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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순 요리연구가의 여러가지가 흥미롭네요.

먼저 심영순 딸 장은주 요리연구원이 어디서 기원을 했는지,

그리고 심영순의 고향과 남편 장영순의 이야기 등도 궁금합니다(심영순 셰프 쉐프).


심영순과 더불어 한식대첩에 심사위원으로 나오는 최현석 포스팅 (새창보기)

최현석 셰프 부인과 딸 - 시댁에 분노한 이유


(스폰서 링크)


# 목차

* 심영순 집안 이야기

* 심영순 남편 장영순 직업

* 심영순의 시집살이(심영순 시댁 식구들의 뒷바라지로)

* 심영순 딸 장은주를 포함해서 4명의 딸들은

* 심영순 요리 연구가의 길을 걸으며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요리연구가 심영순(본명)은 1940년 5월 서울 신당동에서 태어났습니다(심영순 고향 출신). 올해 76살이죠(심영순 나이).

(심영순 종교) 기독교(개신교)

(심영순 경력 및 프로필) 옥수동 요리 선생님이라는 별명으로 많이 알려짐


1988년 옥수동 극동아파트 상가에 요리 학원을 개원함


고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의 일곱 며느리와 손녀딸들 모두에게 요리를 가르쳤으며, 이건희 삼성 회장의 딸인 이부진 등 여러 재벌가의 며느리와 딸들을 사사함(심영순 경력 및 프로필)


심영순 책

<최고의 우리맛> (2000년)

<23가지 양념장으로 만든 203가지 요리> (2003년) (웅진닷컴)


현재 올리브 한식대첩 1, 2, 3에 심사위원으로 출연중


심영순 딸 사진과 심영순 남편 사진

(왼쪽은 심영순 첫째딸 장나겸이고, 오른쪽은 심영순 남편 장영순임)


* 심영순 집안 이야기


심영순은 1940년 5월 서울 신당동에서 태어납니다.

그런데 심영순 어머니가 아들 두명을 낳자마자 떠나보냈기에, 심영순에 대해서는 별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의 두 언니가 어머니로부터 예쁨을 받으며 자란 것과는 대조적이었죠.


심영순: "어머니가 충청도 진사댁 고명딸이었는데, 요리솜씨도 좋고 수완도 좋으셨다. 집에 세를 놓고, 월세를 받아 살림을 꾸렸는데, 형편이 늘 넉넉했다. 집안에 식모도 여럿을 두고 있었고."



참고로 심영순 집안은 군인 집안입니다.

한때 심영순이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전국 각지를 돌아다닌 것으로 보입니다.



심영순: "내가 세 살 때부터 콩나물에 물을 주고, 김장철이면 어머니 옆에 앉아 시키는 대로 고춧가루를 뿌렸다. 내가 고등어를 구운 적이 있었는데, 어머니가 "이걸 누가 먹니, 개나 갖다 줘라." 이런 모진 말을 하시기도 하셨다."


심영순: "그런데 나는 그게 서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항상 '내가 뭘 잘못했나 봐'라고 생각하며, 더 잘하려고 노력했다. 어머니는 늘 나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잔칫날이 되면 수십명의 찬모들을 지휘하시고, 당시 돈으로 20만원 하는 민어 한 마리를 사면, 어머니가 직접 배를 가르고, 회를 뜨고, 뼈를 발라냈다."


심영순 사진


* 심영순 남편 장영순 직업


이후 심영순은 장영순을 만나 1960년 결혼하게 됩니다.

(신기한 것은 두 사람의 이름이 같다는 점입니다.

당시에도 천생연분이라고 사람들이 이야기를 많이 했죠.)


결혼할 때 심영순의 나이가 21살이었을 정도로 어린 나이였는데, 당시에는 대개 이런 나이에 결혼을 했죠.

(현재 심영순 남편 장영순 나이 83살)  심영순 나이차이 7살


심영순 남편 장영순 직업 공무원(프로필 및 경력)

강남구청을 포함해 서울의 여러 구청에서 건설국장과 시민국장을 역임한 뒤에 은퇴함



심영순: "남편의 청렴하고, 효심이 지극한 모습에 반해 결혼했다."


그런데 결혼 후에는 남편의 효심이 지극한 모습이 오히려 독이 됩니다.


심영순 남편 장영순 사진(1960년)


* 심영순의 시집살이(심영순 시댁 식구들의 뒷바라지로)


심영순: "남편의 효성이 지급해서 월급을 내가 아닌 어머니께 드렸다. 남편 집안도 대식구여서, 내가 끼니 때마다 다섯 번 이상 밥상을 차렸다. 시아버지, 시어머니, 시누이, 시동생, 남편 상을 따로 내야 했다."


심영순: "그 당시에 많이도 울었다. 한번은 어머니에게 하소연했더니 되레 나를 혼내시더라. 무조건 희생하고 (시댁 어른들을) 공경하라고 하셨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해 못하겠지만, 당시에 나는 그게 맞는 줄 알았다."



심영순: "하지만 돌이켜보니 내 삶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얼굴과 몸매는 고작 몇 년이야. 내가 평생 남편 사랑을 독차지한 건, 음식 솜씨. 그거 하나였으니까."


심영순: "남편과 사이 좋고, 아이들도 잘 자랐고, 사람들 많이 가르쳤으니 아쉬울 게 없지."



오늘날의 시각으로 본다면, 심영순이 이혼하지 않고 남편과 행복하게 사는 것이 신기하게 보일 것 같네요.



* 심영순 딸 장은주를 포함해서 4명의 딸들은


심영순 장영순 부부는 슬하에 딸 4명을 둡니다.

장나겸(큰딸 이름), 장혜주, 장은주, 장윤정

(심영순 가족관계)


참고로 심영순 딸 장나겸은 한때 '옥수동 요리 연구원'으로 어머니 일을 돕기도 합니다.


또한 심영순 딸 장은주는 특이하게도 미국에서 8년 동안 유학 생활을 거친 다음에, 역시 어머니의 뒤를 잇습니다. 서울 성동구 옥수동에 '심영순 장은주 요리연구원'을 운영하고 있죠.(참고로 기존의 심영순 요리연구원에 딸의 이름을 함께 넣음. 아마 장은주가 심영순의 직접적인 후계자로 자리매김한 것 같네요.)

(심영순 딸 장은주 직업)


심영순 딸 장은주 사진


심영순 장은주 요리연구원 주소(위치)

서울 성동구 독서당로 187

(지번) 성동구 옥수동 428

전화번호 02-2293-0717


심영순 요리연구원 위치(맵)


또한, 장윤정 역시 이탈리아에서 8년동안 예술공부를 한 다음에, 나베S&F의 대표가 됩니다(어머니의 향신양념을 개발하고 연구하는 기업)



심영순 딸들이 모두 어머니의 뒤를 이어서 요리연구가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


심영순 딸 장혜주 사진



* 심영순 요리 연구가의 길을 걸으며


참고로 심영순이 결혼을 한 다음에도 요리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습니다.


심영순: "요리학원에 등록해서 일식과 중식, 서양식 요리도 배우고, 한식도 배웠다. 하지만 겨우 '소시지 구이를 가르치는 정도'로 실망스러운 수준이었지."


심영순: "결국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면 한식을 배우게 되었다. 한번은 전주에 가서 식당 십여곳에서 비빔밥과 한정식을 먹어봤는데, 당시만해도 반찬은 스무 가지가 넘는데, 양념이 전부다 빨갛고 달아서 다 같은 맛이라 크게 실망했지."





그러다가 심영순은 궁중요리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심영순 출신).

당시 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이자 조선왕조궁중음식 2대 기능보유자였던 고 황혜성 선생이 매달 자택에서 발표회를 열었는데, 심영순을 비롯하여 궁중요리에 관심이 있었던 5~6명이 모여서 황혜성의 수업을 들었죠.


참고로 황혜성 선생은 조선왕조 마지막 주방상궁 고 한희순으로부터 궁중 음식 비법을 전수받습니다. 그리고 '귀합총서', '수운잡방'등 조선 시대 음식 책을 연구해서 현대식으로 편찬하고, 위에서 언급한 요리 발표회를 열어서 후학을 양성하는 등, 예전의 음식 문화를 후손들에게 전수하기 위하여 노력을 아끼지 않습니다.


심영순 요리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죠.


심영순 이야기가 2편으로 이어집니다. (2편 새창보기)

심영순 백종원 최현석 평가, 심영순 요리책 주부 자격 논란


(스폰서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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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프로필사진 공수래공수거 적지 않은 나이에 아직도 바른 자세를 유지하고
    목소리도 꼬장꼬장하신게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지금도 운동을 많이 하신다는 이야기를 방송에서
    들었습니다
    2015.07.10 09:19 신고
  • 프로필사진 유라준 예, 나이에 비해 무척 정정하면서 활동적인 점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밤 되세요.
    2015.07.10 21:41 신고
  • 프로필사진 최도석 재수없는 할망구 자격도 안되면서 맛평가는 지 개인입맛
    한식대첩 심사 재수없어 지 입 맛에안맞으면 무조건 탈락
    2017.06.16 21:1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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