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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 박미리 러브스토리 및 인생 이야기

가수 이주노와 아내 박미리 사연이 재미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23살이라는 두띠동갑이 넘는데, 굉장히 보기 드문 경우입니다.


그런데 이주노의 육체적인 면, 그리고 정신적인 면을 살펴보면, 당시 스무살 갓 넘은 아가씨였던 박미리가 이주노에게 반한 것도 무리가 아닌 것 같네요.


그외에 이주노는 서태지와 아이들 출신인데 해체 당시의 상황과, 서태지, 양현석, 이주노의 서로 엇갈린 행보가 흥미롭습니다.


이주노 아내 사진


가수 겸 연예기획자 이주노(본명 이상우)는 1967년 2월 10일 태어납니다. 올해 48살이죠(이주노 나이).

(이주노 학력 학벌) 관양중학교, 소래종합고등학교

(이주노 프로필 및 경력)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 1집 앨범 [난 알아요]로 데뷔


사실 그 이전인 1983년 '인순이와 리듬터치', 1984년 댄스팀 스파크, 1985년 비보이 그룹 '노피플', 1987년 '이재민과 피노키오', 1990년 '박남정과 프렌즈' 등의 다양한 활동을 하던 춤꾼이었습니다.


서태지와 만나 1992년부터 1996년까지 '서태지와 아이들'로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고, 2000년 솔로 앨범 1집 《6 mill Bionic Juno》, 2002년 싱글 《Asian》등을 냈지만 별다른 호응을 받지 못합니다. 그리고 연예기획자로서 영턱스그룹이외에는 전부 실패를 했으며, 여러 사업에서도 실패하고 맙니다.


현재 댄스스쿨 강사와 중국 북경 현대종합예술대학 교수, 국제대학교(경기도 평택시에 위치) 교수로 재직하면서 후진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 목차

* 이주노 어린 시절과 어머니의 재혼

* 이주노의 방황과 어머니의 종교

*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과정

* 이주노 사업 실패와 빚갚기

* 이주노 부인 박미리 첫만남과 동거

* 이주노 처가의 결혼 반대

* 이주노 아내 박미리의 자살 충동

* 이주노 서태지 부부 동반 모음

* 이주노의 의연함


이주노 부인 사진


* 이주노 어린 시절과 어머니의 재혼


이주노는 어린 시절 무척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이주노: "친아버지는 서울의 명문 집안 출신이었어요. 변호사, 학자를 배출한 집안에서 태어나 대학까지 나오셔서, 농촌의 야학교사로 잠깐 오셨다가, 농촌 처녀인 어머니를 만나게 되셨죠."


이주노가 태어나기 전이니 1960년대 중반 정도의 이야기입니다.

이주노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반해서 결혼하려고 했지만, 집안에서는 반대를 합니다.


이주노: "결국 두 분은 집안의 반대를 무릎쓰고 결혼했고, 이듬해 저를 낳으셨어요. 당시 아버지는 공무원이 되기를 바라셨지만 될 수 없었고, 결국 외딴 섬마을 고등학교 선생으로 부임하셨고, 그곳에서 결국 홧병으로 돌아가셨어요. 결국 저를 낳던 해 돌아가신 거죠."


이주노: "어머님은 말 그대로 생과부가 되셨어요. 그래서 저는 아버지 기억은 없고 어머님께서 정말 고생하신 기억만 나요. 어머님 혼자서 화장품 외판원, 공장일을 하며 저를 키우셨죠. 친가와는 연락이 끊겼고, 외가로부터는 무시를 당했고요."


이주노: "나중에 제가 나이 먹고 유명해진 후에야 친가와 아버지 친구분들이 하나둘씩 찾아오기 시작했어요. ‘너희 아버님은 훌륭한 분이셨다’라고 말하면서요."


참 안타깝네요. 이주노 모자가 어려울 때는 찾지 않고, 나중에 성공한 뒤에 찾아 나섰다니... 아마 이런 것이 인간의 속성이겠죠.



그렇게 공장에 다니면서 이주노를 키우던 어머니는 이주노가 초등학교 5학년이던 무렵 새로운 남자를 만나게 됩니다.


이주노: "결국 어머니께서 새아버지와 재혼하셨어요. 하지만 두분 사이에 아이가 없어요. 물론 애를 낳을 생각이 없었던 건 아닐 거예요. 어머님이 여러번 ‘네 동생 낳을까 말까’하고 물어보실 때마다 저는 ‘응’ 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결국 안 낳으셨어요. 아무래도 애를 낳았다가 제가 소외감 느낄까봐 그랬나봅니다."


이주노: "어머님 아버님도 이제 연세가 60, 70살 이십니다. 가끔씩 친척 잔칫집 가서 애들 재롱을 보시며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어요. 그런데 정작 외아들인 저는 결혼도 안하고 아직도 춤추러 다니잖아요. 만약 동생이 있었더라면 나같이 안 살았겠죠. 직장잡고 결혼하고 손주 낳아서 부모님 만족시켜 드렸을텐데요."


이주노가 친부의 정은 못 느끼고 자랐지만, 그래도 양부는 이주노를 아꼈나 봅니다.

물론 이주노가 사춘기 시절 방황하지 않은 것은 아니죠.



* 이주노의 방황과 어머니의 종교


이주노: "제가 사춘기던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방황을 시작했고, 고등학교를 자퇴해 어머니를 무척 힘들게 했어요. 사실 중학교 졸업도 어려워서 지레 짐작하고는 졸업을 아예 포기한채 집을 나갔죠. 중학교 졸업식도 물론 가지 않았고요."


이주노: "나중에 집에 돌아와 보니 어머님이 제 졸업장을 갖고 계셨어요. 졸업식도 못 갔는데 어떻게 된 것인가 알아봤는데, 중학교 담임선생님이 저희 집까지 찾아와서 어머니 손에 졸업장을 쥐어주셨더군요. 선생님의 그 깊은 마음을 어른이 된 지금에서야 알게 됐어요."


그 어떤 문제아라도 자포자기를 하면 안됩니다.

그가 잘되기를 바라는 부모는 물론, 이런 선생님들도 여전히 있으니까요.

자포자기를 하게 되면, 스스로의 인생을 더 망칠 뿐이죠.

항상 주변 어딘가에는 따뜻한 어른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했으면 하네요. 



이주노: "어머님이 원래 무교이십니다. 그런데 유독 그날은 벽에 십자가를 걸어놓고 냉수를 떠 놓으셨어요. 정신이 번쩍 들었죠. 그날 이후로 말썽 피우는 걸 다 접었습니다."


오랜만에 집에 들어온 이주노는 자신을 위해서 종교를 가진 어머니의 모습에 큰 충격을 받고 정신을 차리게 됩니다.

뒤늦게나마 어머니의 사랑을 알게 되어서 다행이네요.


이주노: "제가 당시 중졸학력이었죠. 결국 어머니께서 미용기술을 배우라고 하셔서 한때 미장원에 취직해서 보조생활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당시만도 5년 정도 보조생활을 해야 본격적으로 미용사가 될 수 있었죠. 그 상황이 너무 답답했어요."


이주노: "또 아무래도 중졸 학력일 마음에 걸려서 결국  미장원을 그만두고 검정고시 준비를 시작했어요. 서울 고려학원을 다니다가 친구들과 함께 종로 국일관에 들렸죠. 그 순간이 바로 춤에 빠진 계기였어요. 종로에 이어 이태원에 진출했을 때가 가장 행복했습니다. 댓가를 바라고 춤추지 않았거든요."


이후 이주노는 언더그라운드를 누비면서 큰 명성을 날리게 됩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인순이, 이재민, 박남정 등 여러 가수들의 백댄서로 활동을 했고, 이후 서태지와 만나서, '서태지와 아이들'을 결성하게 되었죠.


이주노 과거 사진(서태지와 아이들 활동 당시)


*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과정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사연은 무척이나 담백합니다.

부동의 인기 1위였던 '서태지와 아이들'이었으나, 멤버 모두들 너무 지쳐 있었던 상태였죠.


양현석: "(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체된 이유는) 멤버들끼리 추구하는 바가 달라서 헤어졌다."


이주노의 고백은 좀 더 구체적입니다.

이주노: "1994년 중순이었어요. 당시 5집 앨범을 준비했기에, 우리 멤버들은 녹음장비가 갖춰진 서태지의 집에 자주 모였죠. 녹음을 계속하던 어느 날 태지가 저에게 “형, 저좀 잠깐 봐요”라고 하더군요."


결국 둘은 사람들을 피해 2층으로 올라갔는데, 서태지는 한참동안 말을 하지 못합니다. 



이주노: "태지가 말을 못하고 계속 뜸을 들이더군요. 그 순간에 딱 ‘태지가 상당히 지쳐있구나’라고 느꼈습니다. 저도 태지에게 ‘왜 그러니’나 ‘좀 더 해보자’라는 말도 안했습니다. ‘알겠다, 너 하자는 대로 하자’고 했지요."


결국 이주노는 양현석까지 불러서 삼자대면을 하게 됩니다.

이주노: "(양현석에게) 이번 앨범은 열심히 했고 이번을 마지막으로 하려고 하는데, 현석이 네 마음은 어떠니?"


결국 양현석 역시 동의를 하고, 그렇게 '서태지와 아이들'은 해체가 결정됩니다.

(이후 공식적인 해체 선언은 반년 이상이 지난 1995년 초에 나옴)



이주노: "헤어짐에 있어서 서로 모자란 점은 없었어요. 단지 5년 이상 하면서 서로 음악적 한계와 창작의 고통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런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말없이 합의했을 겁니다."


이주노: "당시 해체 기자회견을 한 뒤, 헬기를 타고 바로 공항으로 갔어요."


세 사람은 열성팬들의 동요를 염려해서 한동안 미국에서 머물기로 미리부터 합의를 했던 것이죠.



이주노: "LA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멤버들과 햄버거를 같이 먹고 마지막 인사를 나눴어요. 비행기 안에서 서로의 앞날에 대해서는 일절 묻지 않았어요. 5년 동안 쉼 없이 달려왔으니 당분간 아무 생각 없이 무조건 쉬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거든요."


이주노: "저는 할리우드에서 한 달 동안 머물렀는데 하루 종일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만 멍하니 바라봤던 것 같아요. 사실, 그때 앞으로 뭐 해먹고 살지 진지하게 고민했어야 하는데... 그 고민을 안 한 탓에 고생을 많이 했죠(이후 사업 실패를 많이 했죠)."



* 이주노 사업 실패와 빚갚기


이주노: "서태지와 아이들 활동 당시, (서태지가) 벌어들인 수익이 200억이 넘을 것 같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서태지가 없으면 만들어질 수 없었다. 전체적인 부분을 서태지가 끌고 갔기 때문에 양현석과 나는 전혀 불만을 갖지 않았다."


이때의 200억원은 서태지가 받은 몫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주노는 따로 약 60억원(혹은 40억원)을 받았죠(이주노 재산).


이후 서태지는 계속 신비주의를 지켰고, 간혹 싱글 앨범을 내기도 하지만, 이주노와 양현석은 각자 사업가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이주노는 처음 영턱스그룹을 성공시켰지만 이후 허니 패밀리와 본인의 솔로 앨범이 실패하면서 결국 사업은 빚만 약 40억원을 남기게 됩니다.


반면에 양현석은 킵식스로 처음에는 실패했지만, 이후 지누션, 원타임 등의 성공을 발판으로 YG(현재 3대 기획사 중의 하나)를 설립하게 되죠.


이 사진은 좀 깔끔한데 이주노가 노숙자처럼 나온 사진도 많네요.


이주노: "그룹(서태지와 아이들) 해체할 때 받은 60억원과 ‘영턱스클럽’ 초기 성공으로 번 돈까지…, 돈은 무한정 있다고 착각했어요. 한마디로 세상물정을 너무 몰랐어요. 음반 계약을 잘못해서 하루아침에 큰돈을 날리기도 하고, 그걸 만회하려고 또 무리하게 투자를 해 더 큰 손해를 보기도 하고…."


이주노: "무엇보다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한 게 가장 큰 실수였던 것 같아요. 사업을 체계적으로 꾸리지 못하고 인정에 얽매여 여러 사람에게 끌려다녔죠. 사장이 아니라 남 퍼주기 좋아하는 친한 ‘형’ ‘동생’이었던 거예요. 그러다가 결국 사업이 망하니까 저는 졸지에 ‘나쁜 사람’으로 전락하더라고요."


결국 이주노는 음반 사업 실패 이후에 옷가게, 호프집, 힙합클럽 등의 다양한 시도를 하지만 대부분이 실패하게 됩니다. 결국 약 40억원의 빚만 남기게 되었죠.



이주노: "서울 상수동 쪽에 월세로 작은 아파트를 구할 생각이에요. 부모님은 젊어서 워낙 가난하게 사셨기 때문에 물질적인 것에 크게 연연해하지 않으세요. 제가 ‘서태지와 아이들’로 전성기를 누릴 때도 큰 걸 바라지 않으셨어요. 사업으로 큰 손해를 볼 때조차 ‘남에게 절대 피해가지 말게 하라’는 충고를 하신 분들이죠."



이주노: "(사업 실패로) 죽을 생각이었다면 열두 번도 더 죽었겠죠. 하지만 정말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웃음). 혹자는 제가 패배의식에 젖어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제 성격을 모르고 하는 소리예요. 실패를 거듭하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가 ‘진정으로 두려운 것은 잃는 게 아니라 욕심’이라는 거예요. 마음을 비우면 모든 것이 편안하고 다시 시작할 용기도 생기는 것 같아요."


비록 이주노가 사업에는 실패했지만, 인간적으로는 크게 성숙해진 것 같네요.

아마 나중에 아내 박미리를 만났을 때도, 이런 의연함이 큰 매력으로 작용했을 것 같습니다.


이후 이주노는 온갖 우여곡절끝에 빚을 다 청산합니다. 원래 플러스 60억원(혹은 40억원)에서 마이너스 40억원을 모두 다 갚은 셈이네요.

인간승리인 것 같습니다(이주노 재산).



* 이주노 부인 박미리 첫만남과 동거


이주노는 아내 박미리를 2010년 처음 만나게 됩니다.


이주노: "아내를 처음 만난 계기는 정말 평범하다. 내가 자주 가는 카페에 아내는 당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시간이 남아서 카페에 잠깐 있었다."

(이주노 아내 부인 직업 카페 아르바이트생)


이주노: "내가 신인들 발굴하는 게 직업이라 사람을 잠깐 봐도 스캔이 된다. (아내가) 내가 구성하는 걸그룹과 이미지가 맞을 것 같았다. 음악이나 춤에 관심 있냐고 물어봤는데 관심이 없다고 답하더라. 하지만 이유없이 미련이 남아서 끊임없이 연락했다. 이게 인연인가 보다 했다."



박미리: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의 이주노라는 걸 알긴 알았다. '아 연예인이구나. 별 다른 게 없네?'라고 느꼈다. 처음부터 나에게 잘해줬다. 자연스럽게 내 남자친구, 내 남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미리: "같이 헬스클럽 다니면서 운동을 하는데 배에 왕(王)자 라든지 팔 근육, 몸이 되게 딱딱했다. 지금 몸은 아니지만 그때 남자로 느껴졌다."


당시 이미 이주노는 사십대 중반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춤꾼으로 이름을 날린 그답게 몸관리를 꾸준히 하고 있었네요.

혹독한 사업 실패에도 자기 관리가 철저했다는 점은,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사실 이주노가 '서태지와 아이들' 출신이지만, 박미리같은 신세대는 이들의 음악과 영향력을 잘 모릅니다. 또한 재산이 많은 서태지나 양현석과 달리 이주노는 빚만 잔뜩 있었죠.

(빚을 다 갚기는 했지만, 포털사이트에 잠깐 검색만 해도 이주노와 연관된 빚 이야기는 아주 많죠)


박미리가 이주노에게 끌렸던 것은 이주노의 재산이나 스타의 명성 같은 것은 전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 이주노 처가의 결혼 반대


이주노: "당시 아내에게 이상하게 끌려 그날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아르바이트 장소에서 새벽까지 기다려 집까지 데려다주는 개인 기사노릇을 했다."


이주노: "결국 23살 연하이자 당시 22살인 아내와 장인 장모 몰래 만난 지 2개월만에 동거를 시작했고 동거 50일 만에 임신하게 됐다."


참고로 이주노 장인은 이주노보다 4살, 장모는 이주노보다 2살 더 많습니다.

이주노 장인 어른은 그렇지 않은데, 장모는 처음부터 결혼에 대해서 크게 반대하죠(이주노 23세 연하 아내)(이주노 아내 나이 23살 연하).


박미리: "처음에 엄마에게 남편(이주노)과 사귄다고 했을때는 '너네가 오래갈 지 보자'라는 담담한 반응이셨지만, 아이가 생겼다고 말했을때는 눈물을 흘리며 충격에서 빠지셨다. 굉장히 힘들어 하셨다."(이주노 장모님)



박미리: "결국 첫째딸을 낳았을 때 엄마가 안 오셨다. 엄마가 쓰러져서 병원에 계셨다. 서운하면서도 미안했다."


박미리: "현재 시댁에 살고 있지만, 친정엄마가 해주는 밥도 먹고 싶고, 엄마가 보고 싶은데 매몰차게만 하시니까 솔직히 미안하면서도 서운했다. 지금은 많이 풀어지셔서 아기도 보러 오신다."


이주노 장모의 결혼 반대가 이렇게 컸습니다.

자기 딸이 23살 차이나는 남자와 결혼한다면, 아마 대부분이 이런 반응이지 않을까 하네요.


이주노: "장모님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여전히 여자 친구와의 결혼에 반대가 심해서 찾아뵙지 못했다."


이렇게 이주노는 처음에는 장모와 상견례도 하지 못하지만, 후에는 장모와 직접 대하면서 관계가 조금씩 회복됩니다.


이주노 장인 어른 사진


* 이주노 아내 박미리의 자살 충동


혼인신고를 하긴 했지만, 이주노 부인 박미리는 동거 기간에 심한 우울증을 앓기도 합니다.


박미리: "내 나이 또래처럼 살지 못하고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후회가 밀려와 아이를 낳고 극심한 우울증이 찾아왔다. 내가 살고 있던 아파트 18층에서 떨어지면 '정말 무섭지 않게 세상을 떠날 수 있겠구나'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박미리: "당시 너무 힘든 나머지 남편에게 힘들어서 죽겠다고 털어놨는데, 남편이 더 강한 말로 나를 압박했다."


이주노: "아내가 아기를 나에게 맡기고 집을 나가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아기를 데리고 나가면, 넌 끝이야."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충격요법이었다."


박미리: "오빠가 너무 강하게 나오니까, 화를 내다가 내가 얼어버렸다. 마치 내 아이를 빼앗기는 기분이었다."


이주노: "사실 충격요법이기는 하지만, 내가 2년간 한번도 화를 낸 적이 없다, 아내의 모든 말에 긍정과 수긍을 다 해주었다. 그래서 효과가 더 컸던 것 같다."


부부싸움이 한방에 정리가 되었네요.

사실 부부싸움을 잘못하면 이혼같은 불행한 결과로 연결이 되는데, 이주노가 현명하게 잘 대처했던 것 같습니다(이주노 이혼 극복).


그런데 이주노의 충격요법을 사용하려면, 평소에 잘 해주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죠.

아마 매일 '충격'을 주면, 그 충격이 별 효과가 없을테니까요.



* 이주노 서태지 부부 동반 모음


이주노 박미리 부부는 2012년 9월 결혼식을 올립니다.

(이주노 배우자 박미리)(이주노 와이프 박미리)


또한 첫째딸 이재이, 아들 이산희외에 현재 셋째를 임신하고 있죠.

(이주노 자녀 자식)(이주노 가족 관계)


이주노: "아내가 현재 임신했다. 아이 둘을 힘들어해 셋째는 터울을 많이 둬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맘대로 되는게 아니더라."(이주노 고백 셋째)



예전에 이주노는 서태지의 평창동 집에서 부부동반 식사를 하기도 합니다.

이주노: "집이 좋더라. 제수씨(이은성)가 음식을 성심성의껏 준비해 감동했다. 샤브샤브를 했더라."


이주노: "저희 부인이 25살이고 서태지 부인 이은성이 27살이다. 둘은 비슷한 또래여서 얘기가 잘 통하는 것 같더라. 나와 서태지도 과거에는 주로 음악 얘기를 많이 했지만 이제는 가정 얘기를 많이 한다."



원래 이주노도 서태지가 이지아와의 결혼 및 이혼을 했던 과정은 잘 모르는데, 현재의 부인 이은성과는 함께 교류를 하는 모양이네요.


이주노 가족 사진


* 이주노의 의연함


사실 이주노는 해체 이후 서태지나 양현석에 비해서 별로 빛을 보지 못했는데, 인격적인 성숙은 그들 못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주노: "사실 이런 저런 경험(사업 실패들)을 하면서 지금 속상한 것도 후회하는 것도 싫었다. 내가 그런 것을 알면 된다. 담담해지고 싶어 노력하고 있다."


이주노: "지나온 날들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집 크기와 용돈이 좀 줄어들었을 뿐 힘든 생활이 정신적으로 성숙하게 만든 것 같다."


아마 이주노의 이런 의연함에 23살 어린 박미리 역시 반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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