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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사쓰마는 막부파였고, 조슈파는 존왕파였는데, 서로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길만큼 사이가 나빴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지역감정이 있기는 하지만, 일본은 수십여개의 번들이 서로 전쟁을 치룰 만큼, 서로에 대한 적개심이 대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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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훗날 료마의 사후 보신전쟁(1868년 ~ 1869년)이 일어나는데, 막부에 대한 충성심이 강했던 아이즈 번은 옥쇄를 각오하고 존왕파에 저항을 합니다.


결국 사쓰마와 조슈의 군대는 아이즈 번을 몰살을 시켰고, 겨우 살아남은 아이즈 번 사람들은 오늘날까지도 사쓰마와 조슈 등에 대한 원한을 잊지 않습니다.

그들은 절대 사쓰마나 조슈 사람들과 함께 밥도 먹지 않을 정도죠.)

일본 사쓰마 번과 조슈 번 위치

아무튼 일본의 지역감정은 우리나라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강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쓰마와 조슈를 화해시키려는 료마의 시도는 무모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료마는 당시 정세를 정확하게 읽었고, 결국 삿초동맹 (사쓰마와 조슈의 동맹) 결성을 이끌어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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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로 삿초동맹의 결성 경위----------------


원래 조슈는 반 막부파로 막부로부터 반역자로 찍혀 있었음.

그런 조슈에게는 막부에게 대항하기 위하여 서양식 총과 대포가 필요했는데, 막부의 감시로 이것을 구할 수가 없었음.


반면에 사쓰마는 막부파였지만, 서서히 막부에 대한 불만이 쌓여가고 있었고, 군량미가 부족했음.


이에 료마는 사쓰마의 명의로 서양의 총과 대포를 구입하고 이를 몰래 조슈에게 넘기고, 조슈의 쌀을 사쓰마로 넘기는 대담한 책략을 구상했고, 이것으로 사쓰마와 조슈는 서로에 대한 필요성을 인정하게 됨



사실 료마의 삿초동맹은 신의 한수였습니다.

동시대 사람들은 불구대천의 원수였던 사쓰마의 조슈가 서로 손을 잡으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죠.


하지만 료마는 양 번의 경제적인 문제를 꿰뚫어보았고, 결국 양 번의 중진들인 사이고 다카모리(사쓰마의 중진)와 가쓰라 고고로 (기도 다카요시, 조슈의 중진))를 설득하는데 성공합니다.


여기서 료마가 대단했다는 점은, 당시 시대상을 뛰어넘었다는 것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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