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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 김대중과 김영삼의 분열

* 김대중이 대통령병에 걸렸다는 비판 이유

* 김대중 대통령 당선 이유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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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과 김영삼의 분열


이후 김대중은 미국 망명 생활도 잠시 했고,

1985년 한국으로 되돌아와서는 다시 자택 감금을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1987년 민주화 열기가 드높아지던 상황에서, 김대중과 김영삼은 각자 출마를 하게 되었는데,

사실 이때에 김대중은 조건부 대선 불출마 선언을 했지만, 자신의 약속을 번복하게 되었죠.


이전에 김영삼의 글에서 비판하기도 했지만, 김대중과 김영삼은 자기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국민적인 열망을 외면합니다.


또한, 김대중은 지역감정에 기반한 '4자필승론'을 내세웠는데, 김대중의 4자필승론이란, 김대중(호남), 노태우(TK 대구경북), 김영삼(PK 부산경남), 김종필(충청) 등의 4명의 지역 맹주들이 각자의 지역을 가져가면, 수도권에서 지지율이 가장 높은 김대중 본인이 최종 승리한다는 계산이었죠.


사실 김대중은 대선전까지 수도권에서 지지율이 가장 높았지만, 막상 대선 결과는 수도권에서 노태우와 김영삼에 이어서 3위를 차지하게 됩니다. 수도권 시민들이 지역감정에 기반한 김대중의 '4자필승론'을 외면한 결과였죠.

김대중 과거 사진

* 김대중이 대통령병에 걸렸다는 비판 이유


이에 따라 김대중은 '대통령병'에 걸렸다는 조롱을 받기도 합니다. 김대중과 김영삼은 민주화 투쟁 등의 삶의 궤적이 비슷했는데, 왜 유독 김대중에게만 이런 비판이 쏟아지는 걸까요?


그 이유는 김영삼은 71년 대선에 1차 경선에서 승리했지만 2차경선에서 불의의 일격으로 김대중에게 패배한 다음, 경선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하고 김대중을 위하여 열심히 선거 운동을 다녔다는 점입니다.


그 외에 김대중은 대선불출마와 정계 은퇴 등을 여러번 선언했다가 어기는 일이 반복되면서, 국민들 사이에 이런 이미지가 생기게 된 것이죠.


이후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여소야대 형국이 되자,

노태우는 김대중에게 먼저 '합당'을 제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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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 대통령 당선 이유


이 제안을 김대중이 거절했고, 이후 김영삼과 김종필은 그 제안을 받아들임으로써, '3당 합당'이 성사되었고, 여소야대는 일순간에 여대야소로 돌변하게 됩니다.

(당시의 상황과 김영삼에 대한 비판은 이전의 김영삼 글 참조)


그리고 김대중은 92년 대선에서 김영삼에게 패배한 뒤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에서 잠시 거주하다가 다시 정계 복귀를 선언했고, 1997년 대선에서 마침내 대통령에 당선이 됩니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 나이는 당시 74살, 1924년 출생설을 채용, 그리고 대통령 임기는 김대중 나이 75살때부터 시작함)


사실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여러가지 요인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먼저, 97년 외환위기를 비롯하여, 이회창 본인의 여러가지 실수들 (이회창 글 참조), 이인제의 독자 출마 이유 (이인제 글 참조), 김영삼의 중립 등이 함께 어울러진 결과였죠.


그렇다면, 대통령으로써의 김대중은 어땠을까요?

일각에서는 김대중을 굉장히 높이 평가하기도 하는데, 그것이 사실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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