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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신문희 나이,성악가 신문희 학력 프로필-아빠 폭력으로

(1/2) 총 2개의 글중 첫번째 글


성악가 신문희 나이 학력 프로필 등을 알아봅니다.

신문희가 아름다운 나라로 우리나라에도 많이 알려졌는데, 사실 유럽쪽에서는 더 많이 알려져 있죠(소프라노 신문희).


(신문희 김동규)

김동규에 대한 포스팅 (새창보기)

바리톤 김동규 전부인 이혼사유와 못만나는 아들


(스폰서 링크)


# 목차

* 신문희 어린 시절

* 신문희 아빠 폭력으로

* 신문희 과거 유학 시절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성악가 신문희 나이는 47살 정도입니다.

여러번 인터뷰에서 본인의 나이를 밝혔는데, 이게 만 나이로 보여집니다.

(2008년 인터뷰 신문희교수 나이(38살)


따라서 신문희 나이는 올해 46살 혹은 47살이 되겠네요.


참고로 신문희 나이를 물어볼때 하는 그녀의 대답은, 신문희의 성격을 엿볼 수 있네요.


신문희: "때때로 제 나이를 물어보는 사람은 많은데, 데리고 살지 않을 거면 묻지 말라고 대답해요."

(신문희 성격에 대해서는 밑에서 추가 설명)


소프라노 신문희 사진


(성악가 신문희 학력 학벌) 

창덕여자고등학교 졸업(1987년)

영국 왕립 음악학교 줄리 케너드 교수 성악 사사(1990년)

이탈리아 중앙음악학교 졸업, 동 대학에서 성악과 피아노 정규과정 이수(1996년)



(성악가 신문희 프로필 및 경력)

이후 신문희는 우크라이나 오데사 국립음대 역대 최연소 교수가 됩니다(당시 동양인 최초였음)(신문희 우크라이나).

그리고 2001년부터는 오데사 국립 오페라단 지도교수,

2002년에는 이탈리아 빈센조 벨리니 국제 콩쿠르 최연소 심사위원을 역임합니다.


우리나라보다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유럽 등에 더 많이 알려져 있죠(신문희 교수).


성악가 신문희 사진


* 신문희 어린 시절


신문희는 자신의 재능을 뒤늦게 발견하고 음악에 뛰어든 케이스입니다.

또한 성악보다 국악을 먼저 시작했죠.


신문희: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어요. 제가 듣는 CM송을 모두 따라 부를 정도였죠."


신문희: "고등학교 1학년 때 음악 첫시간에 선생님께서 모든 학생들에게 노래를 시켰어요. 그리고 수업끝나고 선생님께서 저보고 남으라고 하시더니, 저에게 '여창가곡'을 배우는 것을 제안하셨죠."


신문희: "그래서 음악선생님의 스승님이신 홍원기 선생님(인간문화제)으로부터 '여창가곡'을 배우게 되었어요."


신문희 교수 사진


신문희: "그런데 여고 2학년때 음악 시간에 (또 다른) 음악 선생님이 또 전학생들에게 노래를 시켰고, 저에게 남으라고 하셨어요. 그분은 성악을 권유하셔서 결국 국악과 성악을 모두 하게 되었죠."


신문희: "그러다가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공연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그 이후 성악으로 돌아서게 되었죠."


1학년과 2학년때 연달아 이런 경험을 했다니,

확실히 신문희의 재능은 어릴 때부터 돋보였던 것 같네요.


하지만 신문희 집안에서는 딸이 노래하는 것을 크게 반대합니다.



* 신문희 아빠 폭력으로


신문희: "아버지 직업은 사업가셨는데, 원래 법률을 전공하셨어요. 친오빠 역시 (나중에) 판사가 되었고, 부모님들은 제가 공부를 계속하기를 바라셨어요."


신문희: "제가 가야 할 대학은 우리 집안 누구나 거쳤던 최고 대학의 법학과였어요. 그런 상황에서 제가 (음악을 한다고) 반기를 든 셈이죠. 결국 화가 치민 아버지가 제 허벅지를 때린다는 것이 잘못되어서, 제가 (한동안) 다리를 깁스하게 되었어요."


신문희: "그 사건 이후로 아버지도 한발 물러나서, 만약 제가 음악 교수가 되겠다면 이해하겠다는 약속을 하셨어요. 그리고 (여고) 졸업 후에 영국으로 갔어요. 당시 삼촌이 캠브리지 대학 국제정치학 교수로 계셨거든요."


이렇게 신문희는 노래에 대한 재능뿐만 아니라 열정 역시 가지고 있었습니다.


(참고로 신문희가 결혼하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이런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폭력을 경험해서인지도 모르겠네요. 밑에서 추가 설명)



* 신문희 과거 유학 시절


다만 유학 시절 그리 풍족한 생활은 하지 못했던 것 같네요.


신문희: "유학 초기 가세가 기울어 고생도 많았어요. 저희 집이 (당시에는) 부유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유학 시절에도 힘들게 공부를 했는데, 주변 사람들은 저를 부잣집 딸로 보더군요. 아마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때문에 그랬나 봐요."


신문희: "당시에 정말 배가 고팠는데, 아무도 밥 한 끼를 사주디 않더군요(웃음)."


이후 이탈리아 등지에서 공부한 신문희는 2000년 우크라이나 오데사 국립음악학교의 최연소 교수가 됩니다.


신문희: "동양인이어서 제가 더 어려보였나 봐요. 그래서 교수 임용이 됐는데도 오디션을 한번 더 보자고 하더라고요. 결국 50, 60대 교수님들 앞에서 노래를 했고 결국엔 인정을 받았죠."


신문희의 타국 생활이 결코 쉽지 않았던 것 같네요.

결국 신문희는 최초, 혹은 최연소라는 기록들을 굉장히 많이 가지게 됩니다.


신문희에 대한 이야기가 2편으로 이어집니다. (2편 새창보기, 2/2)

성악가 신문희 교수 남편,결혼 거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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