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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 남자 가수 이야기

정재형 프랑스 파리 유학 일화와 이효리 이상순

정재형 프랑스 파리

정재형이 요즘 개그맨이나 예능인으로 알려져 있는데, 본래 뮤지션이죠.
그것도 클래식에서 출발했기에 그의 음악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그런 정재형의 프랑스 파리 유학 시절 재미있었던 일화 몇가지를 짚어보면, 정재형에 대해서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가수 겸 작곡가 정재형은 1970년 1월 12일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정재형 고향). 올해 나이가 45살이죠.
(정재형 학력 학벌) 한양대학교 작곡학과, 파리고등사범음악원 영화음악, 작곡 석사(고등사범 대학 에꼴 노말), 파리고등사범음악원 영화음악

 

강민경, 정재형 - 내 눈물 모아

(정재형이 난생 처음 다른 사람을 위해 만들었다는 노래 내 눈물 모아... 이건 가수 서지원을 위해서 만들었던 노래였죠.)(정재형 작곡)

 

무한도전 : Infinite Challenge, West Coast Highway Festival(4), #08,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4) 201107 정재형 정형돈의 순정마초

 

정재형은 초등학교 1학년때 짝사랑하던 동창때문에 피아노를 시작하게 됩니다. 여자애가 피아노를 치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죠.

 

정재형의 음악성을 알았을까요, 피아노 선생님은 정재형의 실력을 늘 칭찬했고, 정재형의 짝사랑은 그것을 질투하게 됩니다. 마침내 짝사랑은 정재형이 6개월을 배운 후에도 악보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선생님에게 고자질하게 됩니다.

 

이 사건으로 정재형은 "예쁜 사람이 늘 아름다운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깨닫고, 피아노에 흥미를 잃게 되지만, 학교 콩쿠르를 계기로 다시 피아노를 치기 시작합니다.
(콩쿠르에 나갈 때는 정재형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정재형에게 당시 인기있던 '이원재 아동복'을 입혔는데, 아마 집안이 꽤나 잘 살았던 것 같네요.)

 

정재형 과거사진


원래 정재형은 클래식 전공이었지만, 1995년 베이시스 1집 앨범 [Looking For Myself]으로 대중 음악계에 데뷔하게 됩니다.
(베이시스는 대중 가요에 클래식을 접목시킨 그룹)

 

베이시스 해체 이후 솔로로 데뷔해서 2집까지 활동한 다음에 1999년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납니다. 그후 2008년까지 약 10년을 유학생활을 하는데, 그 중간중간 한국과 교류를 완전히 끊지는 않고 틈틈이 영화 OST와 앨범 등을 발매합니다.

 

정재형은 십년동안의 프랑스 파리 생활을 어떻게 보냈을까요?

정재형: "불어가 잘 늘지 않자 자꾸 위축이 되고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어서 마음고생이 심했다."

한번은 친구 김동률이 파리에 놀러왔는데 너무 수척해진 정재형을 보고는 놀라서 눈물을 흘릴 정도였죠.
정재형: "혼자 밥을 먹는 것도 싫고 주문하는 것도 어려워 아예 밥을 굶어 버렸다."

 

프랑스 유학 초기 시절, 정재형도 고생이 많았던 모양이네요.

정재형의 실제 성격이 섬세하다고 알려졌는데, 밥 먹는 것에서도 잘 나타났네요. 혼자 먹는 것도 싫고, 주문할 때 불어가 미숙했던 점도 싫어서 결국 굶어버렸다는 데서, 자신의 자의식이 상처받는 것을 굉장히 경계했다는 점을 알 수 있네요.

 


그랬던 정재형이지만, 이적의 충고로 돌파구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적: "정재형 형은 한국말도 잘 못한다."

정재형: "불어를 못하는게 아니라 언어 자체가 문제였구나 라고 생각해 그 다음부턴 못해도 막 사람들과 불어로 얘기 하려고 노력했고 그 이후 불어가 늘었다."

 

의외로 이적의 충고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그것도 농담 섞인 충고였죠.

아마 정재형은 이적의 말 속에 숨은 뜻, 즉, '당신은 실수를 괴로워할 존재가 아냐'를 파악했는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불어를 습득하게 된 정재형의 눈에 프랑스 파리는 어떻게 비춰졌을까요?

정재형: "파리도 똑같이 사람 사는 데다. 물론 문화에 대한 이해도는 훨씬 높고 성숙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분위기일 뿐 개개인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한국과) 다 똑같은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건 생각의 변화다. 개인의 삶에서 아주 작은 것들에 대한 만족감이 없을 때 불행하다고 느끼는 거다."

 


정재형: "파리 그 자체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어느 한 곳, 특정한 사람들에게서만 영감을 받기보다는 파리라는 도시 그 자체, 그 안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다. 음악 하는 사람이 음악만 듣고, 사진 하는 사람이 사진만 보면 시각도 편협해지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도 적어진다. 예술을 하려는 사람은 많은 생각과 경향, 아이디어를 접하고 종합적으로 생각해야 할 시점이 분명히 있다."

 

정재형: " 파리는 한국에서의 일상과 단절된 상태였으니까. 한국에서는 늘 약속으로 점철된 나날들이었는데, 파리에만 가면 그런 게 뚝 끊긴다. 혼자만의 시간도 많아지고, 스케줄도 간략해지고. 이번 주에 누굴 만나야 한다면 정말 내가 대외적으로 하는 일은 딱 그거 하나인 거다."

 

사실 정재형이 프랑스에서 수석으로 졸업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죠. 이렇게 고독과 싸우면서 정재형은 음악을 공부하고 자기 안의 예술성을 다듬었던 것 같습니다.

 

정재형은 파리를 한국의 도시들과 거의 비슷하게 생각합니다. 아마 파리에서 스스로의 고립감을 즐기면서, 혼자 예술에 집중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일 수도 있겠네요.

 


이런 프랑스 시절에 대한 기억은 정재형의 3집 앨범 '자끌린느를 위하여(For Jacqueline)'에 제일 많이 담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자끌린느 뜻: 정재형이 파리에서 유학하던 시절 위층에 혼자 살던 여자에게 붙여준 이름)

 

정재형: "작년 여름, 파리 시내에 있는 친구 아파트를 한 달 반 동안 빌려 작업했어요. 1800년대 후반에 지은 집이었죠. 마룻바닥도 얇고, 복도도 나무고, 위층에서 걸어 다니는 소리, 샤워하는 소리가 다 들려요. 순간 다른 사람의 일상이 나의 일상이 된 것 같은 기분. 파리라는 남부럽지 않은 도시에서, 저 같은 이방인들의 마음을 담은 거죠."

 

위층의 젊은 여자 역시 예술가였는데,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민에 빠졌던 모양입니다.
정재형이 굉장히 섬세하고 까다롭다고 알려졌는데, 이런 층간 소음(?)에서도 예술을 찾아냈네요.

 

 

참고로 정재형은 당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유학 생활을 했는데, 둘이 친하게 지내게 됩니다. 그래서 이상순의 '제자'였던 이하나도 알게 되죠.

 

정재형: "상순이(이상순, 그룹 ‘롤러코스터’ 기타리스트)한테 배웠어요. 상순이가 파리에 녹음하러 왔을 때 하나씨가 놀러왔죠. 어머니와 여행 중이었대요."

 

또한 정재형은 이효리와도 친분이 두터웠는데, 이상순과 이효리의 성격을 보고는 잘 어울릴 것 같은 생각에 둘을 소개시켜 줍니다. 결국 둘이 결혼까지 골인했는데, 정재형의 중매쟁이로서의 능력이 뛰어난 것 같네요.

 

나중에 이효리가 감사의 댓가로 정재형에게 옷 한벌을 해줍니다.

 

 

 

옛말에 중매를 잘하면 술이 석잔, 못하면 뺨이 석대라는 말이 있죠. 성공해서 옷을 받으면, 아주 뿌듯할 것 같네요.


아무튼 정재형이 주변인은 이렇게 챙겨주는데, 정작 본인은 여자친구도 없고, 결혼할 생각도 별로 없는 것 같네요. 아마 독신주의자가 아닐까 합니다.

어쨌든 자신의 에너지를 온전히 음악에만 쏟고 있는 정재형이, 또 앞으로 어떤 음악을 우리에게 선사할지, 기대가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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