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남자배우(40대)결혼생활

류승룡 부인(아내)권모와 결혼 배경, 류승룡 과거 난타 하차 이유

영화배우 류승룡이 부인(아내) 덕분에 성공했다는 점은 무척 흥미롭습니다.

사실 류승룡 부인 역시 TV에 출연하던 사람이란 점은 잘 알려지지 않았죠.


또한, 류승룡이 과거 난타에서 하차했던 이유가, 류승룡의 성격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 같네요.


(류승룡이 구원파 연예인이라는 증거 (새창보기))


(스폰서 링크)


# 목차

* 류승룡 어린 시절

* 류승룡 대학 시절

* 류승룡 난타 하차 이유

* 류승룡 부인 권모의 도움으로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탤런트 겸 영화배우 류승룡(본명)은 1970년 11월 29일 충청남도 서천군에서 태어납니다(류승룡 고향 서천). 올해 46살이죠(류승룡 나이).

(류승룡 키 몸무게) 175cm, 72kg

(류승룡 종교) 기독교(개신교) 

(류승룡 학력 학벌) 희망대초등학교, 창곡중학교 졸업, 서울예술대학 연극과

(류승룡 프로필 및 경력) 1986년부터 연극배우와 뮤지컬 배우로 활동


2004년 장진 감독의 영화 '아는 여자'로 스크린에 데뷔


이후 영화 박수칠때 떠나라, 황진이,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평양성, 고지전, 최종병기 활, 내 아내의 모든 것, 광해 왕이 된 남자, 7번 방의 선물, 명량, 7년의 밤 등과 드라마 별순검 시즌 1, 바람의 화원, 아이리스, 개인의 취향 등에 출연합니다.



* 류승룡 어린 시절


원래 류승룡의 어릴 때부터 연기자를 꿈꾸며 성장합니다.


류승룡: "중학교 3학년 때부터 학교를 계속 가느냐 마느냐, 아니면 중장비 자격증을 따서 생계를 잇느냐 등의 진로 문제로 심각하게 고민을 했어요. 집안 형편이 어려웠으니까요."


류승룡: "그러다가 고등학교에서 연극으로 (마음의 상처와 불안을) 치료받았어요. 지금으로 치면 미술이나 음악, 놀이 치료같은 것들이죠."


배우 류승룡 사진


류승룡: "십대때의 저는 열등감 덩어리였어요. 어려운 집안 사정때문에 항상 어두운 얼굴로 다녔죠. 그런데 학교에 연극반이 생기고, 연극을 하게 되면서 정말 재미있고 몰두할 수 있는 것을 찾게 되었어요."


류승룡: "연극을 하다보니 대학에 가고 싶어졌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어요. 또 연극을 하는 동안 행복했고, 제가 왜 살아야 하는지 이유도 알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저는 어떤 배우가 되려고 한 게 아니라 연기가 좋아서 그냥 배우가 된 거죠."


아무리 환경이 어렵더라도,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은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고난과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니까요.


류승룡처럼 수많은 탤런트들과 연기자들이 연기에 대한 열정과 재미로 인생의 고난을 극복한 것처럼, 다른 많은 사람들도 저마다의 삶의 의미를 찾는다면 훨씬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네요.


류승룡 졸업사진(고등학교)


* 류승룡 대학 시절


류승룡: "내가 한양대를 떨어지고 서울예전(현재의 서울예대)을 갔다. 서울예전이 2년제다. 그래서 '내가 한양대에 붙었다고 생각하고 2년 동안 더 열심히 배우자'라고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학교에 입학 후 발레 한국무용 아크로바틱 등 다양한 것들을 배웠고, 일주일에 반드시 공연 2개씩을 봤다. 과거의 그 시간들이 나에게 굉장히 유용했던 것 같다." 


스무살의 류승룡은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지만 결코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더 알찬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네요.


류승룡: "당시에 우리 학교(서울예전)에 (특이한) 학생들 구경하려고 놀러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 학교에 특이한 사람들이 정말 많았는데, (젊은 학생들이) 가슴속의 불은 뜨거운데 그걸 풀 곳은 없고, 세상은 또 알아주지 않고.(웃음) 그런 답답함이 객기로 펼쳐졌던 거다. 괜히 머리 기르고, 몸에 한복 두루마기 걸치고 다니고..."



류승룡: "당시에 돈이 없어서 새우깡 한봉지로 술을 마셨다. 한번은 네 명이서 번데기 하나를 시켜서 술을 마셨다. 술 한잔 마시고 면도칼로 번데기를 주름의 결대로 잘라 먹었다. 번데기 하나를 통째로 먹으면 서로를 혼내는거다. 그리고는 서로 재미있다고 막 웃고..."


20대의 가난한 대학생들의 낭만과 추억이 깃들어 있는 경험담이네요.


류승룡: "군대에 있을 때도 군가 제창을 발성 연습이라고 생각하고 복식호흡으로 노래를 불렀다. 또 평상시에 말할 때도 대사 연습처럼 말도 또박또박하려고 노력했다. 아마 내가 연기에 미쳐 있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 류승룡 난타 하차 이유


이후 류승룡은 대학로에서 연극을 하다가 1998년부터 5년동안 넌버벌 퍼포먼스 '난타'의 1기 멤버로 전세계 공연을 합니다.


류승룡: "1997년에 동랑레퍼토리 극단에 속해 있었다. 당시에 미국 뉴욕의 라마마 극장에 전위극 '두타'가 초대받아서 공연할 때였다. 거기서 '스톰프', '튜브' 같은 비언어극을 보고 크게 매료되었다."


류승룡: "마침 국내에서 송승환 대표가 '난타' 1기 멤버를 뽑고 있었다. 당장 오디션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초창기 '난타' 할 때는 1년 동안 거의 노 개런티로 출연하고, 또 하루에 12시간씩 매일 연습했다."


류승룡: "대사 없이 동작과 눈빛만으로 끌어가야 하는 무언극이다. 나의 눈빛 훈련은 이때부터 다져졌던 것 같다."


류승룡 과거 사진


그러다가 류승룡은 주변의 만류에도 난타를 그만두게 됩니다.

(류승룔 난타 하차 이유)


류승룡: "난타 공연을 하던 중,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벼륙쇼를 봤던 적이 있어요. 벼룩은 원래 자기 몸의 70배(약 30cm)를 뛰는데, 유리잔 안에 갇힌 벼룩은 뛸때마다 유리잔 천장에 부딪히잖아요."


류승룡: "그렇게 10분 정도 뒤에 유리잔을 치우면, 벼룩은 딱 유리잔 높이(30cm)까지만 뛰지, 원래의 70cm 높이로는 절대 시도를 하지 않아요."


즉, 류승룡은 사람들의 잠재력은 훨씬 더 크지만, 유리잔 안에 갇히 벼룩처럼 도전이 제한될 때는, '스스로를 제한'한다고 본 것입니다.


류승룡: "(사람도 벼룩처럼) 유리잔에 부딪힐 거라는 두려움만 떨쳐내면, 본인이 가진 진짜 능력만큼 뛰어오를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류승룡: "난타를 오래하다보니 대사도 하고 싶고 말도 하고 싶었어요. 그 때 그만두지 않았으면 (영원히) 못 그만 둘 것 같았어요. 그래서 과감하게 그만두었죠. 그런데 당시에 주변에서는 다들 저류 만류했어요. 다시 연극배우로 돌아가면 난타만큼 고정수입을 받기 어려우니까요."


* 류승룡 부인 권모의 도움으로


류승룡: "결국 난타를 그만두고 막노동 3년을 하면서 지내게 되었어요."


류승룡: "성남 인력시장에서 일감을 찾아보고, 우유배달도 하고, 과수원에서 일도 해봤어요. 안 해본 일이 없었죠."



이때 류승룡은 아내로부터 결정적인 도움을 받게 됩니다.

(류승룡 부인의 직업과 당시 류승룡에게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는 밑에서 추가 설명).


류승룡 이야기가 2편으로 이어집니다 .(2편 새창보기)

류승룡 찌라시내용과 해명, 류승룡 평판 인간성의 진실


(스폰서 링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