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1/3) 총 3개의 글중 첫번째 글


코미디언 김형곤 최지우 루머가 어떻게 발생했는지,

그리고 김형곤이 과거 어떤 정치 풍자를 했는지 살펴봅니다.


(김형곤 최지우)

최지우에 대한 포스팅 (새창보기)

최지우 결혼 안하는 이유/최지우 외모 논란


(스폰서 링크)


# 목차

* 김형곤 정치 풍자의 대가로

* 김형곤 전두환 노태우 풍자하면서

* 김형곤의 풍자 철학

* 김형곤의 이중적인 모습

* 김형곤 최지우 루머 이유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개그맨 김형곤(본명)은 1960년 5월 30일 경상북도 영천에서 태어나 2006년 3월 11일 사망합니다(김형곤 고향 경북 영천). 사망 당시 나이가 47살이었죠(개그맨 김형곤 나이).

(김형곤 종교) 불교

(김형곤 학력 학벌) 서울 중경고등학교 졸업, 동국대학교 국어교육학과 학사

(김형곤 프로필 및 경력) 1980년 TBC 개그콘테스트 은상으로 데뷔


이후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유머일번지 진중일기, 봉숭아학당, 김형곤쇼 등에 출연하여 개그맨으로 인기를 끌게 됩니다.


또한 뮤지컬 대왕은 죽기를 거부했다, 왕과 나, 병사와 수녀 등과 영화 여자는 괴로워, 외계 우뢰용, 이맹구의 봉숭아 학당 등에도 출연합니다.



특히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탱자 가라사대' 등은 우리 사회에서 드물었던 시사풍자로, 정치 풍자의 일인자라는 평가를 받게 됩니다.


개그맨 김형곤 사진


* 김형곤 정치 풍자의 대가로


1980년대 김형곤이 처음 주목을 받았던 것은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이었습니다. 여기서 군부 독재 정권을 겁없이 풍자하면서 사람들의 환호를 받았죠.


김형곤: "(정치풍자를 하면서) 외부 압력은 셀 수도 없이 많았어요. 애초에 준비한 내용의 반 정도 (시청자들이) 보신 걸로 생각하면 됩니다. 과거 박종철 군 사건때,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부터 시작해서, 은폐 조작, 자동차 회사 비리 등은 다 (방송에서) 잘렸어요."


김형곤: "정치인을 단순히 흉내내는 건 정치 풍자가 아닙니다. 풍자의 중요 요소, 즉 공격 대상이 빠져 있거든요. 심층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는 하나도 안 건드리거든요. 너무 직설적인 것도 안돼요. 우회적인 방법으로 상징도 쓰고 적당히 압축도 해야죠.


서슬퍼런 군부 독재하에서 2,30대였던 김형곤이 이런 풍자를 했던 것이 무척 놀라운 것 같습니다.

결국 김형곤은 안기부에 끌려가서 얼차려(?)를 받기도 하지만, 자신의 뜻을 꺽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더 김형곤의 코미디에 열광을 하게 되었죠.



* 김형곤 전두환 노태우 풍자하면서



김형곤: "저는 스물셋에 데뷔해서 7년 만에 코미디 대상을 받았어요. 제가 한창 잘나갔던 20~30대에는 안 되는 게 없었죠."


전두환 정권이 물러나고 노태우 정권이 들어선 다음에도, 김형곤의 태도는 바뀌지 않습니다.


김형곤: "이제 더 이상 전씨 부부(전두환 이순자 부부)를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효과도 없고, 흥미를 주지도 못합니다. 이미 그 양반들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알 만큼은 알고 있고, 또 풍자도 많이 했잖아요?"


김형곤: "너무 그러다간 자칫 동정심을 유발할 수도 있어요."



그리고 김형곤은 새로 정권을 잡은 노태우 정부를 향해 풍자를 합니다.

(1987년 당시 방송으로는 나올 수가 없었고, 뮤지컬 '대왕은 죽기를 거부했다'로 공연함)


김형곤: "여기서의 대왕이 반드시 노(태두) 대통령을 상징하는 건 아닙니다. 여권의 일부 집단이죠."


김형곤: "본격적인 정치 코미디라면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보고 정곡을 찔러야지요. 그래서 이번 (뮤지컬) 공연에서 여권 내부의 수구세력, 이른바 '군부 강경파'에 풍자의 촛점을 맞추었습니다."


이런 인터뷰를 김형곤은 1988년에 공개적으로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군부가 더 이상 쿠데타를 자행하지 못하는 것은,

이런 김형곤을 비롯한 일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네요.



* 김형곤의 풍자 철학


또한, 김형곤은 정치 풍자만 하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모든 사회 부조리를 풍자했는데, 다만 정권으로부터 핍박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정치 풍자'의 이미지가 많이 남은 것이죠.


김형곤: "카드 때문에 남북의 어린이들이 죽어나고 있어요. 남한에서는 부모가 카드 빚을 지면 꼭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죽잖아요. 그런데 이북에서는 고사리손을 한 어린아이들이 카드 섹션에 동원돼서 죽어나더라구요. 요즘 가뜩이나 우리나라가 인구 감소 때문에 시끄러운데, 카드 사용이 많은 크리스마스 계절이 다가와서 걱정이에요."


김형곤: "이제 5공 비리 규명이 마무리되면, 모든 이슈가 '통일'로 모아져 합니다. 그래서 저는 다음 공연을 통일을 주제로 한 정치 코미디로 계획하고 있어요. 이제는 분단의 아픔을 넘어서 통일에 대한 국민적 염원을 '통한의 웃음'으로 승화시킨 어떤 것, 그것을 하고 싶습니다."


확실히 김형곤은 남다른 이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네요.



참고로 김형곤이 방송에서 노태우 대통령의 방귀를 소재로 풍자를 하다가 안기부에 끌려갔던 일화입니다.


안기부: "각하께서 방귀뀌는 걸 네가 봤냐?"


김형곤: "아니, 내가 (노태우) 대통령이 방귀 뀌는 걸 꼭 봐야만 개그를 할 수 있단 말이야? 그리고 이게 어디 대한민국 안기부가 나설 일인가?"


방귀 때문에 고문을 당했던 김형곤을 비롯한 동시대 코미디언들이 좀 불쌍하네요.



* 김형곤의 이중적인 모습


그외에 김형곤은 트랜스젠더와 게이들을 지원하는 등, 일찍부터 성소수자들의 권익 보호에 앞서기도 합니다.


김형곤: "나는 게이가 아니지만, 성소수자로서 음지에 숨어사는 그런 사람들을 돕고싶다."


참고로 김형곤과 부인이 운영하는 술집이 변태영업으로 영장을 받기도 했는데,

이때 정권이 '눈엣 가시'였던 김형곤을 겁박한 수단이 바로 (트랜스젠더 게이 등에 의한) '퇴폐 영업'이었죠.



사실 김형곤은 80년대 후배 개그맨들에게 '똥군기'를 강요하면서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김형곤 폭행 물의).


성소수자를 지원하는 모습과 군기를 위하여 후배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모습이라... 


확실히 사람은 이래서 이질적이고 복합적인 존재가 아닌가 합니다.



* 김형곤 최지우 루머 이유


아무튼 정치 풍자때문에 김형곤은 90년대 중반에는 방송에 잘 출연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1996년에는 대학로에서 뮤지컬 '병사와 수녀'에 출연하게 되었죠.


그런데 이 작품에 당시 무명이었던 최지우가 김형곤의 상대역으로 출연하게 됩니다.


최지우: "1994년 MBC 공채 23기로 합격한 다음에, 무조건 회사 비서나 행인1이 고정이었어요. 그래서 그때 백번도 넘게 했던 것이 '차 드세요' 딱 한 마디였죠. 그리고 뒤에 앉아 있고..."


결국 2년 동안 무명배우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최지우는 1996년 뮤지컬 '병사와 수녀'에 출연하게 됩니다. 바로 김형곤의 상대역이었는데, 이때 극중에서 키스도 엄청하게 됩니다.


(참고로 김형곤과 키스한 최지우 입술에 멍이 든 것을 관객이 목격하기도 할 정도로, 격렬한 키스였고, 이 덕분에 '김형곤 최지우 루머'가 퍼지기도 했음)



또한, 최지우는 연극이 끝나면 입구에 서서 집으로 돌아가는 관객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하기도 했죠.

이런 경험이 후일 최지우의 성공에 큰 뒷받침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김형곤에 대한 이야기가 2편으로 이어집니다. (2편 새창보기, 2/3)

김형곤 아들,김형곤 부인 정유진 이혼사유와 후회


(스폰서 링크)
. .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