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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의 이유

* 김대중이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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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의 이유


그리고 전두환의 신군부 역시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을 일으킵니다.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사건의 개요

1980년 전두환은 '김대중이 북한의 사주를 받아 내란을 획책했다'라고 공식 발표를 합니다.


당시 민주화 요구로 전국 각지가 들끓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전년의 부마항쟁을 필두로, 전국 각지에서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으며, 이런 분위기는 광주항쟁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광주항쟁이 일어나기 전인 5월 17일,

신군부는 비상계엄의 전국 확대를 공식발표하고, 미리 계획을 짜놓은대로 '민주화 인사'들을 속전속결로 검거를 합니다.


그리고 때마침 5월 18일 광주항쟁이 일어나자, 전두환의 신군부는 김대중이 '광주 내란'을 배후에서 조종했고, 따라서 내란 음모를 획책했다고 주장합니다.

김대중 죄수복, 김대중 내란 음모 조작 사건 당시의 사진

* 김대중이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결국 신군부는 당시 체포된 민주화 인사들을 '고문'으로 자백하게 만들었고, 결국 1981년 1월, 김대중은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됩니다.


이 날 있었던, 김대중의 최후 진술

"나는 먼저 죽지만 먼저 죽은 나를 생각해서 이땅에서 다시는 정치보복이 없도록 해달라."


라는 말이 세계 각국으로 퍼지게 되면서, 김대중에 대한 구명운동이 벌어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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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독일의 빌리 블란트 전총리와 교황 요한 바오로2세 등이 김대중의 구명을 위하여 발벗고 나섰지만,

제일 큰 힘을 쓴 것은 역시 미국이었습니다.


미국의 당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을 비롯하여 에드워드 케니디 의원, 엘고어 상원의원 등이 김대중의 석방을 촉구했고,

결국 전두환 정권도 이런 국제적인 압력을 무시하지 못하고, 김대중의 사형을 감형시킵니다.


이처럼 김대중은 미국으로부터 '생명의 빚'을 2번이나 받게 되는데, 이런 부분은, 나중에 김대중의 정체성을 파악할 때 결정적인 단서가 됩니다. (밑에서 추가 설명)


이후 김대중은 미국 망명 생활도 잠시 했고,

1985년 한국으로 되돌아와서는 다시 자택 감금을 당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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