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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 남자 스타들의 이야기

조승연 세계문화전문가, 조승연 문화전략가의 성공이유

조승연 세계문화전문가(조승연 직업)

조승연이 베스트셀러 작가와 강연으로 유명한데, 조승연의 어린 시절은 어떻고, 또 성공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현재 '조승연 문화전략가'로 불리고 있는데, 이것은 어린 시절부터 만들었던 그의 목표 덕분이 아닌가 합니다.



(스폰서 링크)


조승연 작가는 1981년 10월 27일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납니다(조승연 생년월일)(조승연 작가 고향 원주). 올해 35살이죠(조승연 세계문화전문가 나이).

(조승연 학력 학벌) 뉴욕대학교 경영학과 졸업(스턴 비즈니스 스쿨), 줄리어드 음대 이브닝스쿨(야간대)에서 동시에 공부, 루브르대학교 미술사학, 박물학 중퇴

(조승연 프로필 및 경력) 1996년 '보너스점수와 댄스파티'란 책을 출판하는 것을 시작으로 약 23종의 책을 집필한 베스트셀러 작가입니다.


특히, 공부기술, 생각기술, 나는 맹수의 눈을 갖게 되었다, 르네상스 미술이야기, 비즈니스의 탄생 등이 유명합니다.




조승연 문화전략가는 우리 사회에서 대단히 뛰어난 인재로 유명합니다.

정확하게는 이전까지는 없었던 인재의 유형이죠.


사실 겉으로 보기에는 조승연의 성과는 그리 대단하지 않습니다.

미국 명문대학을 졸업하지도 않았고, 졸업 후에는 월스트리트나 유명 기업에서 근무하지도 않았기 때문이죠.

(뉴욕대 역시 좋은 대학이지만,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아이비리그만을 명문으로 치는 경향이 있음)


그럼에도 조승연은 영어와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아랍어, 고대 그리스어, 라틴어 등 7가지 언어에 능통합니다.



그리고 조승연의 형인 조창연(이름)은 미시간대학교 건축학과 및 동 대학원을 수석으로 졸업한 다음에, 뉴욕의 파킨스 이스트만 건축회사에 일하고 있습니다.

상하이, 인도, 뉴욕 등 세계 주요 도시의 건축 디자인을 맡고 있죠(조승연 가족 관계, 2남중에 막내).



조승연 형제는 어떻게 해서 이런 인재로 성장하게 된 걸까요?

첫번째, 조승연 어머니인 이정숙 전 KBS 아나운서의 교육법을 주목할 필요가 있고,

두번째, 조승연 본인의 공부법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조승연 작가 사진



먼저 조승연 어머니 이정숙 아나운서의 자녀교육법입니다(조승연 어머니 전 아나운서 이정숙).


일명 아이를 벼랑끝으로 모는 '사자교육법'입니다.

대개 우리 사회의 주류답게 '극성 엄마'로 오해하기 쉬운데, 이정숙 아나운서는 정반대의 교육법을 취했습니다.


그녀는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요?


이정숙: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전 어머니에 대한 롤모델이 없었죠. (결혼 후에는) 아버지의 교육 방법을 보고 많이 배웠어요. 아버지는 중학교때 일본으로 건너가서 갖은 고생끝에 자수성가한 분이시거든요."


이정숙: "그런 아버지의 교육 철학이 '사자는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살아남은 새끼만을 키운다.'는 것이었어요. 우리 형제 자매들을 혹독하게 가르치셨죠. 그런데 (나중에 내가 성장하고 보니까) 아버지는 두 딸을 아나운서와 대학교수로, 두 아들은 변호사로 키워내셨어요. 이게 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 저 역시 아버지의 교육법을 그대로 따랐죠."


이정숙이 이런 선택을 한 것에 대하여 이해가 가네요.


조승연 어머니 이정숙 전 KBS 아나운서 사진


확실히 조승연의 어린 시절 증언을 들어보면, 어머니 이정숙 아나운서의 교육법은 확고했습니다.


조승연: "아무래도 어머니가 KBS 아나운서였기에, 일이 우선이고 아이는 뒷전이었다. 그래서 (우리 형제는) 막 컸다(농담)."


조승연: "그런데 집에 규칙이 있었다. 아무리 어린아이라도 규칙을 안 지키면, 어머니는 봐주지 않았다. 만약에 편식을 해서 (음식을) 안 먹겠다고 하면 어머니는 (우리와) 싸우는 대신에 "그래, 먹지 마. 그런데 엄마 속상하니까 다음 끼도 먹지 마"라고 자상하게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어린아이는 두 끼를 굶고 나면 그 뒤에는 편식을 절대 안 한다. 무엇이든 골고루 잘 먹게 된다."



이정숙: "그냥 내버려두면 아이들은 알아서 해요.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숙제를 안 하고 놀기만 하기에 그냥 내버려뒀어요. 나중에 학교에서 선생님께 몇 번 혼나보면 정신을 차리거든요."


이정숙: "아들들이 남자 형제다 보니 처음에는 둘이서 무척 많이 싸웠어요. 하지만 그것도 내버려뒀어요. 그건 두 사람간의 문제니까 둘이서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니까요. 사실 아이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엄마가 해결해주면, 아이들은 점점 무능력해져요."



확실히 이정숙의 교육법은 '사자 교육법'이 맞네요.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을 이렇게 '내팽겨 두면' 알아서 스스로 잘 클까요?


그건 절대 아니죠.


이정숙 아나운서 과거 사진


(사자 교육법에 대하여 언급하기 전에, 조승연 집안 환경에 대한 간략한 언급

참고로 조승연은 아버지(이정숙 아나운서 남편)에 대하여 거의 언급하지 않습니다.


조승연: "저에게 남자로서 역할모델이 두 분이었다고 할 수 있어요. 아버지는 막걸리 한잔 놓고 농사짓는 분과 격의 없이 이야기하시는 분이었어요."


조승연: "그리고 어머니는 차가운 프로페셔널의 세계에서 커리어를 관리하는 방법과 세련된 남자의 기준을 보여주셨죠."


조승연 친아버지의 직업은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소탈한 성격은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네요.)


(참고로 현재 조승연은 결혼하지 않은 미혼임. 따라서 조승연 아내(부인) 등은 루머임)


(조승연 군대는 이미 제대함. 27살 때 군복무를 마침)


조승연 사진


이정숙: "흔히 '사자교육법'이라고 하죠. 솔직히 이 교육법을 따르다 보면 아이가 도태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인간은 사자와 달라서 아이가 도태되는 것은 어느 정도 성장이 이뤄진 다음이거든요."


이정숙: "그렇다는 말은, 그 성장 과정에서 부모가 잘못 키웠다는 뜻도 돼요. 사실 기본이 제대로 된 아이들은 게임에 빠지거나 질 나쁜 아이들과 어울려도 결국은 본인의 자리로 돌아오게 돼 있거든요."



이정숙의 말에 굉장히 중요한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아들 조승연 역시 같은 말을 합니다.


조승연: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공교육에 문제가 있다고들 해요. 그렇다면 유럽이나 미국의 공교육은 제대로 됐을까요? 사실 우리는 서양의 시스템을 빌려왔고, 서로의 효율성 면에서도 비슷해요. 그래서 미국으로 유학 간 우리 학생들도 결국에는 암기를 하게 되는 거죠."


조승연: "사실 학교에서는 어느 나라나 체계 없이 중구난방으로 가르쳐요. 그리고 서양의 학교 시스템이 그렇게 된 데에는 이미 아이들이 가정에서 사리 분별력과 논리력, 안목을 다 배워왔다고 가정하기 때문이죠."


조승연: "보통의 유대인 가정이나 유럽의 가정에서는 아이들에게 동화책만 읽어주고 끝내는 것이 아니에요. (아이일 때부터) 인간에 대한 예의를 확실히 가르치고, 사상에 대한 논쟁을 일상에서 하죠. 게다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감수성도 키우고요. (가정에서의) 그런 기초 공사 없이 단순히 지식만 암기하려고 하니 될 수가 없죠."


이렇게 조승연은 '가정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조승연: "가장 무서운 것은 아이들이 부모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아니라 부모가 한 대로 따라 한다는 거에요. 요즘 청소년들은 집에서 엄마가 잔소리를 하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자기는 왜 그렇게 안하면서 나한테 그러지'에요. 아이에게 부모의 행동을 보고 배운 것과 하라는 것 사리에 괴리감이 드는 거죠."


즉, 사자교육법이라고 하더라도, 부모가 자식을 방임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에게 먼저 모범을 보이면서, 필요한 '전인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교육이 된 아이들은, '방임'을 하더라도, 스스로 '옳은 길'을 찾을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는 것이죠.


이정숙: "큰아들이 중학교 3학년, 둘째 아들(조승연)이 중학교 1학년일 때 미국 유학길에 올랐어요. 두 아이들이 영어를 못하니, 변한 환경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던 모양이에요. 결국 처음에는 목에 쇠사슬을 검고 거리를 어슬렁거리는 문제아들과 어울렸어요. 그래도 그냥 놔뒀어요."


이정숙: "그런데 어느 날 보니까 두 아들이 그 아이들을 일렬로 세워놓고 태권도를 가르치는 거예요. 그러면서 "한국의 태권도는 때리는 무술이 아니라, 정신의 도(道)이다."라고 그 아이들의 몸에서 쇠사슬을 풀게 했어요. 학교 교장선생님이 놀랄 정도였죠."



조승연: "처음에는 (문제아들과 어울리는 게)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두어 달 어울리다 보니 '이게 아닌데...' 싶더라구요. 결국 서너 달만에 꺼림칙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어요. 어렸을 때 (가정 교육으로) 형성된 사리 분별력 때문에 잘못된 행동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거고, 마침내 제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깨닫게 된 거죠."


즉, 아이들을 '방임'하는 것도, 적절한 가정 교육을 한 다음에 방임을 하는 것이지, 무작정 방임을 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가정 교육이란, 대부분의 한국 학부모들이 하고 있는 것처럼 '공부 강요, 입시 학원 다니게 하기'는 더더욱 아니죠.)



조승연: "사실 전 학교다닐 때 '찐따'였어요. 한국의 중학교 다닐때부터 그랬는데, 미국에 가서는 더 힘들었어요. 안 그래도 학교 생활에 적응을 못했는데, (언어가 다른) 미국에서 갑자기 잘 할리가 없잖아요. 결국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힘들었어요."


이정숙: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와서 울고불며 "자살하고 싶다"고 했어요. 그런 아이에게 인생은 길고, 현재의 문제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어요. 결국 아들이 "그래, 2년만 더 참아보자."라는 생각이 들도록 만들었죠."


(참고로 조승연의 자살 극복은 어머니 이정숙의 충고외에 다른 요인도 작용합니다. 밑에서 추가 설명)



이런 가정 교육의 바탕위에 이정숙은 아이들의 적성에 맞는 교육을 시킵니다.


이정숙: "큰아이는 책 읽기를 굉장히 싫어했어요. 그런 아이에게 책을 읽으라고 하지 않았어요. 너무 싫어해서 제가 책 내용을 요약해 들려줄 정도였지요. 하지만 어릴 때부터 디자인에는 소질이 있어서 그 분야에서만큼은 최고가 되고 싶어 했어요."


이정숙: "그런 큰아이에게는 레고를 사줬어요. 단순한 레고 조립이 끝나자 더 복잡한 레고와 우주선 단면도, 비행기 조직도 등을 사줬고요."


이정숙: "둘째 아이는 어려서부터 글쓰기를 좋아했어요. 그래서 매일 일기를 쓰도록 했고, 잘 쓰면 상을 주기도 했어요."


결국 이정숙의 큰 아들은 세계적인 건축 회사에 들어가서 일하고 있고, 둘째 아들은 작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네요.


조승연에 대한 이야기가 2편으로 이어집니다. (2편 새창보기)

조승연 프로필과 자살 극복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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