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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정주영은 1998년 500마리의 소떼를 몰고 판문점을 통과하여 북한으로 가게 됩니다.


(참고로 정주영이 소떼를 몰고 북한으로 간 이유)

원래 이전글에서 설명한 것처럼, 정주영은 17살 때 아버지가 '소를 판 돈 70원'을 몰래 훔쳐들고 가출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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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고향땅에서 소판 돈을 가져왔으니 그걸 다시 고향(땅이 포함된 북한)에게 되돌려 준다는 의미와 더불어, 당시까지 북한 농사에 굉장히 중요했던 소를 몰고가서 북한 경제에 도움이 되겠다는 의도였죠.)



당시 정주영은 민간인 신분으로 최초로 판문점을 통과하여 북한으로 갔는데, 사람들은 군사적 긴장감이 높았던 휴전선이 드디어 무너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기대감을 갖게 되었죠.


또한, 정주영의 소떼 방북 사건은 전 세계 매스컴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오랜기간 군사적으로 대치했던 남한과 북한이 드디어 '새로운 교류와 협력을 시작'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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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사건에 대하여 프랑스의 철학자 기 소르망은 "(정주여의 소떼 방북 사건은) 20세기 최후의 전위예술이다."라고 감탄을 하기도 합니다.


사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도 역사적인 사건이었지만 이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사건'은 없습니다.

만약, 정주영의 꿈처럼 북한을 개방하고 시베리아까지 개발했다면, '정주영의 소떼 방북 사건'은 이런 거대한 역사적인 흐름의 '최초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을 겁니다.



아무튼, 이때의 성과가 바로 개성공단과 금강산 개발입니다.


김정일: "왜 남북합작 공단을 신의주가 아니라 개성에 만들려고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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