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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이야기/김대중

김대중이 다리를 저는 이유는 고문이 아니라

# 목차

* 김대중이 지역차별 비판받는 이유

* 박정희 김대중 김영삼의 문제점

* 김대중이 다리를 저는 이유는

* 김대중 사람들은 고문을 당하고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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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이 지역차별 비판받는 이유


사실 71년 대선은 우리나라 정치사에서 큰 의미를 차지합니다.

이때 바로 '지역 차별'이 선거에 두드러지게 나타났고, 또 후대에도 그것이 그대로 이어졌기 때문이죠.


먼저, 박정희 정권은 '신라 대통령론'과 '호남에서 영남의 물품을 불매하기로 했다는 내용'의 허위전단을 대대적으로 뿌립니다.


이에 맞서 김대중 역시 '호남 푸대접'론을 내세워, 호남의 강한 응집력을 이끌어 내었죠. (이 문제는 87년 대선에서 김대중의 지역주의에 근거한 4자필승론이 나오면서, 더욱더 고착화가 됨)


이런 부분들이 훗날 김영삼은 "지역 감정의 원인은 김대중이 제공했다."라는 비판의 근거가 됩니다.

김대중 김영삼 사진

* 박정희 김대중 김영삼의 문제점


사실 망국병인 지역 차별, 지역 감정을 부추기는 행동은 박정희가 먼저 시작했고, 김대중이 이를 고착화시켰다는 비판을 면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김영삼 역시 1992년 초원복집 사건으로 지역 감정으로 대통령 당선에 큰 힘이 되었죠.


어쩌면 우리나라 정치 지도자들은 '망국병'이 들든 말든, 본인의 이익을 위하여 국민들을 희생시킨다는 점, 이런 점들이 우리 국민들의 가장 큰 불행이 아닐까 하네요.


참고로 김대중이 다리를 저는 이유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김대중이 고문때문에 '다리'를 전다고 착각을 하는데, 사실 이는 단순한 교통사고때문이었습니다.

김대중의 지팡이 사진

* 김대중이 다리를 저는 이유는


지난 1971년 5월 김대중은 서울 지역 지원유세를 위하여 차로 이동하는 중 전남 무안군 국도에서 교통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당시 김대중은 "박정희 정권의 살해 음모로 트럭에 치였다."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당시 이 사건의 담당 검사가 허경만인데, '이 수사와 관련된 어떠한 외압도 없었다.'라고 주장합니다.

참고로 허경만은 검사 은퇴 후 김대중 변호인단에 합류하는 등, 철저한 김대중 사람이라고 할 수 있기에, 그의 증언은 신빙성을 클 수 밖에 없죠.


게다가 박정희나 전두환, 노태우 정권은 김대중에게 직접 고문을 가한 적이 없었습니다. 김대중의 몸에 직접 손을 대기에는, 그가 너무 정치적인 거물로 성장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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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 사람들은 고문을 당하고


하지만, 그런 김대중 대신에 수많은 주변 사람들이 독재 정권으로부터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가깝게는 김대중 큰아들 김홍일이 모진 고문을 받다가 건강을 크게 해쳤고 (훗날 파키슨 병에 고문 후유증까지 더해짐)

또한 김대중의 측근이었던 김옥두, 김상현 등도 중정에서 '잔인한 고문'을 당했습니다.


심지어 단순히 김대중 자택을 방문해서 방문록을 남겼다는 이유만으로 대학생 정동년까지 중정에 끌려가서 고문을 당하기도 했죠.


이처럼 가족과 측근들에 대한 고문과 탄압은, 김대중 본인에게 크나큰 부담이 되었을 겁니다.

아마 독재 정권은 김대중의 몸에 직접 손을 대지 못하기에, 이런 식으로라도 김대중을 꺾을려고 했을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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