라고요."


김민교: "그 말씀이 제게 적지 않은 충격을 줬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다시 무대로 돌아가 연극 활동에 집중하게 되었죠."



* 김민교 고등학교 동창들의 유혹


김민교는 삼중고를 겪게 됩니다.

생활고가 가장 큰 문제였고, 서울예대 동기들 김수로, 이종혁 등이 잘 나가자 자신을 비교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등학교 동창들의 유혹이었습니다.


김민교: "제가 일찍이 데뷔했었고, 주변의 기대치도 높았었죠. 그리고 제 동기들이 지금은 대부분 잘 됐어요. 김수로씨, 이필모씨, 이종혁씨, 임형준씨. 지금은 스타잖아요. 여러 가지 생각들이 교차하면서 많은 슬럼프를 겪어왔던 것 같아요."


김민교: "하지만 어느 순간이 되면서 마음을 돌이킬 수 없다는 걸 깨달았죠. 스스로 질문했어요. ‘연기 외에 다른 일을 했을 때, 이보다 더 잘할 수 있을까?’ 없을 것 같더라고요. 그럼 해야 하는 수밖에 없잖아요. 언젠가는 그 기회가 제게도 찾아오고 그때는 절대 놓치지 않겠다고 생각하니 슬럼프가 자연스럽게 극복된 것 같아요."


확실히 자신을 주위와 비교를 하게 되면 더 괴로워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느 누구도 세상에서 일인자는 없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어떤 면에서건 항상 부족함이 느껴지기 때문이죠.

김민교의 깨달음이 특별한 것 같네요.



게다가 김민교는 좋은 학군의 고등학교를 다녔기에, 고등학교 동창들의 유혹까지 있었습니다.


김민교: "경제적으로 어렵다 보니 연기를 포기해야 하나 고민도 많이 했죠. 30대 초반까지 연봉 300정도의 생활이었으니까요. 가세가 기울기 전, 중·고등학교를 8학군에 다녔기 때문에 그 시절 친구들은 지금 다 잘나가고 있어요."


김민교: "그래서 우리 회사로 와서 일하라고 도움의 손길을 내민 친구들도 많았어요. 친구들의 마음은 고맙지만 그렇게 되면 연기를 중단하고 포기해야 하는 유혹의 순간들이었죠."


아마 김민교가 이때 평탄한 삶을 선택했다면, 지금의 배우 김민교는 없을 것 같네요.


김민교: "그런 힘든 순간들마다 소중한 부모님의 가르침이 힘을 발휘하더군요. '민교야, 난 너를 믿어, 넌 잘 될 거야'라고 자기 암시, 최면을 계속 걸었죠. '기회가 올 거고 넌 기회를 잡을 수 있는 능력을 만들어가고 있잖아'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빨리 잘되고, 안되고에 연연하지 않고 제 능력을 키워나가는 데에 집중했습니다."


김민교: "솔직히 어린 20대 시절에는 대학 동기들이 잘되는 모습에 부럽기도 했어요. '나는 왜 안될까?'라며 자책하기도 했죠. 그러다 30대에 접어들면서부터 '나에게 기회는 반드시 온다'는 생각이 점점 더 커져 나갔습니다."(김민교 대학 동기들)


김민교: "천천히 인생과 연기를 즐기면서 길게 보고 싶더군요. 서두를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자 주변의 여러 가지 말들에도 흔들리지 않는 여유가 생기더라구요. 어릴 때 겪었던 삶의 현저한 변화에서 비롯된 다양한 경험들이 오히려 저를 버티게 해준 원동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 김민교를 알아보지 못한 장진 감독


그러다가 김민교는 학교 선배 장진 감독을 만나서 SNL코리아에 출연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묘한 사정이 숨어 있습니다.


김민교: "장진 감독님의 추천으로 SNL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저의 진가를 알아보시고 캐스팅하셨다고 생각했었죠. 알고 보니 감독님께서는 제 연기에 대해 전혀 모르셨더라고요."


김민교: "감독님과는 대학교 선후배이기도 하고 같은 야구단이었는데, 우연히 마주치게 된 계기가 있었어요. 그때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저를 보시곤 안타까워하셨고, 기회를 주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그 상태로 처음에는 한 두 편의 콩트에 단역으로 출연하게 되었는데, 스태프분들이 먼저 알아봐 주신 것 같아요."



그런데 SNL코리아는 다른 프로그램과 달리 연극적인 요소가 많습니다. 포맷 역시 연극 공연과 비슷하죠.


김민교: "SNL코리아에 캐스팅된 후, SNL이 가지고 있는 성격과 특징들을 살펴보고 공부하게 되면서 SNL이 저를 위해 존재하거나 제가 SNL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했어요."


김민교: "우선 연극무대를 기반으로 두면서 방송매체를 알고 있는 배우가 그렇게 많지도 않을뿐더러 브라운관에서 생소한 얼굴과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는 희극배우를 원하셨기 때문에, 딱 제게 맞는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


김민교가 그동안 연극무대에 주력했던 것이 snl에서 빛을 발하게 되었네요.


김민교: "게이라는 오해도 정말 많이 받아요. 인터뷰하면 꼭 들어가는 질문이기도 하고요. 정말 진지하게 ‘정말 게이이신가요?’라고 물어보시는 기자님들도 계시죠."(김민교 청순게이)


김민교: "청순게이’의 여파가 워낙 커서인지 결혼 4년차인 유부남인데도 매 인터뷰 때마다 결혼 여부를 묻는 질문이 없어요."



확실히 김민교의 청순게이 캐릭터 소화력은 대단했습니다.

이십여년동안 갈고닦은 내공이 발휘되는 것 같네요.


* 김민교 아내 이소영 러브스토리


김민교: "아내는 한국 음악을 공부한 사람인데 공연할 때 스태프로 만났다. 라이터를 켜면서 시작하는 연극공연을 할 때였다. 처음 보는 친구가 갑자기 걸어와서 라이터 좀 빌려달라고 하더라. 선하게 생겨서 나도 모르게 빌려줬다. 공연 시작하기 5분 전이었다."


이것이 바로 2005년 뮤지컬 '밑바닥에서'였습니다.


김민교: "(아내가) 처음에는 담배를 피우나 싶었다. 겨울이었는데 아내가 라이터로 포스터를 녹이고 있더라. 그 모습이 예뻤다. 아내는 매표소에 아르바이트하러 나온 학생이었다."


김민교: "사실은 아내가 겨울 방학 동안 우리 공연이 너무 좋아서 아르바이트를 한 거였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서로 끌렸던 거 같다."


(김민교 아내 사진은 공개하지 않음)


이소영은 김민교보다 10살 연하입니다(김민교 부인 나이차이).

원래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고전음악과 거문고를 전공했던 재원으로, 후에 한국 고전 음악 작곡가가 됩니다.

(김민교 아내 직업)


김민교: "(나이 차이가 10살이지만) 사귀고 몇 달 안돼서 정신 연령이 맞춰진다. 큰 문제는 없다."


김민교: "아내와 함께 산에 올라갔다가 막걸리를 마셨다. 그런데 현금이 없어 외상을 달아뒀다."


사실 2005년 이후에도 김민교는 계속 생활고를 겪었습니다.

때문에 이런 '가난한 데이트'를 했던 거죠.

보통 젊은 남녀들은 잘 하지 않는 등산이라는 방식의 데이트, 그리고 그때도 현금이 없어서 외상을 달았다라...


그런데도 가난한 연극배우를 사랑했던 이소영이 대단한 것 같네요.



* 김민교 처가의 결혼 반대


그리고 김민교는 이소영에게 연극 무대에서 프러포즈를 하게 됩니다.

김민교: "'광수생각'이라는 작품에서 제가 광수 역할을 할 때였어요. 광수는 10년 동안 계속 한 여자를 사랑하는데 자기 마음을 고백 못하는 청년이죠."


김민교: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을 할 때 관객들 앞에서 말했어요. '제가 진짜 고백하고 싶은 여자는 여기 따로 있다'고. 의도한 건 아닌데 무대와 객석 모두 울음바다가 됐죠."



이후 2010년 1월 김민교는 아내와 결혼하게 됩니다.

(김민교 배우자 이소영)(김민교 와이프).

두 사람 사이에 아직 자녀는 없네요.

(김민교 가족관계)(김민교 자녀 자식)


그런데 이 결혼에 대하여 이소영 집안에서 반대합니다.


김민교: "연극 쪽에선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있지만, 방송이나 영화에 많이 나온 게 아니거든요. 상대방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어요. 다행히 이번 영화 '헬로우 마이 러브'가 개봉하면서 '아 저 친구가 잘 하고 있구나, 앞으로 뭐라도 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한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사실 헬로우 마이러브에서도 김민교의 역할은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면목을 세우고 결혼 승낙을 받을 수는 있었던 것 같네요.



* 김민교의 깨달음


김민교의 인생은 한마디로 롤러코스터같습니다.

종합병원 병원장의 아들에서 판자촌 생활로, 처음 두 작품에서 주연급 연기자였다가 거의 이십년 가까운 무명 생활 후에 다시 대중의 주목을 받고 있네요.


이런 롤러코스터 같은 역경을 뚫고 나온 김민교의 정신력과 깨달음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

특히 스스로 다른 사람과 비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음으로써, 그는 슬럼프에서 빠져 나왔고 행복하게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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