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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상의 인생이야기가 흥미롭네요. 그가 어떻게 작곡가가 되었는지와 음악에 대한 태도는 일반인들도 한번쯤은 눈여겨 볼 만합니다.

그리고 윤일상 아내 박지현과의 러브스토리는 굉장히 특이하네요. 과연 아내가 단지 예뻐서 윤일상이 결혼을 결심했을까요?


윤일상 박지현 웨딩 사진


가수 겸 작곡가 윤일상은 1974년 2월 21일 서울에서 태어납니다(윤일상 고향). 올해 41살이죠(윤일상 나이).

(윤일상 학력 학벌) 경희대학교 포스트 모던 음악학과

(05학번으로 입학해서 2013년도에 졸업함) 이후 경희대학교 대학원 포스트모던음악회 석사


(윤일상 프로필 및 경력) 1993년 노래 '박준희 - Oh Boy' 작곡하면서 데뷔


1990년대 한국의 대표적인 히트 작곡가로 활동했으며, 2000년 ‘10년간 넘버원 최다 히트 작곡가’로 선정됩니다. 그의 대표곡으로는 김범수의 ‘보고 싶다’, 이승철의 ‘인연’, 이은미의 ‘애인 있어요’ 등을 비롯해 쿨, DJ DOC, 젝스키스, 이정현, 브라운 아이드 걸즈 등 수많은 인기 가수와 그룹들의 노래를 만들거나 프로듀싱했습니다.



윤일상의 외가가 클래식을 하는 집안이었기에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음악을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그런데 음악적인 재능 어릴 적부터 반짝거렸네요.


윤일상 어머니: "어릴 적부터 피아노에 앉아 편곡을 하던 아이였어요."


그리고 초등학교 3학년때는 동생이 태어난 기쁨을 곡으로 만들 정도였죠.


윤일상: "처음 (작곡을)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3학년때에요. 그때 동생 탄생의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작곡했죠. 그 전에도 곡을 쓰긴 했었는데 가사까지 쓴 곡은 그때가 처음이었죠. 제목은 ‘귀여운 꼬마 동생’인데, 내 마음속에 계속 간직하고 있어요."


이렇게 어릴 적부터 음악적인 재능이 있었지만, 윤일상의 어머니는 아들이 음악을 하는 것을 반대합니다.


윤일상: "어머니가 외출하면 몰래 피아노를 쳤어요. 피아노에 대한 사랑, 집착, 음악에 대한 갈증이 심했죠."



그러다가 윤일상이 23살 되던 1996년 '정'이라는 노래를 만듭니다. 트로트와 댄스 음악을 접목한 노래인데, 당시 너무나 생소해서 수많은 가수와 연예매니지먼트사들은 이 노래를 거절합니다.

결국 당시 데뷔를 준비하던 영턱스클럽에게 이 노래가 갔고, 그들은 데뷔하자마자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됩니다.


이후 수많은 작곡가들이 윤일상 스타일을 따라하기 시작했는데, 겨우 20대 초반의 신인이 한국 가요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것이죠.


사실 윤일상은 표절에 대한 비난에서 좀 자유로운 편입니다. 자기 곡에 대한 표절이 있기는 하지만, 90년대 한국가요계의 어두운 그늘에 비하면 깨끗하다고 할 수 있죠.


이를 위해서 윤일상은 다른 사람들의 노래는 거의 듣지 않습니다.

윤일상: "표절 방지를 위해서도 그렇지만, 음악인으로서 영향을 너무 많이 받고 싶지 않아서 그랬어요. 가요나 팝을 집중해서 듣지는 않죠. 예전에는 의도적으로 안 들었고, 친구가 음악을 듣고 있으면 다 들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만나러 가기도 했어요."


윤일상: "사실 직업적으로 완전한 감상이 잘 안 돼요. 음악을 들으면 베이스라인, 코드, 일반인이 못 듣는 여러 소리가 들리고 듣는 순간 분석하게 되거든요. 특히 제가 좋아하는 앙드레 가뇽의 편안한 음악을 듣고도 저는 잘 수가 없어요. 계속 코드를 분석하고 악기에 대해 생각하고, 저 톤을 어떻게 내지 생각하니까 잠을 이룰 수가 없죠."



이건 좀 불행한 것 같네요. 일반인들은 좋은 노래가 있으면 그냥 즐기면 되지만, 윤일상 같은 사람은 좋은 노래가 나와도 스스로 듣지 않거나, 분석을 하기 때문에 음악의 참된 즐거움은 누릴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윤일상은 음악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욕도 먹습니다.

윤일상: "일단 음악에 집중하면 잠자는 것도 잊어요. 52시간 동안 자지 않고 음악 작업에만 몰두한 적도 있죠. 잠깐 앉았다 일어섰다고 생각했는데 새벽 6~7시인 적이 많아요. 약속 장소로 가다가 곡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다시 작업실로 향하기도 했죠. 딱 10분만 하고 가자 마음먹었는데 일어나 보면 3시간이 지난 거예요. 본의 아니게 인간 이하의 대접도 받고 ‘약속도 안 지키는 놈이야’라고 욕도 많이 먹었어요."


윤일상: "음악 외적인 부분은 전혀 몰라요. ATM으로 입금도 할 수 있다는 것을 결혼하고 처음 알았어요. 아내에게 ‘자기도 알았어?’ 하니까 15년쯤 됐다고 하더라고요."


윤일상 박지현 결혼 사진



윤일상은 2010년 5월 7살 연하의 박지현과 결혼식을 올립니다(윤일상 부인 박지현 나이, 윤일상 아내 나이, 윤일상 배우자).

당시 박지현의 직업은 회계 연구원이었죠(윤일상 아내 직업 뜻).


(회계 연구원 뜻- 많이 생소한 직업입니다. 외환위기때 기업의 투명한 회계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높아지면서 1999년 한국회계기준원(KAI)이 처음 만들어 집니다. 주로 하는 일이 회계 기준을 만들고, 이에 대한 연구를 진행합니다. 회계 연구 기관은 굉장히 소수이고, 대부분이 정부 산하단체로 있습니다.)


원래 윤일상은 독신주의자였습니다.

김연우: "내가 결혼할 때 윤일상 씨가 결혼을 왜 하냐고 했었다. 그랬던 사람이 금세 결혼하더라."


윤일상: "원래 독신주의자였는데 아내의 사진 한 장에 결혼을 결심했다. 네 번째 만남에 청혼을 하고 다섯 번째에 상견례를 했다."


이래서 많은 사람들이 윤일상이 아내의 미모에 반해서 결혼을 결심했다고 알게 되는데, 실상은 좀 다릅니다.



윤일상: "실제로 부모님께도 결혼하지 않겠다고, 더는 결혼 이야기를 꺼내지 말라고 말씀드렸어요. 음악 분야에만 오래 있다 보니까 평범한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을 만날 기회가 없었죠."


윤일상: "그런데 어느 날 친지가 여자 친구를 소개하겠다고 해서 사진을 보여달라고 했어요. 저는 이름이 알려진 터라 상대는 제 얼굴을 인터넷에서 검색해볼 수 있으니 저도 먼저 사진을 봐야겠다고 고집을 부렸죠. 2장을 보내왔는데, 보는 순간 ‘예쁘다, 안 예쁘다’가 아니라 ‘와, 결혼해야겠네’라고 생각했어요."


윤일상: "원래 이벤트를 잘 못하는 성격인데, 첫만남에 와인도 미리 골라놓고 셰프에게 맛있는 메뉴도 물어보고 준비했어요. 와이프가 지금은 저를 잘 아니까 그때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겠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윤일상 아내 박지현의 미모가 대단하긴 하지만, 연예계에서 활동했던 윤일상은 그보다 더한 미인을 만날 기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윤일상이 반한 여자는 그들이 아니라 일반인이었던 박지현이었죠.

아마 박지현의 얼굴과 분위기가 음악으로 다져진 윤일상의 감수성을 자극했던 것 같습니다.




윤일상: "아내와 처음 만난 날 결혼하자고 말했어요. 미친 놈인 줄 알았겠죠. 아내가 너무 당황해서 ‘더는 만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대요. 그런데 사람 인연이 묘하죠. 연결 고리가 계속 생겼어요. 김건모 공연장에서 다시 만났는데 아내의 친구가 저를 좋게 봤어요. 착하고 진지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장난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아내에게 말해주었죠."


윤일상: "네 번째 만남에서 정식으로 청혼했어요. 결혼해달라고, 전화로. 아내가 ‘저도 좋아요’ 라고 하더라고요. 한 달 안에 상견례를 끝내고 6개월 뒤에 결혼했죠. 2세 소식은 아직 안 주시네요. 아이가 생기면 낳아야죠. 몇 명이든."(윤일상 아내 박지현)

(후에 두 사람은 이란성 쌍둥이를 낳게 됩니다. 아들 딸이 한명씩이죠. 아이들 이름은 윤시율, 윤선율)(윤일상 자녀 자식)


윤일상의 일방적인 환상에 의한 결혼이라면, 이 결혼은 불행하게 될 것입니다. 불과 1~2년만에 환상은 깨지고 이혼이라는 불행과 맞닦드리는 것이죠. 그런데 윤일상은 환상과 결혼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윤일상: "예전에는 독신주의여서 ‘음악과 결혼했다’라고 했었는데 요즘엔 가정이 더 소중한 것 같아요."


윤일상: "주부들이 잘 가는 사이트에 저에 관한 글이 올라오면 무슨 댓글이 달렸다고 말하면서 웃어요. 우선 바쁜 일 끝낸 다음에 여행이라도 가야죠. 그럴 땐 저작권료 수입이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요. 아내는 ‘오빠가 죽으면 돈이 다 무슨 소용이냐? 따라 죽는다’라고 하던데 만약에 그렇게 되면 사회에 환원해야지요."


음악은 인간의 감정을 다루는 것입니다. 사랑과 이별, 즐거움과 슬픔, 분노와 조화 등.

아마 음악가 윤일상에게는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어떤 '눈'이 있는 것 같네요. 그런 눈으로 아내의 모습을 봤고, 또 그것이 행복으로 이어지는 것이죠.



어쨌든 윤일상은 우리 사회의 한 분야에서 성공했습니다.

그런 그가 충고를 하네요.


윤일상: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는 게 쉽지 않죠. 그 목적을 위해서 수많은 사람이 지금도 노력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런 사람들이 나올 것이고. 나만의 재능이 무언가, 제 자신이나 멘티에게도 물어보는데 확신과 믿음을 놓지 않고 미친 듯이 노력하면 음악으로 먹고살 수 있습니다."


윤일상: "스스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면 포기하지 마세요. 포기하면 제로가 되죠. 언제나 우리는 마이너스와 플러스를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로가 가장 안 좋아요. 어떤 숫자를 곱해도 제로잖아요.


음악이든 아니든, 무슨 분야에서건 노력이란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게다가 윤일상은 '플러스'는 물론이고, '마이너스' 역시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가장 좋지 않은 것은 제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죠.


가령 음악과는 전혀 무관한 사업을 예로 들었을 때, 사업 실패는 장래에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제로는 영원히 제로일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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