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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운서 결혼 생활

김은혜 앵커 남편 유형동 변호사 직업과 첫만남

김은혜 앵커 남편과의 첫만남, 그리고 김은혜 재산 내역과 과거 KT 낙하산 사건의 뒷이야기들이 궁금하네요.

그리고 김은혜 아나운서의 좌우명인 '약자에게 약하고 강자에 강한 무관의 여왕'이라는 말이 진실인지 거짓말인지를 짚어봅니다.


(이전 글)   유애리 아나운서 남편 나이와 kbs 파업 불참 아나운서 이유


MBC 앵커 김은혜는 1971년 1월 6일 서울에서 태어납니다. (김은혜 앵커 고향 서울)

올해 47살이죠. (김은혜 앵커 나이)


(김은혜 앵커 학력 학교) 정신여자고등학교 졸업

이화여자대학교 신문방송학과 학사

연세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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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 유라준)

(김은혜 프로필 경력) 1993년 MBC 기자로 입사

이후 MBC 보도국 뉴스편집2부 차장 역임

2008년 2월 이명박 정권 대통령실 제1부대변인

2009년 이명박 대통령실 제2 대변인

2010년 12월 KT 콘텐츠전략실 전무로 입사

2014년 3월 동국대학교 행정학과 견임교수

2015년 7월 MBN 특임이사 겸 '뉴스 & 이슈' 진행 중


그 외에 김은혜 앵커는 2000년 2001년, '여대생들이 닮고 싶은 여성'에 선정되기도 합니다.

(참고로 김은혜는 아나운서 출신이 아니라 기자 출신으로 앵커가 되었음)


원래 김은혜는 기자가 되기 전에 8년 동안 플루티스트를 꿈꾸던 음악학도였습니다. 초등학교때부터 고등학교 2학년때까지 플루트를 배웠는데, 원래 선화예중과 선화예고를 다닐 정도로 투자를 많이 했었죠.


하지만 선화예고 2학년때 김은혜의 풀루트 교사가 음대 입시 비리때문에 구속이 되면서, 김은혜는 전격적으로 진로를 바꾸게 됩니다.



김은혜: "원래는 플룻을 연주하는 것이 꿈이었어요. 플룻을 하면서 제가 믿고 따르던 선생님이 계셨는데, 어느 날 그 선생님의 ‘비리’를 목격하고 말았어요."


김은혜: "(그 입시 선생이 구속된 다음에) 연주의 꿈을 접고 진실을 파헤치는 기자가 되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래서 뒤늦게 꿈을 ‘기자’로 정하고 정말 열심히 노력했죠."


참골 김은혜의 고등학교는 정신여고로 나오는데, 아마 이때 고등학교까지 전학을 간 것 같네요.


이후 김은혜는 이화여대에 입학해서 졸업하고, MBC 공채 기자로 입사하게 됩니다.

그런데 기자 초년 시절부터 지존파 최초 보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특종 등을 터뜨리는 등, 발군의 활약을 펼칩니다.


김은혜: "지존파 사건을 알게 된 것은 그해 (1993년) 추석 연휴 전날이었어요. 원래 경찰서 형사과장은 나를 보면 보통 물을 주는데, 그날 따라 자양강장제를 주면서, "이것 마시고 집에 가서 쉬어라"라고 했어요."


김은혜: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경찰서 내부를 어슬렁 돌아다니다가 강력반 사무실이 수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몰래 엿들이니, 잠겨진 사무실 창문 사이로 "인육", "살인", "부자", "카드" 등의 말이 들렸어요."


이 일로 김은혜는 지존파 사건을 제일 먼저 보도하는 특종을 터뜨리게 됩니다.

그리고 1995년 삼풍백화점 사고때는, 김은혜가 소방대원복을 입고 사고 현장에 뛰어들어 갔다고 삼풍백화점 설계도면을 가지고 나왔는데, 이 도면 덕분에 삼풍백화점 사건이 부실공사였다는 것이 최초로 보도가 되었죠.


사실 삼풍백화점 당시 경찰과 군인들은 보도진의 접근을 철저하게 막기 위하여 갖은 애를 씁니다.

그런 와중에 당시 앳된 얼굴의 김은혜 앵커 (당시 25살)가 군경 경비 라인을 뚫기 위하여 몸을 던졌고, 당시 라인을 형성하던 군경은 김은혜의 팔목을 잡아서 비틀게 됩니다.


이 때 김은혜는 "어딜 만져!"라고 호통을 쳤고, 젊은 군경은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했었죠.


그런데 이런 김은혜의 행동이 기자 정신에서 나왔을까요? 아니면 출세를 하기 위한 절박함에서 나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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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시절 김은혜의 좌우명은 '약한 자에게 약하고 강한 자에게 강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김은혜: "기자로서 '약한 자에게 약하고 강한 자에게 강하자'는 초심을 갖고 있었다. 이것은 정치부와 경제부를 거치며 놓치지 않은 초심이다."


여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 당시부터 여성 차별적이었던 기자직에 오래 남기 위하여 '약자에게 약하고 강자에 강한 무관의 여왕'을 원하고 있다는 말을, 선후배 동료들에게 누누이 말을 했었죠.

(무관의 여왕이란 뜻은, 기자로써 높은 직위를 갖지 않겠다는 말임. 당시까지만 해도 한국의 '여성 보도국장은 30년 뒤에나 가능할 것이다'라는 평이 공공연히 돌아다닐 정도로 여성들이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이 형성되었음)


그런데 김은혜가 그 벽에 가장 가깝게 다가선 최초의 여기자였습니다. 김은혜는 '한국 최초의 여기자 출신 앵커', '방송사 최초 정당 출입 기자', '방송사 최초 심야 뉴스 단독 진행' 등의 '최초 타이틀'들을 따냈고, 마침내 MBC 보도국 뉴스편집 2부 차장자리까지 승진하게 됩니다.


하지만 돌연 김은혜는 MBC를 퇴직하고 이명박 정권에서 부대변인 (후에 대변인으로 승진)으로 발탁이 됩니다.

과연 김은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지난 2001년 김은혜의 유학 시절입니다.

원래 뉴스 앵커를 하던 김은혜는 2001년 미국 스탠포드 대학 APARC(Asia Pacific Research Center)에서 연수를 받게 됩니다.


김은혜: "당시 포럼이나 세미나 등에 참가해 만난 인물들에 대해 500페이지 노트 2권 분량의 기록을 했어요. 원래 한국에서는 만나기 쉽지 않은 사람이었지만 미국에서 만나기는 좀 더 쉬웠죠."


김은혜: "한국으로 귀국한 뒤에 윤종용 삼성 부회장, 구본무 LG 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등과 서면 인터뷰도 하면서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그들만의 공통된 성공 비결을 발견했어요."


김은혜: "이분들은 모두 아날로그 마인드의 소유자였고, (중략)"


아마 이때쯤부터 김은혜는 성공에 대한 갈망을 키웠던 것 같네요.

그리고 2006년 3월에 김은혜는 결혼을 하게 됩니다.


김은혜 앵커 남편 유형동 직업은 변호사입니다.

나이는 김은혜와 동갑이죠.


둘은 지인의 소개로 처음 만났다고 하는데, 아래의 대화를 보면, 아마 중매로 만난 것이 아니었을까 하네요.


김은혜: "서로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고, 남편이 말수도 적어요. 그래서 제가 ‘제 어디가 좋아서 결혼하셨어요?’ 라고 물으면, 남편은 ‘그걸 꼭 얘기해야 하나요’ 하며 말을 돌릴 정도로 쑥스러움도 많죠."


김은혜: "전 아직도 남편이 왜 저랑 결혼했는지 모른다니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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