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제인 이야기/구인회

이승만이 LG의 빗을 보고 감격한 이유

이 덕분에 구인회와 락희화학은 6.25가 한창이던 1952년 8월 우리나라 최초로 플라스틱 사출 성형기를 국내로 도입하게 되었고,

곧이어 '깨지지 않는 플라스틱 통'은 물론이고, 플라스틱 빗과 비눗갑, 칫솔, 담뱃갑 등의 다양한 플라스틱 제품들을 만들 수 있게 됩니다.


(스폰서 링크)
. .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부자들은 미제나 일제, 혹은 홍콩제의 밀수품 빗을 사용했고,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나무로 만든 빗을 사용할 때였기에,

락희화학의 '플라스틱 빗'은 시장에 나오자마자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일례로, 국무회의를 할 때 상공부 장관 이재형이 이승만 대통령이 '락희화학의 빗'을 보고할 정도였으니까요.



"각하, 이 플라스틱 빗은 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기술로 만든 빗입니다."


그러자 이승만은 감탄을 하면서, "정말 이것이 한국에서 만든 것이오? 장관, 나 이거 하나 주오."


. .



당시 우리나라의 형편없는 상황과, 락희화학의 제품이 얼마나 센세이션을 일으켰는지를, 잘 보여주는 일화인 것 같습니다.



이후 구인회는 사출성형기 4대와 칫솔제조기까지 추가로 구입하여, 빗과 비눗갑, 칫솔, 담뱃갑 등의 다양한 플라스틱 제품들을 만들게 되었고, 이들 제품 역시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팔려나가게 됩니다.


사실 이때는 이미 후발주자들이 뛰어들어서, 럭키크림의 시장 점유율이 점차 줄어들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렇기에 비록 6.25 전쟁중이었지만, 구인회의 과감한 투자 결정으로 LG의 성공 가도는 계속 이어질 수 있었죠.


(스폰서 링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