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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대화의 영웅 사카모토 료마에 대한 평가는 좀 엇갈립니다.


료마가 일본 근대화를 이루었고 후일 일본이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반는 반면에, 료마의 업적은 별로 없고 사실은 소설가 시바 료타로의 작품 '료마가 간다' 덕분에 일본의 영웅이 되었다는 평가도 있죠.


그런데 사카모토 료마의 인생을 살펴보면,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굉장히 많습니다.


이번 시리즈에서 사카모토 료마의 인생과 그가 일본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면서,  우리나라 정치지도자에게 부족한 것들이 무엇인지를 짚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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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사카모토 료마는 1836년 1월 3일(음력) 태어나 1867년 12월 10일 사망하게 됩니다.

사망 당시 사카모토 료마 나이는 겨우 31살이었고, 본격적인 정치를 한 것은 불과 3년에 불과했습니다. (한국 나이로는 32살)


게다가 사카모토 료마의 신분은 번의 하급 무사였습니다.

사카모토 료마 사진

사카모토 료마의 고향 도사 번 지도


원래 사카모토 료마의 집안은 상인 출신이었고, 선조가 도사 번의 하급 무사 신분증을 돈을 주고 사게 되었죠. (상인 출신이었기에 료마 집안은 부유했음)


또한, 당시 일본은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고, 도사 번은 이런 분위기가 더 엄격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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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훗날 성인이 된 사카모토 료마는 서양식 앵클 부츠를 즐겨 신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급무사는 비가 와도 우산을 쓸 수 없었고, 상급무사들처럼 높은 '게다'도 신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죠.


그런 상황에서 료마는 미군 사진(장군과 병사가 똑같은 부츠를 신고 있는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렸고,


이후, 당시까지 신었던 짚신을 더 이상 신지 않고, 부츠를 신게 되었던 것이죠.


이런 일화로 보아, 료마의 가슴 속 깊숙이는 '신분 차별'에 대한 저항이 강했고, 훗날 젊은 청년들을 교육시킬 때 신분에 전혀 좌우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실 이런 모습은 사카모토 료마외에도 일본의 메이지 지사들 대부분으로부터 발견되는 현상으로, '교육'을 통하여 일본 근대화의 초석이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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