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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최성봉 후견인,최성봉 선생 박정소 과거 이야기

(1/2) 총 2개의 글중 첫번째 글


껌팔이 성악가 최성봉 후견인, 최성봉 선생 박정소 등의 과거 이야기를 살펴봅니다.

최성봉의 어린 시절부터 그가 어떤 고난과 역경에도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이룩했는지,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네요.


(최성봉 성악가 김동규)

김동규에 대한 포스팅 (새창보기)

성악가 김동규 부모와 성장과정- 독자 교육


(스폰서 링크)


# 목차

* 껌팔이 성악가 최성봉 고아가 된 이유

* 최성봉 거리 생활

* 최성봉이 성악을 접하게 된 계기

* 최성봉 박정소 관계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팝페라가수 최성봉(본명)은 1990년 2월 18일 서울에서 태어납니다(최성봉 고향 서울). 올해 27살이죠(최성봉 나이).

(최성봉 학력 학벌) 대전예술고등학교 졸업, 경희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재학중(초등학교 및 중학교는 검정고시로 통과함)

(최성봉 프로필 및 경력) 2011년 코리아 갓 탤런트 시즌1에서 준우승


이후 팝페라가수로 데뷔하여 앨범 '느림보'를 발매




* 껌팔이 성악가 최성봉 고아가 된 이유


잘 알려진 것처럼 최성봉은 고아가 되었다가, 길거리에서 자라게 됩니다.


최성봉: "세 살 때 서울의 고아원에 맡겨졌는데, 5살 때 구타를 피해 고아원에서 도망쳐 나왔어요. 그 이후부터 껌과 박카스 등을 팔면서 거리에서 생활했어요."


성악가 최성봉 사진


최성봉: "하루는 배가 고파 쓰려져 있었는데, 어떤 형이 짜장면을 사주면서 껌파는 법을 가르쳐 주었어요. 그렇게 (5살 이후에) 껌을 판 돈으로 컵라면을 사먹었죠. 컵라면이 제가 가장 오랫동안 먹었던 음식이에요."


결국 최성봉은 5살때부터 14살때까지 거의 십년동안 거리의 아이로 혼자 성장하게 됩니다. 도대체 최성봉 부모가 누구이길래 최성봉에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보육 기록에 의하면, 최성봉 아버지는 1993년 최성봉을 아동복지시설에 맡긴 이후 양육 거부 및 연락 두절 상태가 됩니다. 또한, 최성봉 어머니 역시 남편과 이혼 후 연락이 완전히 두절되었죠. 결국 최성봉은 부모가 있지만, '연락 두절'이 된 상태에서 보육원에서 성장할 수 밖에 없게 되었죠.

(최성봉 부모에 대한 생각에 밑에서 추가 설명)



* 최성봉 거리 생활


거리에서 살게 된 최성봉은 때때로 주변 지인들의 도움을 받으며 성장하게 됩니다.


최성봉: "시장통에서 포장마차 아주머니를 우연히 만나서 알게 되었는데, 저에게 '지성'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셨어요. 그전까지는 "야", "이놈아"라고 불리고 있었죠."


최성봉: "또 그 아주머니는 저에게 공부를 하라고 끊임없이 격려했어요. 그 덕분에 야학에도 다녔고, 초등학교, 중학교 검정고시도 시험봐서 합격하게 되었어요. 사실 최성봉이라는 본명 역시 검정고시 응시를 위해 주민등록 정보와 고아원 기록 등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찾게 되었고요."


최성봉: "사실 그 아주머니가 일러줘서 기초생활수급자를 위한 지원제도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동사무소에 찾아갔는데, 제 호적에 부모가 있다는 이유로 지원을 받을 수가 없다고 하더군요."



최성봉: "교통사고가 나도 보호자가 없었기에 병원에 갈 수가 없었고(실제로 최성봉은 2번의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제대로 치료받지 못했음), 월세집을 계약할 때도 부모 동의서가 없어서 불가능했죠. 결국 주변 지인들의 증언으로 아주 어렵게 기초생활수급자가 되고 나서야 비로서 야학에도 갈 수 있었어요."


우리나라 복지 체계의 맹점이 아닌가 하네요.

부모가 이미 버린 자식인데, '호적상에 부모'가 있다는 이유로 아직 어린아이가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도움'조차 받지 못하다니...



* 최성봉이 성악을 접하게 된 계기


이렇게 거리에서 껌팔이 생활을 하던 최성봉은 우연히 성악의 매력에 빠지게 됩니다(껌팔이 성악가 최성봉 과거 이야기).


최성봉: "대전의 모 나이트클럽에서 성악가를 초청한 적이 있었어요. 당시에 손님에게 껌을 팔기 위해 클럽에 들어갔는데, 갑자기 성악 음악을 듣는 순간 전기에 감전되는 것 같았죠."


최성봉: "저도 (껌팔이 생활) 10년 동안 처음 본 모습이었어요. 성악과 나이트클럽이라... 전혀 어울리지 않잖아요. 게다가 거기 있던 사람들 누구도 성악가의 노래를 반기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꿋꿋하게 자신의 노래를 계속 불렀는데, 그때 그 사람의 마음, 그 진정성이 제게 와 닿았죠."


이에 최성봉은 본격적으로 성악을 배우려고 노력합니다.



최성봉: "고등학교 입학 전에 성악을 배울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 다녔어요. 그때 서울에서 무료 성악 관련 특강이 있다고 해서 차비를 모아 서울의 경희대로 올라왔죠."


최성봉; "그 시절에는 저에게 100원, 200원도 아주 큰 돈이었기에, 당시 차비는 정말 엄청난 돈이었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수업을 들었던 것 같아요."


최성봉: "처음으로 유명 대학에서 수업을 들었으니 얼마나 좋았겠어요. (성악과) 교수님이 노래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성악의 매력에 흠뻑 빠졌어요. 그런데 그 특강 얼마뒤에 그 교수님께서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어요. 너무 가슴이 아팠어요."



* 최성봉 박정소 관계


이처럼 특강 등을 돌아다니면서 성악을 배우던 최성봉은 인터넷카페에서 '성악 레슨광고'를 부고 박정소를 찾아가게 됩니다.

(최성봉 후견인 박정소)(최성봉 선생(은사) 박정소)


최성봉: "인터넷 검색으로 알게된 음악 연습실로 무작정 찾아갔어요. 거기서 (박정소를) 만나게 되었죠."


박정소: "소년(최성봉)의 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성봉군의 손을 잡고 집으로 찾아갔는데, 대전 고속버스터미널 근처 주택가에 있던 컨테이너 박스가 바로 성봉군의 임시 거쳐였어요. 전기도 수도도 난방도 안되는 그 어두운 작은 곳에 고작 열너댓살 먹은 어린아이가 앵벌이를 하며 살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죠."


결국 박정소는 최성봉을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오게 됩니다.


최성봉 후견인 선생 박정소 사진




박정소: "(최성봉을 집으로 데리고 온 이후에) 특별히 해준 것은 없어요. 그저 원래 있는 집에서 같이 잠자고 먹는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얹어놓은 것 뿐이죠."


이렇게 박정소는 '최성봉의 후견인'이 됩니다.

(최성봉 박정소 관계)


참고로 박정소의 당시 직업은 대학생이었고, 레슨을 하면서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던 시절이었죠.

(박정소는 1976년 부산 출생으로, 올해 나이는 41살임.

최성봉보다 14살 연상인데, 최성봉을 처음 만났을 때, 그 역시 이십대 청년이었네요.)



이후 최성봉은 박정소의 도움으로 대전예술고등학교 성악과로 진학하게 됩니다.


박정소: "처음에는 성봉이가 (학교 진학 얘기를 하면서) 장난하는 줄 알았어요. 이제까지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아이가 그것도 예고에 가고 싶다고 하니. 사실 제가 음대에 다녔지만 예고는 일반 가정에서도 뒷바라지 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최성봉에 대한 이야기가 2편으로 이어집니다. 

(2편 새창보기, 2/2, 내일(1월 30일) 오후 5시 발행)

최성봉 최근 근황,최성봉 부모와 여자친구에 대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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