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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진 인생 이야기

우아한 형제의 대표 김봉진이 힐링캠프에 출연했습니다.

김봉진은 성공한 벤처 스타트업의 창업자로 인식되면서 수많은 강연회에 불려다니면서, 자신의 성공 노하우를 널리 전파하고 있습니다.


특히 김봉진이 사회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그가 공고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학벌 사회인 대한민국에서 성공한 그에게 '학벌이 없어도 성공할 수 있는가?'란 질문은 무의미합니다. 그의 성공 요인을 제대로 안다면, 그런 질문을 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본인이나 주변에서 말하는 성공요인은 그저 '결과론적인 요인'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배달의 민족은 '후발 앱'이었습니다.

후발주자였던 그가 어떻게 성공하게 되었을까, 그의 성공요인에 대하여 제대로 알 필요가 있습니다.

김봉진 사진


기업인 겸 디자이너 김봉진은 1976년 10월 10일 전라남도 완도에서 태어납니다(김봉진 고향). 올해 39살이죠(김봉진 나이).

(김봉진 가족관계) 4형제중 막내. 셋째형 김광수와 함께 '우아한형제'를 창업, 김광수는 현재 '우아한 형제'의 CTO(최고기술책임자)를 맡고 있음


(김봉진 학력 학벌) 서울예술대학 실내디자인과 졸업,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시각디자인 (석사과정)


(김봉진 프로필 및 경력) 이모션 디자이너, 네오위즈 디자이너, NHN 디자이너, 우아한 형제들 대표


# 목차

* 어린 시절과 직장생활, 실패했던 창업

* 창업에 대한 두번째 도전

* 초창기의 시행착오

* 초반에는 사기꾼으로 오해를

* 스마트폰 앱과 기존 전단지의 차이점

* 김봉진 성공이유 첫번째

* 김봉진 성공이유 두번째

* 학벌사회 한국에서 IT분야의 의의



* 어린 시절과 직장생활, 실패했던 창업


김봉진은 원래 화가가 꿈이어지만, 집안 형편이 좋지 못하여 공고(공업계 고등학교)로 진학합니다. 학창시절 공부와도 담을 쌓았고, 고등학교 3학년때 디자인학원에 다녀서 실기 비중이 높은 서울예술대학에 진학하게 됩니다.


(참고로 그의 학력 중에 국민대학교 석사과정은 회사 창업을 하고 나중에 진학하게 된 것입니다.)


졸업 이후 이모션(2002년)과 네오위즈(2004년)에서 평범한 직장 생활(직업 웹디자이너)을 하다가, 인테리어 가구디자인 사업을 창업합니다.


김봉진: "창업하기 전까지 이모션, 네오위즈 등에서 디자이너로 일했다. 네오위즈에서 나온 뒤 전공을 살려 가구관련 사업을 했다가 부도가 나 빚을 지게 되었다."


김봉진: "직장생활 몇 년 동안 만나던 클라이언트가 삼성, 엘지(LG), 나이키(Nike)이다 보니 내가 그들인 것 마냥 오만해져서 내가 하면 다 잘될 거로 생각했다."



* 창업에 대한 두번째 도전


사업 실패 이후 김봉진은 다시 NHN(네이버 지주 회사)에 디자이너로 들어가게 됩니다.

여기까지 김봉진의 사회 생활을 알 수 있습니다.

김봉진은 서울예대에서 실내디자인을 전공했는데, 2000년대 초반에 웹디자인이 초창기였기 때문에 포토삽만 할줄 알면 누구나 쉽게 관련 업계에 취업할 수 있었고, 김봉진 역시 그중의 한명이었습니다.


90년대 후반부터 정부의 지원으로 IT기술자와 웹디자이너들이 대거 양성될 시기였고, 관련업계의 진입 장벽은 무척 낮았습니다.


하지만 김봉진처럼 해당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은 극히 적었고, 김봉진은 원래 실력을 인정받던 디자이너였기에, 사업 실패 후에도 NHN(네이버의 지주회사)에 재취업할 수 있게 됩니다.


2008년부터 NHN에 다니기 시작한 김봉진은 다시 사업 기회를 노립니다.


김봉진: "NHN 시절 경영관련 서적을 접하다가 IT관련 사업을 꿈꾸었지만 한번 실패한 경험때문에 망설였다. 그때 옆에서 와이프가 ‘활동적으로 일하며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 때가 가장 멋져 보인다’며 격려를 해주었다. 그런 와이프가 너무 고마웠다."(김봉진 결혼)(김봉진 부인 배우자)


이렇게 김봉진은 아내의 격려로 다시 창업에 도전하게 됩니다.

이번에는 IT관련 사업인데, 본인이 디자이너이기에 기술자가 필요했습니다.


당시 그의 셋째형인 김광수가 SI(시스템통합) 업체에서 개발자로 일하고 있었기에, 사업을 제안했고, 김광수는 이를 받아들입니다.

(먼저 사업을 제안한 김봉진이 대표이사, 개발자인 김광수는 CTO가 됨)


(왼쪽이 김광수, 오른쪽이 김봉진)(우아한 형제들 회사 이름 이유)


* 초창기의 시행착오


김봉진은 2010년 창업을 하지만, 초기에는 시행착오도 합니다.


김봉진: "처음부터 배달에 착안한 것은 아니다. 원래는 스마트폰용 114 서비스를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데이터를 모으고 분류하는 작업을 개인이 하기 너무 힘들었고, 또 그 분야가 시장성이 없어서 결국 실패했다."


김봉진: "그 다음에 전화를 통해 가장 많이 이루어지는 경제활동을 찾다가 음식 배달이 떠올랐다. 그 때부터 데이터(전단지 정보)를 모으기 위해 인터넷 포털을 뒤지고 서울 강남역 등을 돌며 전단지를 모았다."


이렇게 해서 '배달의 민족'이라는 앱을 만들게 됩니다.



참고로 우아한 형제는 회사 이름이고, 배달의 민족은 스마트폰 앱 이름입니다.

주로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서비스를 제공하므로, 주력 상품이라고 할 수 있죠.


김봉진: "배달의 민족은 수단인 것 같다. 우아한 형제라는 회사를 만드는 데 더 많은 관심이 있다."


즉, 김봉진은 우아한 형제를 목적, 배달의 민족을 수단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김봉진 좌우명: "세상엔 이런 일들이 많아서 의지대로 할 수 없는 큰 힘이 있다는 걸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실패에도 성공에도 겸손해야 한다."


김봉진: "즉, 실패에 너무 자책할 필요도 없고 성공에 너무 자만해서도 안 된다. 내 좌우명은 '이번 고비가 넘어가면 다음 고비가 온다.'이다."




* 초반에는 사기꾼으로 오해를


이렇게 배달의 민족 앱을 론칭한 김봉진이었지만, 초반에는 사업이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김봉진: "사실 초기에는 ‘과연 스마트폰으로 전화가 오겠냐’며 배달 음식점 업주들이 우리를 사기꾼으로 생각했다. 실제로 지난해(2011년)까지는 QR코드를 만들어 인터넷에 올려주겠다며 돈을 받거나, 심지어는 등록이 무료인 우리 앱(배달의 민족)을 들먹이며 돈을 뜯어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김봉진: "회사를 시작하고 한동안 수익이 없어 직원들 월급을 주지 못했다. 그것이 가장 괴로웠다. 지금이야 월매출이 어느 정도 나오지만, 지난해(2011년) 6월까지만 해도 9명이 근무하는 회사의 매출이 100만원 밖에 안됐다. 그때는 퇴근할 때마다 어둠의 벼랑 끝에 선 느낌이었다."


김봉진: "음식점 업주들의 회의적인 시각을 바꾸기 위하여 콜(앱을 통해 걸려 온 전화) 수를 증명하려고 ‘콜멘트’라는 서비스를 개발했다. 우리 앱을 통해 전화를 하면 ‘배달의 민족을 통해 걸려 온 전화입니다’라는 멘트가 나온다. 그전까지 로그 데이터를 보여주어도 믿지 않던 업주들이 서서히 우리 서비스를 신뢰하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업주들로부터 직접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 스마트폰 앱과 기존 전단지의 차이점


김봉진: "전에는 배달 음식에 불만이 있어도 하소연할 데가 없었다. 우리 앱을 이용하면 사용자가 리뷰를 쓰고 음식점 업주는 그에 대한 댓글을 달고, 해당 서비스를 더 개선할 수 있다. 앱에 등록된 업소 중에는 사용자의 불만을 꼼꼼히 체크하고 서비스를 개선해서 매출이 300% 이상 상승한 곳도 있다."


확실히 기존에는 전단지를 통하여 주문을 해도 음식의 질에 대하여 불평을 하거나 이런 정보를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배달 음식점 주인들도 서비스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죠.


하지만 이제는 스마트폰 앱에 후기가 달리면서 전체적인 음식 서비스 질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시대적인 변화에 맞는 서비스이면서, 소비자에게도 도움이 되는 서비스가 되었죠.



'배달의 민족'은 확고부동한 업계 1위입니다.

현재 배달의민족, 요기요, 배달통이 전체 시장의 90%를 점유하고 있는데, 배달의민족의 시장점유율이 60%가 넘습니다. 2014년 4월이후 월간 방문자수 1위 자리도 놓치지 않고 있으며, 애플리케이션 누적 다운로드 수가 1400만건을 넘겼습니다.



그렇다면 김봉진의 성공요인은 무엇일까요?

한번 실패에도 다시 도전한 '끊임없는 도전 정신?', 그가 강연에서 늘 얘기하는 '창의적 자신감?'





* 김봉진 성공이유 첫번째


사실 그에게는 2가지 커다란 성공요인이 존재합니다.

첫번째, 시대적 트렌드를 잘 탔습니다.

2010년은 스마트폰이 본격화되기 시작했고, 오프라인의 정보들이 사람들의 손안에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이런 시대적인 흐름을 잘 탔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죠.


김봉진: "사업에 한 차례 실패한 후 755일 동안 쉬지 않고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줄 만한 전 세계 웹사이트를 찾았다. 전 세계 웹사이트를 매일 뒤지면서 스마트폰 도입 소식을 남들보다 먼저 알 수 있게 됐고, 이에 따라 사업 기회도 앞서 잡을 수 있었다."



* 김봉진 성공이유 두번째


두번째, 뛰어난 광고 전략입니다.


사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배달의 민족'은 배달업계 앱에 있어서는 '후발주자'입니다.

업계에서 최초 서비스를 내놓은 것은 '배달통'이었죠.


(김봉진이 배달통의 아이디어를 모방한 것이 아니라, 비슷한 서비스를 비슷한 시기에 생각하게 됨)


엎치락뒤치락하던 라이벌 업체들은 2014년 4월부터 순위가 극명하게 갈리기 시작합니다. 바로 '배달의 민족'의 TV광고 '류승룡'편 덕분이었죠.




류승룡이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라고 외치는 광고는 다양한 연령층에 흥미와 공감대를 모으며 각종 패러디를 양산했고, 2014 올해의 광고상을 수상하기도 합니다.

이 한편의 광고 덕분에 '배달의 민족' 브랜드 인지도가 크게 향상되었죠.



사실 그외에도 김봉진은 그전부터 강연활동을 꾸준하게 합니다.

주로 스타트업에 관심이 많은 청년 세대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강연들인데, 이것은 다른 사람을 돕는 방법임과 동시에 자기 브랜드를 알릴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강연에 소극적인 동종업계 다른 CEO들과는 확실히 차별되는 행보였죠.


(또한 김봉진이 힐링캠프에 출연해서 청년세대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하는데, 이것 또한 청년들을 돕는 말이면서 동시에 배달의 민족을 마케팅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당분간 배달의 민족의 업계 1위가 확고부동하게 될 것 같네요.)


김봉진 강연 모습


* 학벌사회 한국에서 IT분야의 의의


이상이 바로 김봉진과 배달의 민족이 성공하게 된 가장 큰 이유 2가지가 아닌가 합니다.


혹자는 너무 그를 미화하거나 혹은 폄하하기도 하지만, 이런 김봉진의 성공 스토리를 살펴보면, 학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누군든지 시대적인 트렌드를 잘 파악하면 회사를 만들어서 운영할 수 있고,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하면 업계 1위로 우뚝 설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IT시대의 묘미죠.



사실 한국은 학벌사회입니다.

대학 간판에 의하여 평생이 좌우되기에 중고등학생들은 죽어라 공부하고, 그들의 부모 역시 아이들에게 공부를 강요하고 있죠.


다만 IT분야만이 학벌에 의한 영향을 덜 받고,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분야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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