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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

김대중은 무능력했나, 몰염치했나 이런 김우중의 도전과 실패는 우리 민족에게 '귀중한 교훈'이 될 수 있습니다. 사실 남한 인사들은 공단을 통하여 '남북 화해 무드'를 조성할 수 있다라고 기대하는 반면에,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정권은 '체제 유지에 방해가 된다면 언제든지 공단을 폐쇄할 수도 있다'라는 마인드를 갖고 있습니다. (스폰서 링크) . . 그렇다면 개성공단을 추진했던 김대중은 이런 '남포공단 실패'를 몰랐던 걸까요? 아니면, 자신만은 이런 위기에 대한 '해결책'을 갖고 있었던 걸까요? . . 몰랐다면 무능력한 것이고, 알았다면 이후에도 그 '해결책'을 선보이지 않았다는 것에 대하여 굉장히 의아할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된 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을 재개할 것으로 보이는데, 사실 문재인 역시 과.. 더보기
김우중의 남포공단, 김대중의 개성공단 그리고 김우중의 두번째 업적은 무엇일까요?바로 남포공단 실패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실패'는 잘 잊어버리고 성공만을 기억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실패를 잊고 교훈을 망각하는 민족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습니다.똑같은 실패를 계속 되풀이하기 때문이죠. (스폰서 링크) . . 그런 의미에서 김우중의 남포공단 시도는 '위대한 도전'이었고, 그 실패는 우리 민족에게 커다란 '교훈'으로 남을 만합니다. 지난 1996년 김우중은 평양 인근 남포에 경공업 공단을 세우게 됩니다. 당시 200만평 규모로, 2002년에 나온 김대중 정주영의 개성공단이 100만평 규모였던 것에 비하면 2배나 더 큰 규모였죠.(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남포공단은 잘 모름) . . 하지만 불과 3년만에 김우중은 남포공단.. 더보기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는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 (분식회계의 뜻 - 쉽게 말해서 기업 회계의 손실은 줄이고 이익을 늘리는 '범죄'로 사람들을 속이는 행위임) 결국 대우가 망하게 되면서 '대마불사의 신화'도 깨졌고, 김우중은 후대에 '분식회계를 하면 안된다'라는 교훈을 남겨 주게 되었죠. (스폰서 링크) . . 참고로 현재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 사건 역시 심각한데, 이것은 김우중의 원죄와는 약간 거리가 있습니다. 이미 대우조선해양이 산업은행으로 넘어간지 20년 가깝게 되었고, 이명박 정권때부터 남상태 사장가 연임 로비를 하는 등의 도덕적 해이가 심했기 때문이죠. (남상태는 이명박 부인 김윤옥을 '누나'라고 부를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가까운 사이였음) . . 그리고 박근혜 정권하에서도 대우조선해양의 사외이사 중 40%가 비전문 정치인들로 낙하산 출신들입.. 더보기
대우 김우중의 업적 평가 그렇다면 만약 이명박과 박근혜가 다시 대통령 선거에 나온다면, 고소득층과 부자들은 그들을 다시 대통령으로 뽑을까요? 이미 자신의 자산이 크게 증가하는 경험을 했기에, 거의 대부분이 다시 이명박과 박근혜를 다시 뽑지 않을까 하네요. (스폰서 링크) . . (만약 김대중과 노무현이 고스득층과 부자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하여 정권을 잡았다, 라고 주장을 하면 할말이 없습니다만...) 아무튼 김대중과 노무현 지지자들은 과거 두 사람의 경제 정책 능력에 대한 엄정한 평가를 하고 그들을 뛰어넘는 능력을 보여줘야 합니다.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또다시 실망하고 보수 정권을 선택하게 될테니까요. . . 다시 김우중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김우중의 업적은 무엇일까요? 첫번째, 김우중의 업적은 분식회계에 대한.. 더보기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의 경제 정책 능력은 사실 김대중 지지자들은 김대중에 대하여 '대중경제론' 운운하면서 경제 정책 능력을 치켜세우는데, 사실 김대중의 경제 정책 능력은 역대 정권 최악중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노무현 역시 경제 정책 능력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스폰서 링크) . . 한 나라에 대한 경제 정책에 대한 철학이 없었기에, 노무현은 삼성경제연구소가 작성한 '국정운영백서'를 받아들였고, 결국 참여정부는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삼성경제연구소의 '백서' 내용대로 국정을 운영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정부 차원의 '백서'가 나오지 못하는 것도 기가 막히고, 노무현 정권이 삼성의 백서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도, 기가 막힐 일이죠. . . 여기서 김대중과 노무현, 그리고 이명박과 박근혜를 한번 비교해보는 것도 의미있을 것 같네요... 더보기
우리나라에 IMF백서가 없는 이유 결국 김대중의 우유부단한 태도와 잘못된 시그널 역시 국민들에게 고통을 가중시킨 것이죠. 사실 IMF 외환위기와 같은 겪은 다음에는 당연히 백서 (정부 조사 보고서)가 발간되어야 합니다. (스폰서 링크) . . 그래야 '원죄가 있는' 옛 대우 인사들이나 경제 관료들처럼 서로 상대방의 잘못을 비난하고, 일반 국민들은 누구의 말이 맞는지, 어리둥절하는 상황이 없을 테니까요. 실제로 미국은 9.11테러 사건과 2008년 금융위기를 겪은 다음에 정부 차원의 조사위원회를 꾸려서 보고서를 작성합니다. 이에 사건 당사자들도 훗날 아무 말도 못하고 그 원인과 이유를 겸허히 수용하게 되었죠. . . 게다가 태국 역시 외환위기 사건에 대하여 '누쿨 보고서'를 작성하여 진상규명을 철저하게 합니다. 하지만 유독 한국만은 20년.. 더보기
김대중의 우유부단함은 역사에 죄를 짓고 '경제에 문외한 이었던 김대중'은 그냥 강 건너 불구경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채질을 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대우의 구조조정이 시급한 상황에 김우중에게 '경제 대통령' 운운하면서 힘을 실어줍니다. (김대중 정권 초기에 김우중이 특혜같은 대우를 받는 일이 굉장히 많았음) (스폰서 링크) . . 5대그룹 회장단과의 만찬에서는 이런 말을 합니다.정세영 (현대자동차 전회장): "(김대중이) 수출 잘 하는 기업은 업고 다니겠다, 라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 결국에는 대우의 수출 금융을 막아버리게 됩니다. 사실 김대중이 당시 대우를 비롯한 한국 기업들의 방만한 경영 상태를 제대로 알았다면, 김우중과 재벌 총수들에게 '단호한 신호'를 보내야 했습니다. . . 하지만, 김대중과 '경제 관료'들은 재벌.. 더보기
경제관료들의 매국노 짓들 사실 IMF 외환 위기 시절에 경제 관료들은 신이 났을 겁니다. 분명 본인들이 외환 위기를 일으킨 주요 당사자중의 하나인데도, 연인 언론들은 '경제 관료들'의 입만 쳐다보고, 전국민들이 그들을 주시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스폰서 링크) . . 아마 전국민이 고통을 당하는 와중에, 그들은 '신이 나서' 자신들의 권력을 휘둘렀는지도 모르겠네요. 특히, 대우가 몇개 계열사를 팔아서 자금을 마련하려고 하자, 경제 관료 책임자는 "시장 가격이 낮아서 잘 안 팔릴 것이다."라고 대우의 회생책을 면전에서 방해를 놓습니다.(대우 계열사가 팔리든 잘 안 팔리든, 경제 관료들이 이렇게까지 방해를 했어야 했을까요?) . . 그리고 김우중이 전재산 등을 내놓는 사재출연을 발표하자, 모 책임자는 "김우중은 이미 대주주 자격을 .. 더보기
IMF에 대한 김대중의 죄 그렇다면, 김대중의 죄는 무엇일까요? 이전의 김영삼이나 김대중에 대한 글에서 이미 김대중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적었습니다. 특히, IMF 환란 당시의 김대중의 문제점은, '경제에 대하여 잘 몰랐다'라는 점입니다. (스폰서 링크) . . 사실 김영삼이나 김대중이나 독재 정권에 맞서서 '민주화 운동'을 한 것은 높이 평가될 만하지만, 경제 정책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김영삼의 무리한 OECD 가입 등의 문제점은 이미 지적했고, 김대중은 IMF와 제대로 된 협상도 하지 못했고, IMF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국제 금융자본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여서, 국내 산업자본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죠. . . 사실 당시 경제 관료들의 행동은 정말 '매국노'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IMF도 우리나라에 .. 더보기
모피아 경제관료들의 문제점 사실 경제 관료들이 외환보유고만 적절하게 관리했다면, 당시 한국이 겪었던 참담했던 환란은 피할 수 있었을 겁니다.이처럼 경제 관료들 역시 'IMF 환란'의 주요 책임자들이죠. 하지만 김영삼은 이미 정치적인 심판을 받았고, 김우중 역시 대우를 잃게 되었지만, 당시 경제 관료들은 그 어떤 처벌도 받지 않고 넘어 갔습니다. (이들이 바로 모피아를 형성하게 됨) (스폰서 링크) . . 잘 알려진 것처럼 강봉균은 김영삼 정권때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장과 정보통신부 장관을, 그리고 김대중 정권 시절에는 경제수석비서관과 재정경제부 장관 등을 역임했고, 그 이후에는 전라북도지사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합니다. 이헌재는 원래 이회창 당시 대통령 후보의 경제특보였는데, 김대중이 들어서자마자 바로 비상경제대책위원회 기획단장으로 임.. 더보기
범인들이 서로 비방하는 꼴 그런데 과연 누구의 소리가 옳을까요? 김우중을 비롯한 대우 인사들의 주장 (대우에 대한 기획해체)가 옳을까요?아니면 경제 관료들의 주장 (대우의 부도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가 옳을까요? (스폰서 링크) . . 사실 정답은, '둘 다 죄를 지은 놈들이 뻘소리를 한다'입니다.당시 IMF 외환 위기는 재벌들의 방만 경영과 더불어 경제 정책의 잘못 역시 주요 원인이었습니다.(이전의 김영삼 글 시리즈와 김대중 글 시리즈에서 IMF 외환 위기의 주요 이유 3가지를 설명했음) 우선, 김우중의 주장중에서 눈여겨볼 대목이 있습니다.김우중: "외환 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은 정부가 외환정책을 잘못 쓴 것이지, 기업이 잘못한 것은 아니다." . . 김우중: "대우는 수출 비중이 컸고 환율 변동에 대해 적극 대처했다." 사실.. 더보기
김우중의 김대중에 대한 평가 그렇다면, 김우중의 김대중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요? 의외로, 김대중에 대한 김우중의 평가는 굉장히 호의적입니다. 김우중: "DJ는 (경제관료들의 정책을) 나에게 보여주면서 의견을 물을 정도로 가까웠다." (스폰서 링크) . . 김우중: "DJ와 처음에는 돈독한 신뢰 관계가 형성됐지만, (관료들에 의하여 나에 대한) 부정적인 보고들이 계속 올라오니까 DJ가 마음을 바꾼 것 같다." 김대중 정권 시기에 김우중이 섭섭한 소리를 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대우를 기획해체한 것은 김대중 정권의 '관료'들이지, 김대중에게 그 탓을 돌리지는 않았죠. 참고로 김우중의 노무현에 대한 평가2007년 12월 김우중은 노무현으로부터 특별 사면을 받게 됩니다. 분식회계 등으로 20조에 가까운 천문학적인 손실을 낸 기업 총수에게, .. 더보기
강봉균 이헌재의 반박 이에 대하여 경제 관료들은 반박을 합니다. 강봉균 (당시 재정경제부 장관): "당시 경제가 어려운 때였기에, (우리) 관료들은 어떻게든 대우를 살려보려 애를 썼다. 일부러 (대우를) 어렵게 만들 이유가 없었다." (스폰서 링크) . . 강봉균: "대우 위기는 김우중 회장이 자초한 것이다. 대우는 다른 그룹들에 비해 자구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위원장): "대우그룹이 몰락한 것은, 구조조정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에, 시장의 신뢰를 잃었던 것이다." . . 이헌재: "(대우가) 시장원칙을 외면하고 뒤늦게 구조조정을 시작하는 바람에 최대한 연착륙시키려 노력했지만 그것마저 너무 힘들었다." 이헌재: "김대중 정부가 대우를 죽였다, 라고 주장하는데, 모두 허튼소리일 뿐이다." 이처럼 옛 대.. 더보기
대우 김우중과 이헌재의 과거 악연 김우중: "정부가 대우를 해체하고 대우자동차를 GM에 거의 공짜로 넘겼다." 김우중: "대우그룹 해체 이후 대우계열사들은 오히려 더 좋아졌다. 그리고 그 수혜는 우리 대우 계열사들을 인수한 금융기관과 외국투자가가 다 차지했다." (스폰서 링크) . . 김우중: "(김대중 정권의) 경제관료들이 나를 제거하려는 프로그램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장병주: "당시 관료들이 '대우가 부실하다'라고 말했다. 그때 관료들 말 한마디로 시장이 좌우되었다." 김우일 (대우그룹 구조조정본부장): "대우그룹 해체를 주도했던 이헌재 전 부총리(당시 금감위원장)는 김우중 회장과 무척 불편한 관계였다." . . 김우일: "이헌재 부총리는 1983년 대우통신 상무로 있었을 때 한국반도체공장 인수를 주도했다. 당시 300억원에 낙찰.. 더보기
대우그룹이 기획해체되었다는 주장 이 덕분에 김대중 역시 김우중에 대하여 상당한 호감을 갖고 있었고요. (김우중이 1998년 전경련 회장을 맡은 것도, 김대중 정권 출범과 무관하지 않음)사실 김우중과 김대중의 관계는, 김대중 측근들의 증언을 들어봐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스폰서 링크) . . 동교동계 중진의 증언: "(김대중이) 야당 때 김우중 회장이 우리를 도와준 액수는 한번에 약 2억원 정도였어요. (김우중이) 여당에 준 것에 비하면 비교가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다른 재벌 총수들의 돈보다는 많았죠. 그래서 (우리는 김우중에게) 더 고맙게 생각했어요." 일각에서는 김대중이 일부러 대우를 죽였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사실 김대중 정권과 대우그룹은 원래 밀월관계였습니다.김대중이 김우중에게 "정치는 내가 대통령이지만, 경제는 당신 (김우.. 더보기
대우는 김대중때문에 몰락했다 아무튼 대우는 1997년 IMF 사태를 맞아서 급격하게 몰락하게 됩니다.(혹자는 대우 사태가 IMF 국난을 일으킨 주요 요인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일부의 김우중 지지자들은, '대우가 망한 것은 김대중 정권의 기획 해체때문이다.'라고 주장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대우가 망한 것은 방만경영때문이었다.'라고 주장합니다. 과연 무엇이 진실일까요? (스폰서 링크) . . 우선, 대우가 망한 것은 김대중때문이었을까요?대답은, '예, 그렇습니다'입니다. 먼저, 당시 김우중과 김대중의 사이는 굉장히 좋았습니다.노태우 정권 시절에, 김우중은 운동권 출신들을 대규모로 받아들이기도 했고, 국내 재벌중에서는 그나마 노사 관리를 안정적으로 운영합니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과는 차원이 달랐음) . . 게다가 김대중이.. 더보기
김우중과 트럼프의 아쉬운 인연 아무튼 김우중 부인 정희자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인연이 있었습니다.사실 과거 대우건설이 트럼프와 합작해서 우리나라에서 주상복합 아파트 건축 붐을 일으키는 등, 사업적인 파트너 관계였죠. (스폰서 링크) . . 김우중: "우리 대우건설이 트럼프와 제휴해서 국내 7곳에 ‘트럼프’란 브랜드로 건물을 올렸다." 김우중: "1998년 미국에 가서 그를 처음 만났다. 그날(7월 8일)이 바로 박세리 선수가 US오픈에서 우승한 날이었는데, 우리는 트럼프 사무실에서 함께 그것을 시청했다." 김우중 부인 정희자: "김우중 회장이 그룹 임원들에게 골프장에 얼씬도 하지 말라는 엄명을 내렸기에, 우리 그룹내에서 (트럼프와) 골프를 칠 사람이 저밖에 없었어요." . . 정희자: "트럼프는 오래 골프를 쳐온 사람으로 대단한 장.. 더보기
김우중 아내 정희자의 고백 그리고 아트선재센터 관장과 대우개발 회장 등을 역임하게 됩니다. 정희자 (김우중 아내): "평범한 월급쟁이 아내로 살려고 김회장 (남편 김우중)을 만났는데, (나중에) 원하지 않은 대그룹의 회장 부인이 되어서 사생활을 도둑 맞았다(웃음)." (스폰서 링크) . . (지난 1964년 결혼함. 당시 김우중은 샐러리맨이었음.)(대우 김우중 배우자 와이프 정희자) 정희자: "남편은 두 얼굴의 아내를 원했던 것 같아요. 사실 회장님 (김우중)만 그렇다는 것이 아니에요."김우중 회장 부인 정희자 사진 정희자: "우리나라의 남편들 대부분은 아내에게서 두 얼굴을 원합니다. 하나는 조용하고 정숙한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언제라도 활동할 수 있는 힘을 지닌 그런 여자이기를 바라는 것이죠." . . 이후 정희자와 김우중은 .. 더보기
김우중 부인 정희자 학력과 이력 (물이 없고 워낙 무덥기 때문에, 공사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음) 이 난공사에 뛰어든 김우중과 대우건설은 근처에서 우물을 파는데 성공했고, 결국 이 난공사를 성공시켰으며, 이 덕분에 리비아를 비롯한 제3세계에서 대우건설의 능력을 인정받게 됩니다. (스폰서 링크) . . 결국 이후 리비아의 거의 대부분의 공사와 아프리카, 나아가 중동까지 진출하게 된 발판이 된 것이죠.(이란 고속도로 역시 이때의 실적이 발판이 되어서 수주와 건설에 성공하게 됨) 참고로 김우중의 가계도를 보면, 굉장히 단촐하기 그지 없습니다.보통 재벌 일가들은 다른 재벌이나 정치권과 굉장히 복잡한 혼맥을 형성하기 마련인데, 김우중의 형제자매들은 보통 교육자 혹은 일반인(?) 집안과 결혼하게 됩니다. . . 우선 김우중 부인 정희자 역시 경.. 더보기
대우건설이 만들어진 이유는 박정희의 지시 특히,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대우건설의 탄생과 성장을 보면, 대우의 경쟁력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대우그룹 부도 이후에 대우건설은 건설업체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해외 매각이 금지되었음. 그 이유는 바로 대우건설이 우리나라 건설 회사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원전 건설 경험을 온전히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음.) (스폰서 링크) . . (이처럼 일정 분야에서는 오히려 현대건설이나 다른 건설사보다도 경쟁력이 더 좋은 상황이었음)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박정희 지시(?) 때문에 건설회사가 없었던 김우중은 임직원 12명을 데리고 급하게 대우건설을 만들게 됩니다. 그리고 국내 시장에도 진출하지만, 돈이 되는 해외 시장 개척을 서두르게 됩니다. . . 하지만 중동 지역은 현대나 동아 건설등이 이미 선점을 한 상..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