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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임동혁 어머니 수상거부와 한국인 차별사건으로

(1/2) 총 2개의 글중 첫번째 글


피아니스트 임동혁 어머니 사연, 그리고 과거의 임동혁 수상거부가 과연 클래식계에서 어떤 의미였는지를 짚어봅니다.

사실 그 사건 이전부터 임동혁이 여러가지 불이익을 많이 당했죠.


(임동혁 박종훈)

박종훈에 대한 포스팅 (새창보기)

박종훈 아내 치하루- 피아니스트의 사랑


# 목차

* 임동혁 임동민 형제 이야기

* 임동혁 어머니에 대한 추억

* 임동혁 수상거부 사건

* 임동혁 수상거부 이유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피아니스트 임동혁은 1984년 7월 25일 서울에서 태어납니다(임동혁 고향 서울). 올해 33살이죠(임동혁 나이).

(임동혁 키) 175cm

(임동혁 학력 학벌) 러시아 모스크바 음악학교 졸업, 모스크바 음악원 졸업, 하노버국립음악대학, 줄리어드스쿨 음악학교

(임동혁 프로필 및 경력) 1996년 국제 청소년 쇼팽 콩쿠르 2위


2000년 하마마쓰 콩쿠르 2위

2001년 롱티보 콩쿠르 1위

2002년 황금 디아파종 상

2005년 제15회 쇼팽 국제 콩쿠르 공동 3위

피아니스트 임동혁 사진

* 임동혁 임동민 형제 이야기


임동혁 형 임동민 역시 유명한 피아니스트입니다.

2005년 쇼팽 국제 콩쿠르에서 임동혁 임동민 형제가 2위 없는 공동 3위를 수상한 것은 유명한 일이었죠.


임동혁은 7살때 형 임동민을 따라 피아노를 배우게 됩니다.

그런데 임동혁 임동민 형제가 피아노를 배운데는 삼성 그룹의 지원이 큰 역할을 합니다(삼성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음).


원래 임동혁 아버지는 삼성물산 자금부장으로 일했는데, 아들들의 피아노 연습을 위하여 해외영업부에 지원을 했고, 결국 모스크바로 발령을 받습니다.

(후에 모스크바 지사장까지 오랫동안 지내게 됨)


모스크바에서 지낼 때 보통 아버지가 임 임동민을, 어머니가 임동혁을 따라 다니면서 케이를 했죠.

그런데 임동혁 어머니가 굉장한 엄모(엄한 어머니)였던 모양입니다.

* 임동혁 어머니에 대한 추억


임동혁: "엄마의 뒷바라지가 없었으면 제가 그렇게 미친 듯이 연습하지 않았을 거예요. 엄마의 힘이 컸죠."


임동혁: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뒤에 냉정하게 생각해도 엄마의 (피아노 연습에 대한) 집착과 기대는 좀 과하신 면이 있었어요. 엄마의 기대치가 워낙 높았기 때문에 나는 엄마에게 늘 실망스러운 수준이었죠."


임동혁: "어머니가 워낙 극성이셨어요. 먹고 자고, 화장실 가는 시간 빼고는 항상 피아노 연습을 해야 했어요. 피아노연습실 밖에서 엄마가 항상 듣고 계시니까 피아노 앞에서 만화책을 보면서 피아노 친 적도 있어요."


임동혁: "결국 ‘사육’된다고 생각했지만 저항하지 않았어요. 물론 (어머니의) 외압만이 나를 키운 것은 아니죠. 어렸을 때도 소나티네 9번을 치면서 곡이 참 아름답다고 느꼈거든요."


임동혁: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 피아노를 처음 시작했으니까, 사실 다른 피아니스트들에 비해 늦은 편이었지만, 주변에서 피아노에 대한 재능이 있다고 칭찬하니까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이렇게 임동혁은 본인의 재능외에 어머니의 엄한 교육열때문에, 피아노를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네요.


사실 부모가 너무 아이들에게 공부나 연습을 강요하면, 아이들이 상처를 받고 자살하는 아이들도 많이 생기죠.

우리나라 학부모들의 문제점이죠.


아무튼 임동혁 어머니는 2009년에 갑작스럽게 사망을 하는데, 이때 임동혁은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밑에서 추가 설명).

* 임동혁 수상거부 사건


이후 임동혁 임동민 형제는 러시아에서 무난하게 성장하였고, 피아노 콩쿠르 대회를 통하여 이름을 알리기 시작합니다.

(참고로 형 임동민은 2008년부터 계명대학교 부교수로 재직하게 됨)


콩쿠르 출전 당시에 임동혁 수상 거부 사건은 클래식계에서 아주 유명했던 사건입니다.


세계적으로 퀸 엘리자베스 콩쿨, 쇼팽 콩쿨, 차이코프스키 콩쿨은 세계 3대 피아노 콩쿨로 인정을 받는 유명한 콩쿨입니다.

그런데 임동혁은 이중 퀸 엘리자베스 콩쿨에서 3위를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상을 거부합니다(2003년 임동혁 수상거부 사건 이유).


원래 클래식계는 스승과 제자의 도제 관계가 확실하기 때문에, 임동혁의 이런 행동은 자치 '클래식계에서 퇴출'을 불러올 수도 있을 만한 위험한 행동이었죠.


하지만 임동혁은 "예선부터 말이 많았던 2위 연주자의 수상을 인정할 수 없다”라고 주장하면서 수상을 거부합니다.


* 임동혁 수상거부 이유



사실 당시 1위와 2위 연주자 모두 당시 대회에서 심사를 담당했던 독일 교수의 제자였죠.

아무튼 이 사건은 클래식계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결국 그 다음부터는 출전자의 스승은 심사위원에서 아예 제외시키는 등의 규정을 더욱 강화하게 됩니다.


어찌보면 임동혁 덕분에 클래식 계가 더 깨끗해졌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사실 임동혁이 편파 심사(?)를 받은 것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2000년 부조니 콩쿨에서는 임동혁은 1, 2차 예선을 각각 2위와 1위로 통과했지만, 결선에서는 겨우 5위에 그치게 됩니다.

이에 대하여 당시 많은 언론들이 의혹을 제기했고, 결국 부조니 콩쿨은 다음해에 심사위원을 전원 교체하게 되었죠.

(당시 심사위원들에게도 굉장한 불명예였음)


임동혁에 대한 이야기가 2편으로 이어집니다. (2편 새창보기, 2/2)

임동혁 이혼,임동혁 리사이틀 쇼팽에 대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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