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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신문희 교수 성악가 남편,신문희 결혼 거부 이유

(2/2) 총 2개의 글중 두번째 글


성악가 신문희 남편, 신문희 결혼 등에 대하여 알아봅니다.

소프라노 신문희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굉장히 궁금하네요.


신문희에 대한 이야기가 1편에서 이어집니다. (1편 새창보기, 1/2)

신문희 나이와 학력 프로필-아빠 폭력으로


(스폰서 링크)


# 목차

* 신문희 크로스오버란?

* 신문희 새로운 길을 걸으며

* 신문희 교수 남편에 대한 생각

* 성악가 신문희 실제 성격

* 신문희의 꿈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 신문희 크로스오버란?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크로스오버' 제 1세대'로 '새로운 길'을 개척하게 되었죠.


신문희: "전 클래식이 보수적으로 현재에서 계속 머물지 말고 이제는 대중 속으로 들어가야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던 차에 성악가 조수미씨의 동생이 매니저를 맡아서 2004년 제1집을 내게 됐죠."


신문희: "사실 우리나라는 현재 크로스오버 음악의 초창기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한국적인 크로스오버를 해보자는 생각에, '아름다운 나라'에 굿거리 장단도 삽입했고요."


참고로 신문희가 설명하는 크로스오버 음악이란 이렇습니다.


성악가 신문희 사진


신문희: "크로스오버 음악이란 서로 다른 장르를 넘나들며 교차시키는 겁니다. 팝과 클래식을 완전히 뒤섞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2가지 장르를 결합할때 서로의 장점을 잘 살려내는 것이죠."


신문희: "일부 사람들이 제 노래를 팝페라라고 하면, 전 아니라고 해요. 사실 팝페라 역시 크로스오버의 한 갈래이긴 하죠. 팝의 창법으로 오페라의 아리아를 부르니까요. 예를 들어서 팝페라 가수로는 사라 브라이트만이나 안드레아 보첼리가 있죠. 하지만 저는 아리아를 부르는 게 아니잖아요."


신문희: "제 노래 '아름다운 나라'는 우리의 굿거리 장단과 서양음악 섞은 거잖아요. 크로스오버 음악이야말로 대충 하면 망쳐요. 양쪽을 다 잘해야 하죠."



사실 신문희는 우크라이나에서 비서와 통역관, 전용 운전사 등까지 제공받을 정도로 VIP 대접을 받습니다.

(2007년에는 우크라이나 정부로부터 동양인 최초로 교육공로상도 수상함)


또한 2002년에는 이탈리아 빈센조 벨리니 국제 콩쿠르 최연소 심사위원으로 발탁이 될 정도로 유럽에서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그녀가 왜 생소한 길인 '크로스오버'를 하게 된 것일까요?



* 신문희 새로운 길을 걸으며


신문희: "대개의 사람들은 앞사람이 닦아놓은 길을 따라 가면서 주위 사람들 사이에서 묻어가려고 해요. 하지만 저는 다른 길을 선택했어요. 정말 외로운 길이죠."


신문희: "요즘 말로 치면 그런 사람들을 '돌아이'라고 하죠? 사실 그 말이 맞아요. 남들이 하지 않는 걸 하려면, 조금은 미쳐야 해요. 그리고 전 지금 충분히 미쳐 있어요(웃음)."


신문희: "세상에는 고급 음악과 저급 음악이 따로 없어요. 다만 고급 아티스트와 저급 아티스트가 있을 뿐이죠. 제 아무리 훌륭한 명곡도 실력 없는 아티스트가 연주하면 형편없는 곡이 되어버리거든요."


신문희의 음악관이 어떤지 알 것 같네요.


결국 '아름다운 나라'는 우리나라 중학교 교과서에 실리게 됩니다.

신문희(와 작곡가 한태수)의 노력이 인정을 받은 것이죠.


(무니 신문희 아름다운 나라 노래 듣기 동영상) 

MOONY신문희 아름다운 나라2011년 새해축하무대 tuvideo matiasmx com


* 신문희 교수 남편에 대한 생각


그렇다면 '신문희 결혼', '신문희 미혼'이나 '신문희 남편' 등의 개인적인 생활은 어떨까요?

신문희는 과거 결혼에 대하여 안 좋은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문희: "스무 살 초반에 결혼에 얽혀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어요. 그래서 결혼에 대한 미련은 더 이상 없어요."


신문희: "게다가 마음속이 온통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이성에 대한 생각은 거의 제로 상태죠. 하지만 정말 운명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만나면, 또 모르죠."


20살 초반에 신문희가 결혼후 이혼을 했는지, 결혼 직전까지 갔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네요.

아무튼 현재 신문희는 독신입니다.



신문희: "(과거에) 정말 외로움에 치를 떨었던 적이 있었어요. (영국에서 유학할 당시에) 런던의 골목길을 걸어갈 때인데, 시멘트 덩어리가 건물 4, 5층에서 갑자기 떨어졌는데, 정말 제 코앞을 스칠 정도로 가까웠어요."


신문희: "그때 내가 정말 혼자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에 여권도 소지하고 있지 않았기에, 만약 그때 사고라동 당했으면 내 육신이나마 챙겨줄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몸서리가 쳐지더군요."


신문희: "그때 뽀얀 시멘트 가루를 털면서 생각했어요. '이제 나 혼자 다해야 한다'라고요. 그걸 가슴에 새기고 현재까지 달려온 거예요."


어쩌면 신문희가 독신주의자인지도 모르겠네요.



* 성악가 신문희 실제 성격


참고로 신문희의 별명은 '신병장'입니다.

팬클럽에서 지어줬죠.


신문희: "(저를 보고) 무대에서는 여신이라고 하고 일상에서는 그냥 신병장이라고 해요. 제 성격이 좀 털털한 편이거든요. 사실 무대에 선 모습을 보고 여전사라고 하는 팬들도 있어요."



신문희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기기도 합니다.





확실히 성격이 털털하면서도,

남자와 결혼에 대해서는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 신문희의 꿈


신문희: "(결혼한뒤에도 공연과 교육을 위하여) 난 영국 런던과 러시아, 그리고 한국과 여러 나라들을 돌아다녀야 하는데, 누가 동행을 할 수 있을까요?


신문희: "또 저는 남편이 제 뒤를 따르기보다는 제가 남편 뒤를 따라다니는 것이 소원인데, 아직 그럴 만한 사람을 만나지 못했어요(웃음)."



신문희: "속담에 '지금 잠을 자는 사람은 꿈을 꾸지만, 지금 잠을 자지 않는 사람은 꿈을 이룬다'는 말이 있잖아요. 저는 전국민이 '아름다운 나라'를 부르는 그날이 올 때까지 쉬지 않고 노력할 거예요. 전 여전히 매일 꿈꾸는 철없는 소프라노랍니다(웃음)."


꿈을 위해 달려가는 인생이라...

신문희는 자기 인생을 알차게 보내는 것 같네요.


(신문희 임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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