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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김도균 집안, 김도균 고향 등이 무척 흥미롭네요.
사실 김도균은 부자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한때 담배꽁초를 주워 피던 시절이 있을 정도였죠.
(김도균 신대철)
신대철에 대한 포스팅 (새창보기)
(스폰서 링크)
# 목차
* 김도균 어린 시절
* 김도균 집안 재력
* 김도균 음악계 입문 계기
* 김도균 임재범 김종서 친분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가수 겸 기타리스트 김도균(본명)은 1964년 5월 11일 대구에서 태어납니다(김도균 고향 대구).
(일부에서 김도균 고향이 서울이라는 얘기도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임)
올해 52살이죠(김대균 나이).
(김도균 종교) 기독교(개신교)
(김도균 가족관계 1남 2녀중 막내 아들
(김도균 학력 학벌) 초등학교, 중학교를 고향인 대구에서 졸업, 고등학교는 1학년을 마친 다음에 자퇴함
(김도균 프로필 및 경력) 1986년 록그룹 백두산의 기타리스트로 데뷔
이후 영국에서 사랑(Sarang) 밴드 활동
1990년 임재범과 함께 한국에서 록 밴드 아시아나 결성
유현상과 함께 백두산을 재결성하여 활동
* 김도균 어린 시절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어릴 때부터 김도균 집안은 잘 사는 집안이었습니다.
(김도균 부자)
김도균 아버지가 대구에서 섬유업체 회사를 운영했죠.
김도균 과거사진(김도균 젊었을때 사진)
김도균: "우리 학교(초등학교)가 당시 리코더 시범학교여서 리코더 합주 같은 걸 많이 했는데, 어쩌다보니 제가 상도 받고 경연대회까지 나가게 됐어요. 그 당시에 연주했던 곡들이 주로 세바스찬 바하나 헨델, 헨리 퍼셀 같은 바로크 음악들이었죠."
김도균: "그런데 그런 음악들을 연주하면서 (음악적으로) 초강력한 뭔가를 체험하게 되었어요. 예를 들어서 피아노 전주에 맞춰서 리코더를 부는데, 이전까지 동요를 부를때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세상을 접하게 되었어요. 전 그때를 제 연주 생활의 시작으로 봐요."
확실히 김도균에게 음악적인 재능이 있었고, 이때의 연주 활동으로 '특별한 체험'까지 한 것 같네요.
김도균: "중학교때 처음으로 록음악을 듣게 되었어요. 경북대학교 보컬그룹 연습슬에 가면 재밌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따라 갔는 그곳에서 록음악을 처음 들었는데, 바로크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와 같은 충격 같은 것을 받았어요."
김도균: "딥 퍼플(Deep Purple)의 'Child in Time'은 충격 그 자체였어요. 키스(KISS) 같은 밴드의 음악도 마찬가지였고요. 이전과는 다른 세계가 있다는 걸 발견한 거예요. 그때부터 록 음악에 빠져 살기 시작했죠."
김도균 젊은시절 사진
* 김도균 집안 재력
결국 김도균은 부모님을 졸라서 당시 4만원짜리 전기 기타를 사서 친구 세명과 더불어 '중성자'라는 록 밴드를 조직합니다. 비록 중학생들이었지만, 기타를 비롯하여 베이스, 드럼에 앰프까지 갖출 것은 모두 갖춘 정식 밴드였죠.
김도균: "당시 부모님께서는 그냥 제 취미 생활이라고 생각하셨나 봐요. 기타가 4만원 정도 했는데 아무 말씀 없이 사주셨거든요. 그걸로 친구 집 지하실에 연습실을 차려놓고 밤낮으로 연습했는데, 무척 행복했어요."
당시 4만원짜리 기타를 아무 말 없이 사줬다는 데서, 김도균 집안의 재력을 엿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를 진학한 김도균은 록음악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들게 됩니다.
김도균: "고등학교를 딱 1년 다니고 보니 더 이상 학교에 다니기가 싫어졌어요. 당시 학교의 모든 것이 답답했어요. 그냥 기타들고 사회에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도균: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학교 다닐 때 교복을 입고 머리 깎는 데서부터 거부감을 느낀 것 같아요. 그게 고등학교 들어서 더 심해진 거죠."
김도균: "집에는 학교 간다고 해놓고 집 근처 산에 들어가서 온종일 기타 연습을 했어요. 그렇게 일주일을 하니까 집과 학교에서 모두 알고 난리가 난 거예요. 1남 2녀 중 막내아들이 고등학교도 그만두고 음악하겠다고 하니, 호적에서 판다는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었죠."
* 김도균 음악계 입문 계기
하지만 김도균은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친 상태에서 무작정 서울로 상경하게 됩니다. 당시 기타와 음악에 대한 열정을 아무도 막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죠.
김도균: "당시 서울로 올라와서 낙원상가부터 찾았어요. 당시 기타와 밴드 뮤지션들의 메카였죠. 그때 낙원상가 가게 주인이 아는 뮤지션들로 팀을 만들어서 나이트클럽 등으로 보내는 식이었어요."
결국 김도균은 18살, 19살때까지 나이트클럽 기타 반주자 생활을 하게 됩니다.
김도균: "(나이트클럽에서) 밤늦게 공연이 끝나고 하숙집에 돌아오면 또 기타 연습을 했어요. 당시 톱 기타리스트를 따라 해보면서 계속 나 혼자 연마를 한 거예요."
김도균: "19살 겨울에는 설악산에 들어가서(민박에 거주) 두 달간 하드트레이닝을 하기도 했어요. 당시에 산에 가지고 들어갔던 피크(기타칠 때 사용하는 삼각형의 작은 플라스틱 조각) 두 봉지가 모두 닳아 없어졌을 정도였죠."
김도균: "당시가 제 인생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때였어요. 물론 여전히 전셋집을 전전하지만, 그 당시에는 담배 살 돈이 없어서 길거리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주워서 피울 정도였거든요."
* 김도균 임재범 김종서 친분
아마 당시의 김도균은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인 지원을 받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김도균 집안이 부자였기에 마음만 고쳐 먹으면 평안한 생활이 보장되었을텐데,
음악과 기타에 대한 열정때문에 김도균은 '담배 꽁초를 주워서 피면서'도 음악을 포기하지 못한 것이죠.
아무튼 이렇게 해서 김도균의 기타 실력은 소문이 퍼지게 됩니다.
결국 당시 메이저 레이블 중의 하나였던 서라벌레코드에 스카웃이 되었죠.
(백두산에서 유현상 등과 함께 활동하게 됨)
김도균: "당시 관객으로 오거나 오디션을 보러 왔던 사람들이 현재 한국 음악계를 이끌어가는 주역들이에요. 새로운 세대의 출발점이었죠. 숙명여자대학교 앞에서 DJ를 하면서 자주 놀러왔던 친구가 임재범이었고, 또한 부활(당시 보컬이 김종서)이 오디션을 보러 왔었고요. 또한 신중현 선생님이 "내 아들인데 기타를 친다"며 소개시켜주셨던 친구가 바로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신대철이고요."
임재범, 김종서, 부활, 신대철 등...
확실히 새로운 세대의 출발이라고 해도 모자람이 없네요.
김도균에 대한 이야기가 2편으로 이어집니다. (2편 새창보기,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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