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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 연예인

제임스 후퍼 아내(부인)이정민- 제임스후퍼 명언의 뒷이야기

제임스 후퍼 이정민 러브스토리 및 인생 이야기

비정상회담에서 하차한 사람중에서 제임스 후퍼는 좀 아까운 경우입니다.

어린 나이때부터 굉장히 활동적이었는데, 그 이유는 잘 알려지지 않았죠.


또한 제임스 후퍼의 개인적인 생각과 한국 사회 비판이 무척 흥미롭네요.



제임스 후퍼 부인 사진


탐험가 제임스 후퍼(James Hooper)는 1987년 4월 19일 영국 웨일스 카디프에서 태어납니다(제임스 후퍼 고향). 올해 한국 나이로 29살이죠(제임스 후퍼 나이).

(제임스 후퍼 국적) 영국

(제임스 후퍼 학력 학벌) 크라이스츠호스피틀, 경희대학교 이과대학 지리학과 졸업

(제임스 후퍼 프로필 및 경력) 2006년 영국 최연소 에베레스트 등반, 영국 왕립 지리학회 회원


2011년 제주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홍보대사

2008년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올해의 탐험가로 선정


# 목차

* 어린 시절

* 사고 때문에

* 제임스 후퍼 한국행을 선택한 이유

* 제임스 후퍼 하차한 이유

* 제임스 후퍼 아내 이정민(제임스 후퍼 부인)

* 제임스 후퍼 명언과 어록들


제임스 후퍼 아내 사진


* 어린 시절


제임스 후퍼는 기숙학교인 크라이스츠호스피틀에 다니다가 만 11살(이하 나이는 전부 만)때 친구 롭 곤틀렛을 만나게 됩니다.


제임스 후퍼: "16살 때 친구 롭과 사이클링 클럽에 가입했다. 클럽활동은 선생님들이 같이 참여하여 안전이 보장된 곳이었다. 처음에는 영국 내부에서만 하다가 나중에는 유럽대륙으로 확장되었다."


제임스 후퍼: "참가한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무언가를 해낼 때 마다 “잘하고 있다”는 격려를 해주며 학생들에게 동기부여를 도왔고, 그것이 바깥 활동에 대한 동기부여로 이어졌다."


확실히 어릴 때의 교육이 중요한 것 같네요.

제임스 후퍼의 경우는 어릴 때 자신에게 동기부여를 해주는 선생님들을 만났기에, 후에 탐험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제임스와 롭은 16살때 에베레스트에 등반하자고 의기투합이 되었고, 준비를 시작하게 됩니다.

이 준비과정에서 18살때 몽블랑(서유럽 최고봉)에 오르는 성공을 맛보기도 했고, 또 파키스탄에서는 실패를 하기도 합니다.


제임스 후퍼: "에베레스트를 오르기에 앞서 고도적응훈련을 할 장소를 찾아야 했다. 고민 끝에 비교적 저렴한 파키스탄을 가기로 했다. 그러나 파키스탄 산행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폭풍 때문에 3일 정도 산중에 갇혀 있다가 정상에 오르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다."


제임스 후퍼: "파키스탄에 가기 위해 약 700만원 정도를 사용했는데, 당시 우리(제임스 후퍼와 롭 곤틀렛)에게는 큰 돈이었다. 정상에 오르지 못해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제임스와 롭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제임스 후퍼: "파키스탄의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다시 훈련을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가 했던 체험들 그리고 터득한 기술들이 결국 에베레스트를 오를 때 도움이 되었다. 정상은 가지 못했지만, 그 과정에서 소중한 경험을 얻었다."


즉, 실패로부터도 좋은 경험을 이끌어 냈던 것이죠.


이후 제임스 후퍼와 롭 곤틀렛은 19살때 에베레스트 등반에 성공합니다.

생일이 늦은 제임스 후퍼가 영국 최연소 에베레스트 등반가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지만, 둘이 함께 했기 때문에 성공한 '첫번째 도전'이었죠.


* 사고 때문에


그리고 둘은 20살 ~ 21살때 북극에서 남극까지 무동력(사람이나 동물, 자연의 힘만을 이용) 횡단에 나섭니다.


제임스 후퍼: "당시 그린란드를 출발해 아메리카 대륙을 가로지른 후 남극해를 건너는 코스였다. 무동력 여행을 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번째는 다른 사람들이 해보지 않은 것었기 때문이다. 무동력 횡단(자전거와 모터 없는 요트, 스키와 개썰매만 이용하는 방식의 여행)은 흔치 않았다."


제임스 후퍼: "두번째 이유는 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는 탐험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는 우리 여행의 큰 주제였다. 북극에서 살얼음 위를 달리다 롭이 바다에 빠져 죽을 뻔했던 일도 기후변화와 밀접하다."


사실 제임스와 롭은 열정적인 환경운동가는 아닙니다.

제임스 후퍼: "하지만 우리는 이 여행을 통해 사람들이 생각만 하고 정작 실천은 하지 않는 문제들을 환기시키려고 했다. 전기 코드를 쓰지 않을 땐 뽑고, 새로운 발전소를 만들 땐 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인지 한 번 더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새로운 시도로 제임스와 롭은 영국에서도 크게 각광을 받으면서 일약 유명인사가 됩니다.

2008년 내셔널 지오그래픽가 선정한 '올해의 탐험가'로 뽑혔고, 찰스 왕세자를 만나기도 했으며, 유명한 축구 선수 데이비드 베컴과 광고를 찍기도 했죠.


제임스 후퍼: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과 “불가능은 없다(Impossible is nothing)”는 상업광고를 찍기도 했다."



그런데 2009년 (당시 22살)때 큰 사고를 당해 절친 롭을 잃게 됩니다.


제임스 후퍼: "당시 경험이 부족한 친구 두명을 포함해서 몽블랑 등반을 계획했다. 롭조(롭과 경험이 부족한 친구 한명)가 먼저 출발했는데, 나는 기상문제로 등반을 포기했다."


이때 먼저 출발했던 롭과 또 다른 친구는 결국 사망한 상태로 발견하게 됩니다.


이 사고로 한동안 낙담했던 제임스 후퍼는 대학 진학을 결심해서 케임브리지 대학 입학 원서를 내고 입학 허가를 받습니다.

(이때까지 제임스 후퍼는 대학을 가지 않은 상태였음)


그러다가 결국 마음을 바꿔 한국행을 택합니다(2010년).



* 제임스 후퍼 한국행을 선택한 이유


제임스 후퍼: "처음에 친한 영국인 형이 한국에서 3년 살아봤고, 여기서 한국 여자친구 많아서 편했고, 다시 영국에 들어왔어요. 그래서 형과 한국인 부인 때문에 한국을 되게 많이 들어봤고 좀 관심 있게 됐어요. 한국은 재미있겠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제임스 후퍼: "영국에서 대학에 진학한다면 좋은 학생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영국보다 외국에서 공부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사실 영국과 전혀 다른 나라에 가보고 싶기도 했다. 영국 같은 편안한 환경보다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려운 곳에 가고 싶었다."


제임스 후퍼가 한국에 온 이유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를 좋아하는' 그의 탐험가 기질이 발휘된 것 같네요.



제임스 후퍼: "어릴 때 독일어나 프랑스어를 공부했지만 한마디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번에는(한국어를 배울 때는) 달랐다. 말을 배우고자 하는 열의가 있어서 빨리 배울 수 있었다.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중요하다. 경희대에서 공부한 첫 해에는 매일 교내 언어교육원에서 4시간씩 한국어 수업을 받았다."



한국에 와서도 제임스 후퍼의 도전 정신은 그치지 않습니다.

2011년 10월에는 제주도에서 서울에 이르는 570km 가량의 코스를 100시간안에 무동력으로 완주하는 도전을 했고, 결국 성공하게 됩니다.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은 얘기인데) 본인이 사용했던 요트를 제주관광대학에 학생들 실습용으로 기증합니다.


또한 2012년에는 경희대 총학생회 회장 선거에 부총학생회장 후보로 출마하기도 합니다.


제임스 쿠퍼: "한국 교육시스템 보면 한국 학생들이 선생님 너무 잘 듣는 것 같고 잘 질문 안 하는 것 같아요. 그런 듣기만 하는 문화 바꾸고 싶어서 출마를 했어요."


제임스 쿠퍼: "한국의 학교 문화가 그냥 교육공장 같은 거 말고 좀더 학생을 위한 교육으로 바꾸고 싶었고, 또 제가 친구 보면 학교 다닐 때 그냥 취직 준비하는 느낌 많이 느껴요."


* 제임스 후퍼 하차한 이유


이후 2014년에는 비정상회담에도 출연하지만, 4회를 끝으로 호주 유학을 이유로 방송에서 하차하게 됩니다.


제임스 후퍼: "제가 지금 아마 석사, 박사 그런 거 하면 영어로 하면 좀 편한 것 같고, 그런데 그거 끝난 후에 다시 한국으로 올 수도 있어요. 그런 생각 있어요."


아마 학사가 아닌 석박사과정은 언어의 장벽을 쉽게 넘을 수가 없었던 것 같네요.

결국 제임스는 박사 공부를 위하여 호주로 떠나게 됩니다(제임스 후퍼 근황).

그런데 위에서 한 발언처럼 공부가 끝난 다음에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수도 있겠네요.


제임스 후퍼 하차 다시 마지막 말: "각국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아주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중요한 것은 각자의 나라에 편견과 오해를 갖지 않는 것이다. 여러 나라의 이슈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서로의 차이를 존중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그럼 국경이란 벽을 허물고 다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제임스 후퍼 아내 이정민(제임스 후퍼 부인)


제임스 후퍼는 한국에서 결혼하게 됩니다.

제임스 후퍼 여자친구 이름은 이정민이고, 원래 학생이었다가 나중에 영어강사가 되기도 했죠.

(제임스 후퍼 아내 직업)


제임스 후퍼 부인 사진(제임스 후퍼 와이프 배우자 이정민)


제임스 후퍼 프러포즈 - 결혼 전 여자친구 생일에 맞춰 필리핀으로 여행을 떠났고, 그동안 함께 찍은 사진이 담긴 특별한 퍼즐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그 퍼즐 안에는 '나랑 결혼해 줄래?'라는 로맨틱한 프러포즈를 숨겨 두었죠.


보통 문화 차이가 갈등의 요소가 되기도 하는데, 제임스 후퍼는 이혼하지 말고 아내와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네요.



후에 제임스 후퍼는 비정상회담에 출연할 당시 결혼반지를 빼고 정소라의 이상형 1위에 오릅니다. 이런 행동이나 "여자 선생님한테 배워서 한국말을 할 때 여성스럽다. 그런데 영어로 하면 좀 더 야하다.", 눈썹 위아래로 움직이기 등을 보면, 기본적으로 예능감이 있는 것 같네요.



* 제임스 후퍼 명언과 어록들


제임스 후퍼는 한국 사회가 새겨들어야 하는 몇가지 날카로운 말들을 합니다.


제임스 후퍼: "(내가 한국으로 온 이유는) 예전에 한국에 왔었던 친구가 한국은 살기 좋고 기회도 많은 곳이라고 말해줘서 한국에 가기로 결심했다."


확실히 한국 사회는 다양성이 부족한 사회입니다.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대기업과 공무원 준비에 매달리기에, 사회 곳곳이 비어있죠(결국 다른 분야에 도전하는 사람들에게는 기회가 많은 사회임).


제임스 후퍼도 뒤늦게 대학을 가기 전까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도전적인 인생'을 즐겼습니다.


어느새 한국 사회가 한국인에게는 '기회가 닫힌 나라'로, 외국인에게는 '기회가 많은 나라'가 된 것 같아서 많이 씁쓸하네요.


(이절 글 참조)

2015/02/14 - 타일러 라쉬 여친 게이 루머- 타일러라쉬 나이와 어록들


또한 제임스 후퍼는 '꿈을 쫓는 한국의 청년들'에게도 중요한 말을 합니다.


제임스 후퍼: "세가지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단계별로 차근차근 노력하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내일 당장 에베레스트를 오르겠다고 다짐하면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실내등반과 같은 작은 실천을 통해 조금씩 스스로 오르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고 나면 어느새 여러분의 꿈이 이루어진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첫번째 교훈)


제임스 후퍼: "두 번째는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위험은 언제나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위험이 곧 배움의 기회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 배움으로 우리는 위험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두번째 교훈)


제임스 후퍼: "마지막으로 여러분이 원하는 꿈을 사람들에게 말해야합니다. 그 누구도 혼자 힘으로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러분의 꿈을 알수록 더 많은 이들이 여러분을 도울 수 있겠죠. 제가 죽을 때 되돌아보면서, '이걸 안 했어, 그걸 안 했어' 하고 생각하기 싫어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세요."(세번째 교훈)



위의 간략화된 교훈말고 제임스 후퍼의 생각이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난 명언이 아래에 있습니다.





확실히 제임스 후퍼의 생각이 그대로 녹아있고, 오늘날 청년들에게 무척 귀감이 되는 말 같습니다.



그런데 다 좋은 말들인데, 가장 중요한 것 2가지가 빠졌네요.

위의 명언들은 전부 제임스 후퍼의 '경험'에서 나왔다는 사실입니다.


즉, 여러 경험을 하는 '도전 정신'과 그때의 성공은 물론 실패에서도 배울 수 있는 '지혜'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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