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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만해도 회사가 남에게 넘어갈 수도 있다고 걱정이 많았죠.


하지만 구인회는 1년동안 회사내부의 인사들을 모두 설득했고

(참고로 여러 차례 언급한 것처럼, LG그룹은 구인회의 동생들을 비롯하여 허씨 가문의 여러 인사들이 참여한 회사이기 때문에 구인회가 독단적으로 결정할 경우에는 리더쉽의 훼손이 일어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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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1969년 우리나라 최초로 기업공개에 성공하게 됩니다.




사실 구인회는 인화를 무척 강조한 경영자였습니다.

구인회의 용인술을 잘 나타낸 사건이 바로 1968년 '라디오 캐비닛 사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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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구인회 회장의 장남 구자경은 락희화학 전무를 맡고 있었고, 박승찬은 금성사 전무를 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남미로 수출한 라디오의 캐비닛 1000여개가 망가지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에 대한 책임 공방이 양사간에 벌어지게 됩니다.


당시 락희화학에서 라디오 캐비닛을 만들고, 금성사에서 라디오를 만들고 제품을 출고하는 과정에서 라디오 캐비닛의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에, 양측의 입장은 무척 팽팽했죠.


결국 최종 대책회의에서도 구자경과 박승찬의 설전은 계속되었고, 마침내 성격이 괄괄한 박승찬은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릴 정도로 분함을 참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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