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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훈련소의 책임자로써 료마는 신분이 아닌 능력 위주로 지휘관을 선발하게 하는 등의 여러가지 개혁 구상을 내놓지만, 결국 초창기에는 이런 개혁들이 좌절됩니다.


사실 료마나 그의 스승 가쓰 가이슈에 대한 반발이 적지 않았습니다. 막부파가 존왕양이파를 습격한 '이케다야 사건'이 그 대표적인 사건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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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가쓰 가이슈는 양이가 아니라 개화를 주장했기에 '존왕양이파'와는 좀 다른 길을 걸었고, 그의 제자 료마 역시 그런 영향을 받음)


또한 당시 가쓰 가이슈는 막부파였습니다.

막부파 여러 강력한 번들과 연합해서 정치를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다가 해군 총책임자 자리에서 파면을 당했고, 료마 역시 고베 해군 훈련소 책임자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죠.

(고베 해군 훈련소도 문을 닫게 됨)



대의가 좌절된 료마는 무엇을 했을까요?

원래 상인 집안의 자식답게 료마는 가메야마 조합이라는 무역회사를 세워서 상업 활동을 하는데, 이것이 훗날 그에게 큰 공을 세우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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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이때 사카모토 료마는 결혼을 한 상태였습니다.

사카모토 료마의 부인 나라사키 료의 직업은 여관의 종업원이었습니다.


여관을 전전하던 사카모토 료마와 연애를 하다가 결혼하게 되었죠.

사카모토 료마 부인 사진


사실 일본 메이지 유신 인물들 부인들의 대다수가 여관 종업원이거나 혹은 게이샤 (일본식 기생) 출신입니다.


메이지 유신 인물들 대부분이 하급 무사 출신이었고, 여관을 전전했기 때문에 이렇게 만나서 결혼하는 경우가 많았죠.


참고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이토 히로부미 부인 역시 게이샤 출신이었죠. (원래 이토 히로부미 본처가 있었는데, 결국 게이샤 출신을 본부인으로 만듦)



또한, 사카모토 료마는 일본에서 최초로 '신혼여행'을 한 사람이라고 알려졌는데, 사실 신혼여행이 목적이 아니라, 당시 료마는 반대파로부터 습격을 받았고, 온천에서 3개월 동안 요양 치료를 했습니다.


(목숨을 잃을 위기에도, 료마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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