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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파파로티 김호중 고등학교 중퇴 위기 이야기

성악가 김호중이 마음을 다잡게 되었지만, 쉽게 과거를 끊지는 못합니다.

원래의 조폭들이 항상 전화를 하거나 연락을 해서 어린 김호중의 마음을 흔들었기 때문이죠.


파파로티 김호중의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와 김호중의 중퇴 위기, 그리고 그 이후의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포스팅합니다.


테너 김호중의 이야기가 1편에서 이어집니다.

김호중 노래 5곡- 네순도르마 나의사람아


(스폰서 링크)


# 목차

* 김호중 조폭 조직원들의 폭력사건

* 김호중 할머니의 유언으로

* 성악가 김호중으로

* 파파로티 김호중 실화를 영화로

* 2가지 주목할 점들

* 김호중 조폭 조직원들의 폭력사건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결국 김호중은 마음을 잡고 서수용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만, 이번에는 그의 과거가 발목을 잡게 됩니다.


김: "폭력조직과 연락을 끊었더니, 형님들이 집으로 찾으러 왔다. 그리고 어디론가 끌려가 자정부터 오전 7시까지 두들겨 맞았다. 처음에는 온몸에 통증이 있었는데, 나중에는 몸에 감각이 없어지더라. 집에 엎어져 3일 동안 꼼짝도 못했다."


김호중이 과거로부터 벗어나고자 하지만, 그렇게 쉽게 되지는 않았을 것 같네요.


하지만 2008년 김호중이 18살 때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김호중에게 큰 힘이 될 말을 남깁니다.



* 김호중 할머니의 유언으로


김: "할머니가 병원에서 돌아가셨는데, 제가 임종을 지켜보지 못했어요. 돌아가시기 전날에 병원을 나가는데, 할머니가 "남들에게 박수받는 사람이 되고, 절대 남들에게 해 입히지 말고, 싸우지 마라."라는 말씀을 남기셨어요.


김: "그리고 그 다음날 돌아가시면서 "내가 하늘에서 (너를) 지켜볼테니, 똑바로 살아라'라는 유언을 남기셨대요."(김호중 할머니 사망원인 대장암)


김호중 사진


이 2가지 말이 결국 할머니의 유언이 되었네요.

이후 김호중은 은사 서수용의 가르침과 할머니의 유언 덕분에 다시 과거의 잘못된 길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김: "할머니의 말씀이 없었다면 오늘의 저는 없었을 것이다. 또한 꿈을 펼치려는 저를 다잡아 준 서수용 선생님과 김천예고 선생님들께도 감사 드린다."


김: "나중에 대구에 갔다가 우연히 (폭력조직의 형님을) 만났다. 형님이 ‘그때 왜 노래한다고 안 했느냐’고 하더라. 그리고 앞으로는 좋은 일로 만나자고도 말했지만, 이제는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다."



* 성악가 김호중으로


그리고 2009년 서수용은 제자 김호중이 노래를 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인터넷에 올립니다. '고삐리가 부르는 공주는 잠 못 이루고'란 제목의 동영상이 인터넷에서 크게 화제가 되었고, 예능 프로 스타킹에서 출연 제안이 옵니다.


결국 김호중은 고등학교 3학년의 신분으로 스타킹에 출연해서 2승을 차지하고, 대학 진학을 위하여 3승째 도전을 포기하게 됩니다.


더 이상 스타킹에 나오지는 않지만, 이미 그는 전국적인 스타가 되었죠.

(나중에 2010년 1월 대한민국 인재상을 받은 다음에 스타킹에 다시 출연함)



또한 김호중의 재능에 감명을 받은 독일의 RUTC아카데미에서 그에게 유학의 기회를 주기도 합니다.


김: "비행기 값과 유학경비 일체를 지원해 준다고 해서, 독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앞으로 베를린 국립음악대학교에 들어가고 싶다."


성악가 김호중과 선생님 서수용 사진


* 파파로티 김호중 실화를 영화로


또한, 스타킹 출연 이후에 영화 파파로티 제작 제안을 받기도 합니다.


김: "처음 영화 제작 제안을 받았을 땐, ‘나에게도 이런 일이...’라는 생각과 함께 반신반의하는 심정이었다. 나중에 영화가 만들어진 후 직접 보고 난 후에야 믿을 수 있었다. 영화를 5번이나 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웃기도 했다."


김호중 여자친구: "영화의 80% 정도는 실화이지만, 좀 다른 부분도 있다. 특히 영화속에서 연애하는 내용은 나와 완전히 다르다. 영화 속에서처럼 강소라씨 같은 여자 친구가 있었다면, 아마 내 인생도 바뀌지 않았을까.(김호중에게 여친은 없었음)"



참고로 영화속에서 이제훈이 부른 노래는 더빙이 된 것입니다.


김: "이제훈씨가 영화 속에서 부른 ‘별은 빛나건만’, ‘네순 도르마’ 등 오페라 아리아는 립싱크가 된 것이다. 만약 그 노래들이 가요였다면, 이제훈씨가 직접 부를 수 있었겠지만, 성악은 그렇게 하기가 힘들다. 웬만큼 공부하지 않고는 따라 부르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김: "그리고 영화속 실제 노래는 터네 강요셉씨가 불렀다. 원래 테너는 음의 굵기에 따라 레체로 테너, 리릭 테너, 드라마틱 테너로 크게 나뉘는데, 나는 음색이 무거운 리릭 테너이고, 강요셉씨는 강요셉씨는 레체로 테너이다."


김: "영화상에서 이제훈씨가 나보다 강요셉씨의 음색이 더 잘 맞는다. 그래서 나도 흔쾌히 동의했다."


이후 김호중은 유학중 유럽과 일본 등지에서 공연을 하기도 하고, 2013년에 '나의 사랑아'란 앨범을 내기도 합니다. 한국어뿐만 아니라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의 4개 국어로 부른 노래이죠(김호중 최근근황).



* 2가지 주목할 점들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그저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조폭이 될 수도 있는 아이였지만,

이제는 전세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테너로 성장하게 되었으니까요.


김: "독일에서 한국 음식이 너무 그리워서 비싼 한국 식당을 찾아갔다. 그런데 그곳에서 '찔레꽃'이라는 노래가 나오더라. 내가 어릴 때부터 할머니가 좋아하는 노래였다."


김: "그 가게에서 곰탕 국물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렸다. 할머니가 생전에 내가 노래하는 모습을 한번도 못 보셨다.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아무것도 해드린 것이 없어서 정말 죄송할 뿐이다."


김호중의 이야기는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이 되는 이야기임과 동시에,

어른들에게는 경종을 울리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문제아이고 사고뭉치라고 하더라도, 할머니와 서수용 선생님의 사랑과 애정이 있다면, 김호중처럼 변하는 것도 전혀 무리가 아니니까요.


성악을 통하여 꿈을 키웠고, 탤런트가 된 이야기

서태화 요리 결혼 집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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