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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석유사업은 섬유와 플라스틱 제품, 합성세제 등의 기초가 되는 사업입니다. 이런 사업들의 원료들이 결국 석유에서 출발하고, 폴리에틸렌과 나프타 분해 등등의 정유 사업이 모든 것을 망라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당시 정유 사업은 국가기간사업이었습니다.

당시 한국에서는 유공이라는 국영회사 단 하나만 존재하던 시절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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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구인회는 국가의 허락을 얻어서 정유사업에 진출합니다.

사실 당시 구인회는 박정희 정권의 '제2정유공장 공모전'에 공식 입찰을 해서 사업권을 따냈는데, 당시만해도 군사정권의 특혜에 가까웠죠.



아무튼 이때 구인회의 호남정유가 사업권을 따게 되었고

(참고로 LG그룹의 사업 초창기에는 개별 기업의 이름들이 달랐음. 화학과 플라스틱 등은 락희화학, 전자는 금성사, 그리고 에너지 사업은 호남정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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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6만 배럴을 생산하게 됩니다.

(참고로 당시 국영기업이었던 유공은 하루 생산량이 3~4만 배럴이었는데, 거의 두배에 가까운 규모였음)



구인회가 사업을 확장하던 시기에 자금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국내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리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고, 락희화학이 초창기때 9번이나 증자를 했음에도, 시설 투자비를 제대로 감당하지 못해서 재정 상태가 갈수록 나빠질 정도였죠.


결국 1969년 구인회는 우리나라 최초로 락희화학의 '기업 공개'를 선택하게 됩니다.

요즘이야 기업을 주식시장에 상장하여 자금을 확충하는 일이 아주 흔했지만, 당시만해도 회사가 남에게 넘어갈 수도 있다고 걱정이 많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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